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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김유신의 충성심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선덕여왕'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김유신의 충성심

빛무리~ 2009. 12. 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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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55회에서도 김유신은 변함없이 우직한 충성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일신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신국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김유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애국선열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그 충성심에 공감하거나 몰입할 수 없더군요. 엄태웅은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건만, 예쁜 유모차 안에 귀여운 아기 대신 통조림 깡통이 잔뜩 들어차 있는 것처럼 그 충성심이 생뚱맞아 보이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무릇 애국심이라 함은 철저한 체험과 교육에 의하여 고취되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나라를 잃어 보았던 백성들은, 나라 잃은 핍박과 설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그 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국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체험이 없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꾸준한 교육을 통해 애국심을 함양시킵니다. 만약 체험도 교육도 없다면 애국심이라는 것은 당췌 생길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김유신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을까요? "너는 신라의 백성이니, 자나깨나 목숨을 다하여 신라에 충성해야 한다." 라는 교육을 받았을까요? 아무래도 아닐 것 같지 않습니까? 오히려 가야 황실의 후예로서 어떻게든 몰락한 가문을, 혹은 몰락한 나라(가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유신과 그의 가문은 신라에서 크나큰 은혜를 입어 백골난망하도록 감읍하며 가슴 속 깊이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하였을까요?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뭐 그럴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가야 유민들이 80년간 핍박받으며 고초를 겪었듯이, 유신의 가문도 그 정도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가야 출신이라는 이유로 온갖 질시와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가야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마치 그들의 이마에 새겨진 주홍글씨와도 같았지요.

김서현이 만명공주를 유혹하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던 이유도, 그리고 역사속의 김유신이 여동생 화형식 쇼를 벌이면서까지 김춘추와 인척이 되려 기를 썼던 이유도, 사실은 그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실제 김유신의 가문 사람들은 매우 대담하고 냉혹하고 권모술수에 능하며, 신의보다는 실리를 우선시하는 특징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만 어울립니다.

그런데 그런 김유신의 캐릭터를 단순 우직에다가 지극 충성의 인물로 잡아 놓으니 이건 도무지가 달걀에서 오리가 태어난 것처럼 황당스럽기만 합니다. 대체 김유신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라에 충성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입니까?


덕만에 대한 사랑? 이미 빛을 잃은지 오래입니다. 여왕은 이미 여자이기를 포기했고, 김유신 또한 여왕과 무슨 미래를 기약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단지 아직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신라에까지 목숨 걸고 충성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억지입니다.

그렇다면 유신이 월야에게 강변(强辯)했듯이, 가야의 백성이 앞으로 자손을 남기며 평안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일까요? 글쎄요. 가야 백성을 위해서 신라에 목숨 걸고 충성한다는 말은 더욱 더 어불성설입니다. '이미 국가로서의 가야는 회복 불능의 지경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신라에서 철저한 2인자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 이라는 김유신의 논리는 처음부터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1인자에 대한 아주 확고한 신뢰가 있어야만 2인자를 목표로 돌진할 이유가 있는 것인데, 과연 가야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 '신라 황실' 이라는 1인자가 신뢰할만할 대상이겠느냐 하는 의문이 들기에 그렇습니다. 김유신이 덕만을 신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이지요. 월야나 가야 백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게다가 2인자의 자리라도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차고 앉아 권력행사를 함으로써, 가야 백성에 대한 차별과 핍박을 서서히 없애고 제대로 확고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김유신의 그 논리는 약간이라도 실현이 된다 하겠습니다. 두 나라, 두 민족이 합쳐지는 과정은 엄청난 세월을 필요로 할 테니까요. 그런데 신라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우직하게 충성을 다하다가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가버리면, 대체 그 잘난 2인자는 누가 맡아서 역할을 해준다는 말입니까?


이쪽 저쪽으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김유신의 입장에서는 신라에 그토록 우직하게 헌신적인 충성을 다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유신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는 역시 교활하고 영민한 기회주의자입니다. 현재 그가 처한 입장에는 그것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역사속의 김유신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가문의 영달과 권력욕이 있을 뿐, 가야든 신라든 어떤 나라에 대한 우직한 충성심 따위는 없어야 합니다. 선덕여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듯 보이는 지금의 행보는 그녀의 환심을 사서 확고한 출세길을 열어 보려는 계획적 처세술일 뿐이어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만 모든 논리가 어색하지 않게 맞아떨어집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김유신은 완전 곰탱이니... 도대체 어떻게 그 인물을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큰 역할이든 작은 역할이든 선역이든 악역이든, 그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개연성있고 진정성있던 캐릭터들은 거의 다 빠져 버리고, 이제는 도무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아리송한 캐릭터, 또는 병풍 캐릭터들만 남았으니, 무엇보다도 '인물'에 중심을 두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저로서는 차츰 리뷰를 쓰기도 매우 힘들어짐을 느낍니다. 당췌 공감이나 몰입이 안되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가 염려했던 것에 비해 설원랑이 아주 조금은 비장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미실과 함께 떠났을 경우와 비교한다면 역시 김빠진 최후라 하겠으나, 어쨌든 그 동안 굴욕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있었던 보람이 아예 없지는 않게 될 모양입니다. 가장 일관적이고 진정성있던 캐릭터 설원공의 아름다운 최후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오늘 '선덕여왕'을 다시 기다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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