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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약간 촌스러운 사랑 이야기라도 나쁘진 않았다. '첫사랑과의 재회' 스토리가 식상해질 때도 됐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제 질렸다. 제발 그만 우려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상대의 부모가 내 부모를 죽인 원수였다는 이야기, 하긴 갈등의 최고점을 찍기엔 더 이상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웬만한 장애물쯤은 너끈히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 해도 제 부모를 죽인 원수의 자식이라면 쉽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그것은 연인들 사이에 설정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이다. 하지만 설정하기는 쉬워도 풀어나가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솔직히 그런 경우 깔끔한 해결책은 한쪽이 (또는 둘 다) 죽어버리거나 헤어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평판이 워낙 좋길래 뒤늦게나마 발품을 팔아 상영관까지 보러 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대원칙을 깨뜨릴만한 명작은 아니더군요. 물론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진 영화이긴 했지만, 제게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고 크게 느껴졌습니다. 혹자는 이처럼 동화같은 환타지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태도라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기엔 지나치게 유치하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엔 걸맞지 않는 성인물의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일단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부터가 어린이 대상의 영화로는 적합치 않거니와, 지적장애인 이용구(류승룡)를 향한 경찰청장(조덕현)의 무차별적 폭력 장면이라든가, 심지어 "당신이 죽어야 딸이 산다"고 회유하는 변호사의 모습이라..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엇갈린다면 당연히 승리는 아이들에게로 돌아갈 거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진행과정과 스치듯 보여진 몇 차례의 화면을 통해서, 왠지 청춘커플의 미래가 밝지 못하다고 느낀지가 꽤 되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이 착한 아이들은 부모의 못 다 이룬 사랑을 위해서 자신들의 사랑을 포기했습니다. 하긴 서인하(정진영)와 김윤희(이미숙)의 사랑에는 무려 32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얹혀져 있으니, 그 사랑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백혜정(유혜리)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차마 대놓고 나서서 반대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데 14회 엔딩 무렵에 밝혀진 서인하의 비밀은 살짝 충격적이었습니다. 반전이라면 대반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자식을 위해 부모가 희생..
서준(장근석)과 정하나(윤아)가 정원에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설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유아독존식으로 살아온 그 까칠한 남자 서준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 하나에게 덥석 몸을 기대며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애처럼 편안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흐뭇하면서도 서글펐습니다. 그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행복감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에 흐뭇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기에 서글펐습니다. 부모를 비롯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닫고 살아온 서준이 그 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알기에, 처음 느끼는 이 따스함과 편안함이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갈 거라는 사실은 더욱 서글펐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은 결코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둘 다 이루어지지 않거나, 어..
나쁜 남자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서준(장근석)이 등장한 후, 저는 언제나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외모는 그렇게 젊은 시절의 아버지 서인하(정진영)를 쏙 빼닮은 아들인데, 어쩌면 성격은 그리도 정반대일 수가 있냐는 거였죠.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별을 지켜보아야 했던 상처로 인해 살짝 비뚤어진 거라고 대략 설명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이별한 원인이 평생 첫사랑을 잊지 못한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해서 아버지와의 사이도 냉랭하고, 순수한 첫사랑에 대해서 비웃듯 시니컬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뭔가 석연치 않았어요. 무릇 남자의 첫사랑이 어떤 의미인지는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며, 더욱이 서인하는 김윤희(이미숙)이 벌써 오래 전에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
세월을 훌쩍 건너 뛴 이후로는 초반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참 좋았습니다. 서준(장근석)-정하나(윤아)의 발랄한 사랑과, 서인하(정진영)-김윤희(이미숙)의 기품있는 사랑이 조화를 이루면서, 드라마 전체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아름다워졌지요. 부디 유치하거나 식상하지 않게 끝까지 설득력 있게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안타깝게도 인하와 윤희가 절절하게 재회한지 고작 1회만에 최악의 무리수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제껏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모든 장르의 멜로에서 신물나도록 써먹었던 소재, 바로 불치병이었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중년커플의 사랑 코드를 없애는 편이 나았습니다. 영화 '클래식'이나 '유리의 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십 년 전에 사랑했던 두 사람 중 한 쪽을 (또는 두 사람 모두를) 이미 죽은 ..
