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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 서인하의 이기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사랑비

'사랑비' 서인하의 이기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이유

빛무리~ 2012. 5. 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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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엇갈린다면 당연히 승리는 아이들에게로 돌아갈 거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진행과정과 스치듯 보여진 몇 차례의 화면을 통해서, 왠지 청춘커플의 미래가 밝지 못하다고 느낀지가 꽤 되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이 착한 아이들은 부모의 못 다 이룬 사랑을 위해서 자신들의 사랑을 포기했습니다. 하긴 서인하(정진영)와 김윤희(이미숙)의 사랑에는 무려 32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얹혀져 있으니, 그 사랑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백혜정(유혜리)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차마 대놓고 나서서 반대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데 14회 엔딩 무렵에 밝혀진 서인하의 비밀은 살짝 충격적이었습니다. 반전이라면 대반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자식을 위해 부모가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지독한 배신감을 안겨줄 수도 있을법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연히 모르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서인하는 자기 아들 준과 김윤희의 딸 하나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인하는 아랑곳 없이 김윤희와의 결혼을 추진하고 청첩장까지 돌렸던 것입니다.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너무 이기적이죠. 자기 사랑을 위해 아들의 사랑을 희생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니까요. 아버지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서준이 이제 어떤 행동을 보이게 될까요?

 

 

그런데 정말 이상합니다. 저 또한 서준(장근석)과 정하나(윤아)의 예쁜 사랑을 응원하지 않는 게 아니건만, 그 아이들의 서글픈 이별을 보면서 눈물도 흘렸건만, 저는 예상치 못했던 서인하의 반전을 접하는 순간 "어떻게 아버지로서 저럴 수가 있나?" 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차라리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서인하가 그 자리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태도를 보였다면 오히려 무척 실망했을 것입니다.

 

준과 하나의 사이를 알게 된 서인하가 충격을 못 이기고 거리를 헤매며 방황하다가, 끝내 김윤희와 함께 눈물을 흩뿌리며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어휴, 그게 재미있을까요? 그걸 보면서 감동받을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서인하는 이미 32년 전에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던 적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다가 자신의 사랑을 놓친 것은 서인하 일생 최대의 실수였습니다.

 

 

 

청년 시절의 서인하는 지나치게 소심하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반면 배려심은 너무 깊었기에 오히려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단짝친구 이동욱(김시후)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서인하는 김윤희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표현조차 못 하고 제풀에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때 서인하의 생각으로는 자기만 희생하고 물러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것 같았죠. 하지만 그는 소심한 성격답게 자기 안으로만 파고들어가느라, 정작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사랑하는 그녀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짓을 해버린 거였죠.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좋은 뜻을 품고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얻지 못한 윤희는 타국에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고 (서인하는 김윤희가 죽은 줄만 알고 있었으니), 친구 이동욱은 버젓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으니, 서인하의 희생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헛일이 되어버렸지요.

 

 

 

자신을 짝사랑하던 백혜정을 우연한 실수로 임신시켜서 그녀와 결혼했으나, 그 결혼생활은 최악이었습니다.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백혜정의 욕망을 서인하는 채워줄 수가 없었고, 그런 부모의 비뚤어진 저울추 사이에서 자라난 아들 서준은 거의 웃지도 않는 냉소적 인간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서인하 자신의 인생이었습니다. 김윤희를 향한 사랑이 그렇게 지독한 것인 줄을 미처 몰랐던 탓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고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인데,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김윤희를 향한 그리움은 서인하의 가슴속에서 날로 커져만 갔습니다. 아무런 해결책도 없는, 그야말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 희망없는 사랑 때문에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어떻게 해도 가슴속에서 밀어낼 수가 없으니 하루하루가 미칠듯한 지옥이었습니다.

 

 

소심하지만 따뜻하고 단정하던 청년 서인하가, 32년이 흐른 후에는 어째서 음울하고 메마르고 광기어린 중년신사로 변해 버렸을까요? 사람의 타고난 성품은 어지간해서 변하지 않는 법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그 동안 서인하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눈을 번뜩이며 넓은 화폭에 미친듯이 그림을 그려댈 때는 고흐의 광기가 느껴지다가도, 아내와 아들을 대할 때면 목석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던 모습... 아내 백혜정이 술과 약에 취해 날뛰는 것을 보면서도 서인하의 표정은 차갑기 이를 데 없었고, 늘상 삐딱하던 아들 서준이 처음으로 진실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간절히 애원할 때도 그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냉정하고 담담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제력을 잃고 허둥지둥하던 순간이 언제였던가요? 비 오는 거리에서 김윤희의 모습을 발견하던 그 순간, 서인하의 얼굴에는 비로소 인간다운 표정이 나타났습니다. "맞습니까?" 비에 젖어 묻던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는지, 그 장면을 보신 분들은 모두 기억하시죠? 그 순간 서인하의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겁니다.

 

 

물론 서인하의 지금 행동을 잘 하는 짓이라고 칭찬해 줄 수는 없습니다. 32년 전에는 희생이 필요 없었지만, 지금은 희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대단한 사랑이었으면 그 때 붙잡을 일이지, 왜 다 늙은 이제와서 난리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서준은 "아버지가 한 번 더 포기해 주세요" 라고 애원했지만, 저는 차마 서인하에게 한 번 더 희생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젊은 날의 희생 때문에 평생토록 후회하며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서인하가 이기적인 사랑을 선택한 것은 그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32년의 세월을 통해, 서인하는 어떻게 해도 김윤희에 대한 사랑을 끊어버릴 수 없는 사람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는데, 살아 숨쉬는 그녀와 다시 사랑을 나누는 벅찬 행복까지 알아 버렸는데... 이제 어쩌겠습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포기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설령 서인하가 아들 서준을 위해 다시 한 번 희생한다 해도 그 결과로 모두 행복해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서로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사돈이 되어버린 두 사람이라니... 그들의 앞날은 상상만 해도 꺼림칙하죠? ;;

 

 

이 드라마의 결론과 관계없이 저는 서인하의 이기적인 사랑을 이해하며, 오히려 과거처럼 우유부단하지 않은 그의 과감함에 적극적으로 응원까지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요. 좀 불안한 것은 김윤희의 병(病)인데... 그 소재 자체가 너무 식상하고 뻔한 것이라 예감이 어둡긴 하지만, 그래도 제발 이 아름다운 드라마가 유치한 통속 막장극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애틋하기 그지없는 두 줄기의 사랑이 함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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