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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식상한 소재를 다루었으되 그 방식의 신선함으로 많은 기대감을 안겨 주며 시작했던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적잖은 아쉬움을 남기고 종영했습니다. 중간까지의 전개를 보았을 때는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내용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탄탄한 플롯을 지니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며 인과관계가 불확실해졌습니다. 윤두수 집안의 과거에 얽힌 수많은 비밀들은 결국 풀리지 않았고, 그토록 관심을 모으던 만신의 정체도 알고보니 단순하고 황당할 뿐, 복잡하고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윤두수에게 원한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어떤 개인적 사정으로 죽지 못하는 몸이 되어 수백년간이나 사람의 간을 먹으며 살아 온 요괴(?)에 불과했군요. 천우의 어머니라던 기생 매향이 어떤 존재였는지, 왜..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플롯이 생각보다 더욱 복잡하고 탄탄하게 짜여져 있음을 7회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윤두수의 딸 초옥과 구미호의 딸 연이, 두 소녀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얽히게 하여, 괴질로 죽어가는 초옥을 살리기 위해서는 연이가 필연적으로 희생되어야 한다는 설정부터가 범상치 않았지요. 그래서 초옥을 살리려는 윤두수의 부정(父情)과 연이를 살리려는 구미호(구산댁)의 모정이 충돌했고, 아이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매순간의 전개는 숨막히도록 긴박했습니다. 그 와중에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남녀는 얄궂게도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안타깝게 엇갈리는 감정선이 갈수록 증폭되면서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초반의 설정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앞으로는 윤두수 일가..
1회의 폭풍 전개 이후로 약간 템포가 느려지긴 했어도 그쯤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내용은 흥미진진했고 모든 상황의 전개는 긴박감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어제 5회에서는 솔직히 '시간 끌기'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나름대로 긴박하긴 했는데, 그 긴박감도 너무 오랫동안, 같은 양상으로 수차례 반복되니까 더 이상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만 좀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1차 추격전 양부인(김정난)의 사주를 받은 저잣거리 왈패들에게 연이(김유정)가 쫓기기 시작하면서 5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긴박하게 쫓기던 연이는 결국 붙잡혀서 흰 천에 휩싸인 채 강물에 던져지지만, 질식하기 직전에 맹수(여우)의 본능을 드러내면서 날카로운 발톱(손톱?)으로 천을 찢고 강을 헤엄쳐 나옵..
너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가슴을 천근 만근으로 짓누르는 돌덩이를 네가 알겠느냐? 부질없는 줄을 알면서도 나는 너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나도 원래 이렇게 나쁜 사내는 아니었노라고, 너를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소리없이 너에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내 딸을 살리기 위해 네 딸을 죽이려 하는 내가, 너에게 사랑도 은인도 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자식을 둔 아비로서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 하고 싶지만, 너 또한 자식을 둔 어미이기에 그럴 수도 없구나. 내 딸을 위해 제물이 될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연이를 수양딸로 삼아 초옥이와 차별 없이 길렀을 텐데... 나는 너와 연이에게 평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을 텐데... 사람의 일이란 간절한 소망으..
'구미호 여우누이뎐' 1회는 식상한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의외로 신선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화면, OST 등도 괜찮았지만, 제 마음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와닿은 부분은 캐릭터의 새로운 해석이었습니다. 이제껏 대부분의 구미호는 사람을 해치며 그 간을 먹어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비극적 운명의 가해자로 그려졌으며, 상대적으로 인간은 구미호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약자이며 피해자로 묘사되었지요. 그러나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는 정반대였습니다. 구미호는 그저 여우로 태어난 것뿐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고 아무도 해치지 않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을 위해 구미호를 이용하거나 해치려 하고 있었습니다. 가냘픈 미모에 청순함과 표독스러움의 이미지를 겸비한 한은정은 '구미호' 역할에 제격이었습니다. 대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