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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세자빈 화용(정유미)인지, 그 여동생 부용(한지민)인지, 아니면 또 다른 궁녀인지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300년 전의 조선 왕궁에서 연못에 빠져 죽었습니다. 비록 한창 젊은 나이의 서글픈 죽음이었지만, 그래도 연못에 떠다니던 연꽃들과 평화롭게 노닐던 물고기들은 자기들만의 노래와 언어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해 주었겠지요. 하지만 300년 후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가냘픈 몸뚱아리를 사정없이 자동차에 받힌 후 내동댕이쳐진 박하... 그녀가 풍덩 빠져버린 저수지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그 이름도 살벌한 공룡저수지에는 향그러운 연꽃 한 송이 떠다니지 않고, 각박한 서울 생활에 지쳐버린 물고기들은 밤낚시꾼들의 속임수를 피해 꽁꽁 숨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박하의 곁에 다가와 위로의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는 아무도..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 이유는 오직 하나뿐...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내가 솜털보다 가벼운 영혼이 되어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본 것은 연못에 빠져 죽은 그녀를 보며 눈물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느닷없이 조선의 왕세자가 되어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육신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끝없이 순환하는 인생의 고리와 그 안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이어지는 인연들을, 나는 배우지 않았는데도 한 순간에 깨달았던 거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나 놀라움 따위가 아니라 깊은 슬픔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부용을 사랑했으면서도... 끝내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그녀가 처제만 아니었다면, 존귀한 나의 신분으로 꺾지 못할 꽃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