기대했던 만큼이나 만족스러웠고, 그 이상으로 가슴저린 재회였습니다. 너무도 먹먹해서 아무 말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몇 시간이 더 흐르니 약간 진정이 되는군요. 지난 번 리뷰에서도 밝혔듯이, 저는 드라마 '사랑비'를 관통하는 두 갈래의 사랑 중에 반드시 한쪽을 선택해서 응원해야 한다면 서인하(정진영)-김윤희(이미숙)의 중년커플을 응원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서준(장근석)-윤아(정하나)의 청춘커플에 비해 이루어질 확률이 낮을 것이고, 그래서 벌써부터 저에게 '사랑비'는 혹독한 비극을 예고하는 슬픈 멜로이지만 상관없습니다. 젊었을 때의 모습은 너무 답답하고 속터져서 예쁘기보다는 차라리 미웠는데, 이제 세월의 강을 건너서 다시 만나는 모습들을 보니 이토록 절절하고 애틋할 수가 없군요. 윤희와..
시대 배경이 현재로 넘어오고 서준(장근석)과 정하나(윤아)의 산뜻한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분위기는 한 순간에 싹 달라졌습니다. 4회까지의 견딜 수 없는 답답함에서 벗어난 것은 좋은데, 일본 올로케로 진행된 5회에서는 약간의 거부감을 떨칠 수 없더군요. 물론 북해도의 절경은 아름다웠지만, 일본의 여행지 곳곳을 친절하게 소개하듯이 보여준 것도 모자라, 하필이면 남녀 주인공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거기서 처리하고, 남녀가 다이아몬드 스노우를 함께 보면 사랑하게 된다는 전설까지 등장하니까, 이건 뭐 완전히 일본 드라마 같았거든요..;; 하지만 어차피 일본 수출용이고, 자본의 힘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대충 이해해야겠죠. 6회에는 비로소 모든 등장인물이 2012년 현재, 한국으로 모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영화 중 멜로의 전설이라 할만한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물론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멜로 영화라고 하면 제 머릿속에는 '클래식'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영화 1위로 뽑힌 적도 있다는 '클래식'은 조승우, 손예진, 조인성이 열연했던 2003년 작품이죠. 현재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사랑비' 역시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영화는 두 갈래의 사랑으로 구성되는데, 손예진이 1인 2역을 맡아 과거와 현재의 사랑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1960년대, 고등학생이던 오준하(조승우)와 성주희(손예진)는 서로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끌리며 애틋한 감정을 나누지만, 그들의 사랑에는 큰 장애물이 있습니다. 오준하의 가장 친한 친구 윤태수(이기우)와 성주희는 오래 전..
'사랑비'를 3회까지 시청했지만, 남주인공 서인하(장근석)의 매력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그 시대의 사랑 방식은 대부분 그랬었다고 아무리 변명해봤자, 이 시대 시청자들의 눈에는 답답하다 못해 찌질해 보일 뿐입니다. 김윤희(윤아)의 마음이 자기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 이동욱(김시후)과 잘 됐으면 좋겠다는 둥, 사귀게 되어서 축하한다는 둥 속터지는 소리만 늘어놓더니, 자원입대 신청을 해놓고서야 비로소 그녀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태도는 백 번 이해할래도 이해할 수 없더군요. 그건 정말 이기적인 행동이었어요. 자기는 어차피 떠날 거면서, 왜 윤희를 부담스럽게 하는 거죠? 동욱과 잘 되기를 바랐던 마음이 진심이라면 아무 말 없이 떠났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동욱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이제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