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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 재미있지만 몰입할 수 없는 딜레마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싸인

'싸인' 재미있지만 몰입할 수 없는 딜레마

빛무리~ 2011. 1. 1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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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양 주연의 '싸인'이 야심차게 출범한지도 2주가 되었습니다. 초반부터 빠른 템포와 치밀한 전개로 흥미를 끌며 호평을 받았으나, 4회까지 방송된 현재 시청률은 이상하게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군요. 물론 경쟁작 '마이 프린세스'가 김태희의 열연에 힘입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점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그 이유를 '싸인' 자체내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전체적인 얼개를 보면 '싸인'은 나름대로 탄탄하게 잘 짜여진 구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잡한 듯 하면서도 앞뒤가 잘 맞고, 일어나는 사건마다 흥미를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재미는 있어요. 그런데 등장인물을 하나씩 살펴 보면, 수많은 캐릭터 중 그 누구에게도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 저 사람은 겉으로는 못되게 굴지만 속마음은 착한 사람이고, 또 저 사람은 출세욕에 눈먼 나쁜 사람이구나. 저 여자아이는 정의롭고 열정적이며 끝까지 주인공의 편이 되어 주겠구나..." 뭐 이런 식으로 한켠에 물러서서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뿐, 저 자신이 윤지훈(박신양)이 되지도 못하고, 이명한(전광렬)이 되지도 못하고, 고다경(김아중)이 되지도 못합니다. 습관적으로 인물에 몰입하며 드라마를 시청하는 저로서는 꽤 난감한 상황입니다.

약간 옆으로 새는 이야기지만, 저는 '드림하이'와 살짝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드림하이'는 '싸인'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헛점을 지닌 드라마입니다. 일단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면에서 턱없이 밀리는 데다가, 내용과 소재의 독특함과 신선함에 있어서도 '싸인'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앞뒤가 잘 맞아야 하는 개연성 면에서도 수시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구멍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싸인'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스토리는 재미없어도 '드림하이'는 그 등장인물에 몰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비록 심하게 단순화된 캐릭터들이지만, 일단 몰입하게 되면 그 정도의 유치함은 금세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교사 강오혁(엄기준)의 캐릭터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며, 학생들 중에도 윤백희(함은정), 진국(택연), 송삼동(김수현)의 캐릭터는 짧은 시간 내에 벌써 명확한 특징을 잡아서 자기 행동에 대한 설득력을 확보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로 하여금 "저 인물이 지금 왜 저런 행동을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지 않고 자연스레 캐릭터의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 수 있죠.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에 비해 '싸인'의 캐릭터들은 언뜻 보기에 유치하지도 않고 굉장히 매력적인 듯한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감정이 마음에 와닿지를 않습니다. 윤지훈은 왜 시종일관 버럭대는 것이며, 고다경은 왜 속도 없이 그에게 매달려 살살거리는 것이며, 이명한은 왜 그토록 철면피한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그렇겠지... 하며 담담히 바라볼 뿐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무엇보다 초반에 강하게 어필해야 하는데 '싸인'은 전체적인 스토리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인물'을 놓친 면이 커 보입니다.

윤지훈이 법의관이 된 이유는 은퇴한 정병도 원장(송재호) 때문이라고 시놉에 나와 있습니다. 돌연사로 남을 뻔했던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끝까지 파헤쳐 진실을 밝혀내 준 정병도에게 감화를 받은 것이지요. 이 정도면 그가 왜 그토록 '진실'을 고집하는지에 대한 기반은 마련된 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짓투성이의 악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윤지훈의 캐릭터는 섬세한 내면의 고뇌를 드러내기는 커녕 이해할 수 없는 버럭질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신뢰했던 정병도 원장이 서윤형(건일)의 부검 결과를 조작해서 이명한의 손을 들어 준 사건은 윤지훈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윤지훈은 "왜 그러셨어요?" 라고 한 번 물어 본 후에, 스승이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 하니 그냥 포기하고 덮었습니다. 남부 분원으로 내려가라는 명령을 받자 그냥 아무 말 없이 짐을 싸서 내려갑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고뇌 끝에 행동을 결정하는지, 윤지훈은 계속 '행동'만을 보여줄 뿐 '내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들여다보려 해도 윤지훈의 속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며 선한 역할인 윤지훈이 너무 지나치게 까칠한 성격으로 나오는 것도 몰입을 방해합니다. 고다경은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고 그를 도와 서윤형의 부검에 참여했으며, 이명한과의 대립에서 억울하게 몰리는 윤지훈의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도 이 정도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윤지훈은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시종일관 고다경을 무시합니다. 아무리 속마음이 따뜻하고 정의롭다 해도, 겉으로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인물에게 호감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박신양의 버럭 연기도 어딘가에서 많이 본 것처럼 식상하기만 하네요.

