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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중 하나이다. 사주나 타로 등의 점술이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흥행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1990년에 발표된 영화 '백 투더 퓨처2'의 내용을 기억하시는가? 30년 후의 미래로 시간 여행을 갔던 주인공 '마티'는 과거 50년 동안의 스포츠 경기 통계가 담겨 있는 책 한 권을 가져오려다가 '브라운' 박사의 만류로 실패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악당 '비프'가 타임머신을 훔쳐타고 더 오래 전의 과거로 달려가 그 스포츠 연감을 젊은 날의 자기 자신에게 전해주면서 모든 현실은 달라졌다. '비프'는 단지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돈이 곧 권력인 세상에서 그 힘을 마음껏 휘두른 '비프'의 악행..
여주인공 세령(문채원)은 이제 슬슬 민폐 캐릭터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승유(박시후)의 형수와 조카딸 아강이는 노비의 신세가 되어 원수의 일당 중 한 명인 온녕군(윤승원)의 집에서 일하게 되는데, 세령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가엾은 모녀를 구해 승법사로 피신시킵니다. 역적의 수괴로 몰린 김종서(이순재)의 가족을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다른 사람이라면 죽을 위기에 처할 것이나, 수양대군(김영철)의 딸인 세령으로서는 자신의 안위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요. 하지만 어쨌든 이 정도의 활약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령은 더 이상 민폐 캐릭터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김승유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겠다는 협박(?)으로 아비를 설득하려던 모습도..
원래 사극을 좋아하는 저이지만 최근 들어 새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현대물에서는 '약한 남자'도 매력적으로 그려질 수가 있지만 사극에서는 절대 '약한 남자'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분이 낮은 사내라도 상관없고, 심산유곡에 은거하는 선비라도 상관없습니다. 반드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어야만 강한 남자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곤경에 처했을 때 스스로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그 상황을 타개해 나갈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은 채 모든 비극의 소용돌이를 홈빡 뒤집어쓰고 만다면, 그 무력한 모습으로는 어떤 공감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현재 방송 중인 '계백'과 '공주의 남자'에서는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초반이라서 그럴 것입니..
어린 단종은 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경혜공주(홍수현)의 사가를 찾아가고, 오누이는 서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부마 정종(이민우)은 친구 신면(송종호)에게 이렇게 말하는군요. "언제나 오늘처럼만 평온했으면 좋겠네. 전하께서도 공주마마께서도 아무 걱정 없이 환히 웃으실 수 있게..." 하지만 신숙주의 아들 신면은 이 평온한 시간이 결코 길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정종의 사람좋은 미소에 화답하지 못합니다. 임금이 궁궐을 비운 그날 밤, 수양대군(김영철)은 네 명의 교자꾼과 한 명의 시종만을 거느린 채 김종서(이순재)의 집을 찾아갑니다. 김종서와 단둘이 마주앉은 수양이 긴히 의논할 것이 있다며 꺼낸 말은, 바로 자신의 장녀 세령(문채원)과 김종서의 막내아들 김승유(..
경혜공주(홍수현)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현재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입니다. 남녀 주인공인 세령(문채원)과 김승유(박시후)는 마음속에 담아두고 사랑을 키워가던 사람과 이별해야만 하는 아픔을 견디는 중이지만, 제게는 그들보다 경혜공주의 고통이 훨씬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원래 경혜공주는 병든 아버지 문종(정동환)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어린 남동생(세자, 훗날의 단종)의 앞날을 지켜주기 위해 우의정 김종서(이순재)의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부마로 낙점되었던 김승유는 수양대군(김영철)의 마수에 걸려 공주를 희롱했다는 누명을 쓰고 참수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 바람에 김종서는 아들의 목숨의 구하기 위해 수양에게 무릎을 꿇고 정치에서 물러나고 말았으니, 이제 쇠약한 문종의 곁에는 최후의 바람막이조차 사..
학창시절,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端宗哀史)'를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냉혈한 숙부에 의해 끝내 죽임을 당해야 했던 비운의 임금 단종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어린 주군을 지키려 했던 사육신을 비롯한 충신들의 애절한 이야기는 조선 역사 중 가장 슬프면서도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금계필담(金溪筆談)이라는 야사의 일부 내용과 작가의 상상을 보태어 만들어진 이야기군요. 1~2회의 느낌은 아주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맘에 꼭 드는 드라마가 없었는데, 이제 '공남' 덕분에 갈증이 좀 풀릴 것도 같습니다. 특히 남주인공 김승유는 '선덕여왕'의 비담 이후로 사극 속의 가장 비극적인 히어로가 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