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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팔봉 선생(장항선)은 인상적인 죽음으로 하차하며 성공적인 캐릭터의 대미를 장식했고, 구일중(전광렬)은 시체놀이를 하면서까지 김탁구(윤시윤)를 지키려는 정의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꼼짝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데도, 어딘가 신비스런 기운까지 감돌면서 구일중 회장의 존재감은 역대 최고로 치솟는 중이네요. 파렴치한 구마준(주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랫동안 자기를 보좌하며 회사에 열성을 다했던 맏딸 구자경(최자혜)에 대한 배려심은 조금도 없이 모든 지분을 김탁구에게 넘기기로 한 부분에 대해서라든가 등등, 구일중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제가 쓰려는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올해 초에 방송되었던 '추노'의 경우는 선이 굵은 남성 위주의 사극으로서 모든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이 미미했으나 별다른 거부감..
요즘 드라마에서 악역의 위치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원래 악역이란 시청자들에게 미움받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별로 그렇지도 않지요. 오히려 강렬한 매력과 포스를 물씬 풍기며 주인공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는 악역이 많습니다.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도 원래는 주인공 덕만(이요원)과 대칭점에 놓이는 명백한 악역이었으나 그 엄청난 존재감은 주연을 뛰어넘어 사실상 '선덕여왕'을 미실의 드라마로 만들어 버렸었지요. 저의 개인적 견해로 '추노'는 명품 사극이긴 하지만 '선덕여왕'에 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나 액션 등을 생각해 본다면 물론 '추노' 쪽이 앞선 부분도 존재하지만,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시청하는 인물 심리면에서는 뚜렷하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큰 주모(조미..
서방님,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를 원해서 혼인하신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원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 이 마음... 한 번도 당신께 전해 본 적 없지만, 앞으로도 말은 커녕 글로도 제대로 전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태어나 한 번도 이 집안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러하겠지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된 이 공간에서, 햇빛조차 받지 못하고 서서히 시들어갈 것이 저의 운명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태어날 때에는 성한 몸을 지녔었다는데, 가장 행복했을 그 시절을 저는 기억할 수가 없군요. 두 살 되던 해에 급작스런 열병을 앓고 나서 이렇게 되었다던데, 두 살난 어린아이였던 제가 무슨 큰 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