씩씩한 캔디 캐릭터인 고다경도 그냥 원래 성격이 그런가보다 하면서 볼 뿐, 그녀의 감정에도 좀처럼 공감이 되질 않습니다. 동생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사건의 진실이 묻혀버릴 뻔했던 충격적 경험을 갖고 있긴 하지요.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보니 그녀의 동생은 죽지 않은 것 같더군요. 그렇다면 왜 굳이 꼭 검시관이 되려고 했는지, 그 결단의 이유도 충분치 않습니다. 평소의 행동을 보면 성격도 만만찮은 것 같은데, 번번이 호의를 무시당하면서도 무조건 윤지훈의 편이 되어주는 모습도 좀 이상합니다. 그냥 저 아이는 정의로운 아이니까, 이명한보다는 윤지훈이 정의로우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설정'상으로 이해할 뿐이지, 그녀의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이명한은 거의 '이유없는 악역'에 가깝습니다. 나름대로 삶의 원칙이 철저한데 그 방향이 선한 쪽이 아닌 거죠. 냉혈한이며 무자비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이언트'의 조필연(정보석)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필연은 아들 조민우(주상욱)을 대하는 모습 등에서 조금은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는데, 이명한은 아직까지 그런 것도 없군요. 일종의 로봇 같아요.

고다경의 선배 검시관 정문수(윤주상)는 국과수의 전임 원장인 정병도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들은 기품 있고 선한 얼굴을 지녔으며, 남녀 주인공을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스승격의 인물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뒤편으로 불의와 손을 잡은 과거가 있거나, 또는 현재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정병도는 과거의 죄에 발목이 묶여 끝내 이명한을 제압하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퇴임했으며, 정문수는 자기가 맡은 마지막 사건이었던 서윤형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CCTV 테잎을 몰래 빼돌려 불태웠습니다.

정병도가 그나마 회개한 인물의 이미지라면, 정문수는 삶에 지쳐 올바른 선택을 아예 포기하고 주저앉은 맥빠진 노인의 이미지입니다. 이 두 사람의 캐릭터는 잘만 표현된다면 충분히 매력적일 것 같은데, 이들 역시 '행동'만을 보여줄 뿐 '내면'의 고뇌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글쎄, 나중에 천천히 보여줄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그 때는 이미 늦지 않을까요?

어쨌든 드라마 자체는 재미있는데, 인물 중 누구에게도 몰입할 수 없는 '싸인'은 저를 매우 당황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인공이죠. 저의 판단으로는 윤지훈의 캐릭터 변화가 시급합니다. 지금처럼 이유도 없이 버럭질만 계속해서는 점점 더 침체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옆집에서는 김태희가 사상 최고의 귀여움과 러블리함으로 어필하고 있는데, 그에 대항하려면 매력없이 소리만 질러대지 말고 뭔가 그 속에 숨겨진 따뜻함과 자상함을 빨리 드러내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은희 작가는 스토리 구성에 탁월하지만 인물의 내면 묘사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약한 듯 싶습니다. 오히려 그런 부분은 삽시간에 보완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좀 염려스럽군요. 필요하다면 보조 작가의 도움을 좀 받아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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