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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연인' 결말을 반성한다는 김은숙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본문

드라마를 보다

'파리의 연인' 결말을 반성한다는 김은숙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빛무리~ 2017. 6. 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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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13년 전인 2004년, 아직 신인 드라마 작가였던 김은숙은 '파리의 연인'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다. 그런데 모든 것이 여주인공의 꿈(소설)이었다는 식으로 마무리된 결말은 대다수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당시 나도 그 작품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솔직히 결말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결말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흥분할 게 있나 싶었다. 하지만 나 같은 시청자보다는 그 결말에 충격받고 분노한 시청자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최근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를 연달아 빅 히트시키며 새삼스레 저력을 과시한 김은숙 작가는 백상예술대상에서 두 번의 극본상과 TV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이 시대 최고의 인기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선지 모처럼 꽤 긴 내용의 인터뷰를 했는데, 그 중에도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확 잡아끄는 내용이 있었다. 인터뷰어가 "'파리의 연인' 결말이 아직도 회자될 만큼 당시 충격적이었죠?"라고 묻자 김은숙 작가는 "아직도 반성하고 있어요. 시청자가 못 받아들였으면 그건 나쁜 대본이란걸 깨달았어요.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재미있어야 하죠. 저 혼자 재미있으면 일기를 써야겠죠.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 하고 욕을 들으면 그건 잘못이에요."라고 대답한 것이다. 


곧이어 "그렇다고 깨달은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라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젠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영화를 봤어요. 사슴을 보며 루돌프라 여긴 소녀에 대한 영화였는데 결말이 충격적이었어요. 그 순간 실망감과 함께 깨달았어요. '보는 사람이 원치 않는 결말을 담으면 이런 기분이구나'하고요. 열 아홉 번 재미있게 가져왔으면 마지막도 잘 마쳐야죠. 차라리 그 영화를 보지 말았어야 할 정도로 후회하며 '파리의 연인'때 내가 한 짓이 뭔지 알았어요." 음... 그랬단 말이지? 한편으로는 정말 김은숙 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씁쓸했다. 아예 대놓고 '시청자의 비위를 맞추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라는 작가의 자세가... 


아무리 대중예술이라도, 예술은 엄연한 창조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통해 무언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있어야 한다. 작품의 결말은 그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의도한 메시지보다 시청자의 반응이 더 중요하다니... 시청자가 못 받아들였다면, 시청자가 원치 않는 결말이었다면 그건 나쁜 작품이라니... 나는 김은숙 작가의 뚜렷한 신념(?)이 담긴 그 인터뷰를 보며 약간은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이 시대에는 무슨 일을 하든 이만큼 철두철미한 상업적 마인드를 지녀야만 성공하는구나... 작가가 예술가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구나... 싶었다. 


아무리 다수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해도 극소수의 시청자들은 김은숙 작가가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이해했을 것이고, 이해했다면 '파리의 연인' 결말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뜻을 이해해 준 극소수의 시청자들보다, 자신의 뜻을 비난했던 대다수 시청자를 더 소중히 여겼다. 이러한 인터뷰를 통해 그 결말을 좋아했던 소수의 시청자들이 상처받게 될 거라는 생각보다는, 그 결말에 분노했던 다수의 시청자들이 위로받고 기분 좋아할 거라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이쯤에서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작품에도 결말에도 별 관심 없었던 것이, 내가 그 결말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그래, 일단은 팔아야 하니까, 팔려야 돈이 되니까, 예술가랍시고 그깟 자존심 아무리 지켜봐야 돈이 안 되면 말짱 헛일이니까, 이 치열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 먹고 잘 살려면 더 유능한 장사꾼이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사꾼은 어떻게든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제는 작가들도 (문학, 음악, 미술, 영상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장사꾼이 되지 않으면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사회가 된 모양이다. 보다 많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인기 작가 김은숙은 그러한 현실을 고스란히 인정하며 기꺼이 그 흐름을 따르겠노라 선언한다. 


문득 내가 사랑했던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붕킥'의 결말은 '파리의 연인'의 결말보다 더욱 큰 충격과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수많은 시청자들은 그 결말에 분노했고, 거침없는 욕설과 비난과 저주를 퍼부어 댔다. 하지만 나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그 누구보다 '지붕킥'을 사랑하며 애청했던 나는... 그 결말에 만족했다. 나는 그 결말을 통해 '지붕킥'의 창조자인 김병욱 감독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말 뚜렷이,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지훈과 세경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찌르르 울리면서 깊은 감회에 젖어들곤 한다.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다행히 김병욱 감독은 거센 비난 속에서도 '지붕킥'의 결말을 반성한다거나 후회한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시청자의 바람에 부합하는 결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표현을 한 적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나는 그래서 김병욱 감독을 더욱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감자별2013QR3'을 끝으로 더 이상 시트콤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의 마음 속에는 그저 아쉬움만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 김은숙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나니, 김병욱 감독이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시대에 영합하기보다는 차라리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김병욱은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창조자가 아니었다.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끝내 자신이 의도했던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아 표현하려는 고집스런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높은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의 예술가적 재능이 그만큼 탁월했음을 증명한다. 굳이 비위를 맞춰 주지 않아도 작품 자체가 좋으니까 시청자들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상업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그런 방식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영리하고 재능 있으면서도 비위를 맞춰 주는 다른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 대중은 불편한 고집을 끝내 고수하는 작품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결국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다는 건데, 김병욱은 그러기 싫었던 것 같다. 스텐레스 김이라는 별명처럼, 결코 변하지 않는 그 탱탱한 고집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만 해주어야 한다면,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김은숙 작가의 인터뷰를 읽은 후, 나는 새삼스레 김병욱이 참 고마워진다. 만약 김병욱이 나서서 '지붕킥'의 결말을 반성한다든가 뭐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했다면, 내 마음 속에는 정말 치유되기 어려운 깊은 상처가 새겨졌을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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