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이영 세자 (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비가 오십니다. 언제나 정겨운 비님이 오십니다. 어머니... 오늘도 이렇게 저를 찾아와 주시는군요.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토록 황망하게 떠나가신 후, 저는 비가 올 때마다 어머니를 뵙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어머니와 더불어 맨발로 젖은 풀잎을 밟으며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몸을 맡기던 그 날, 저는 딱딱한 체면과 함께 두려움도 훌훌 벗어 던졌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저를 가르치셨지요. 허울좋은 말이 아니라 거침없이 몸을 던지는 실천으로, 과감한 용기와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머님과 저는 한 나라의 중전이고 세자인데 나막신도 우산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찌 빗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고 제가 물었을 때 어머님은 반문하셨습니다. "왜 꼭 그래야만 합니까? 중전은, ..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모습만을 보이셨을 때, 그 날부터 저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아버님을 뵈었지요. 아버님도 저와 마찬가지로 태어나 보니 왕의 아들이요 이 삭막한 궁궐이 집이었을 뿐,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버님을 원망했습니다. 운명일 뿐이라 해도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면, 그토록 겁쟁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이 무력할 수는 있지만 비겁할 수는 없다고 여겼기에, 아버님은 왕의 자격이 없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토록 오만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어렸기 때문이고, 세상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지요. 제법 영리하고 세상 이치를 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해 왔지만 모두 헛된 일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처음으로 제 앞에서 눈물을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