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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약속' 이유리 제2의 인생, 행복해질 수 있을까? 본문

드라마를 보다

'천상의 약속' 이유리 제2의 인생, 행복해질 수 있을까?

빛무리~ 2016. 4. 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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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눈길을 주지 않던 일일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은 이유리의 이름 때문이었다. MBC 연기대상의 영예까지 안겨 주었던 '왔다 장보리'의 대성공 후 1년 4개월만의 공중파 복귀였다. 그 동안 케이블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선보이긴 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던 터라, 공중파 복귀를 앞두고 작품 선정에 무척이나 고심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일일극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약간 의아했으나, 어쩌면 이유리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선택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민정'이라는 희대의 악녀 연기로 주목받았던 이유리에게는 갈등의 수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다. 



드라마의 본질은 '갈등'이다. 갈등이 없는 드라마는 한 마디로 재미가 없다. 자극적인 막장드라마가 욕을 먹으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끝없이 소비되는 것은 역시 '갈등 구경'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넘치는 막장의 홍수 속에 모든 악역과 갈등은 시들해지고 말았다. 더 이상 흥미를 끌기에는 너무 식상해져 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연민정' 캐릭터가 그토록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이유리의 연기에 힘입은 면이 컸다. 물론 김순옥 작가의 대본이 모처럼 잘 빠졌던 탓도 있지만, 어딘지 보는 것만으로도 처절한 감성을 자아내는 이유리의 강렬한 연기가 없었다면, 전설적인 악녀 연민정의 탄생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천상의 약속'은 '일일연속극 + 막장드라마'의 전형적인 공식에 들어맞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개는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최초의 플롯 자체가 별로 신선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직 이유리의 이름만으로도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이 뻔한 클리셰들 속에서 이유리는 그녀만의 특별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 100부작으로 기획된 이 작품은 현재 43회까지 방송되었는데, 현재까지 이유리 특유의 임팩트가 크게 발현되지는 못한 듯 싶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인공 '이나연'의 캐릭터가 순하고 착한 성격이라, 계속 당하고 사는 모습이 청승맞아 보였던 탓이다. 


하지만 '이나연'의 쌍둥이 언니 '백도희' 역할까지 1인 2역을 감당하며, 이나연과 백도희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든 연기 내공은 인정할만 했다. 그리고 43회에서 백도희가 숨을 거두며, 이나연에게는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죽음의 장소에서 이나연과 백도희의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백도희로 살아가게 될 이나연의 새로운 인생이 못내 흥미로워지는 이유는, 두 사람의 상반된 캐릭터를 적절히 섞어서 표현해 나가야 할 이유리의 연기력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백도희의 톡 쏘는 성격과는 다르겠지만, 불타는 복수심에 눈 뜨게 될 이나연은 단연코 지금까지의 청승맞은 모습과는 달라질 것이다.


 

이나연의 딸 새별이(김보민)는 현재 뇌수술 후 회복 중이지만, 짐작컨대 역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애타게 엄마를 찾는 새별이에게 냉정한 어조로 "네 엄마는 이제 못 와" 라고 말하는 장세진(박하나)의 모습이 예고편에 비쳤는데, 수술 후 경과가 썩 좋지 않다던 의사의 말을 생각해 보면 새별이는 그 충격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죽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이나연은 백도희의 신분으로 박휘경(송종호)과 결혼하고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어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해야 할 텐데, 만약 천금같은 딸 새별이가 살아 있다면 그 아이를 혼자 외롭게 놔두고 복수의 풍랑에 뛰어들기가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새별이의 죽음은 이나연의 복수심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차피 이나연은 강태준(서준영)이라는 남자에 대한 미련을 접은 상태였다. 그의 뼈아픈 배신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새별이만 키우며 살아가려던 참이었다. 따라서 배신에 대한 복수라면 개연성이 없다. 백도희의 죽음도 충격이긴 하겠지만, 30년 넘게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느닷없이 알게 된 쌍둥이 언니의 존재가 그렇게나 애틋해서 복수까지 결심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새별이가 죽는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미련없이 놓아 주겠다고 했는데도, 굳이 아이까지 빼앗아 가겠다며 난리치다가 죽게 만든 그 집안 사람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건 복수극이니까, 이나연의 복수는 끝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보통 막장 복수극의 전개라면 부모의 원수를 응징함과 동시에 빼앗겼던 가업을 되찾아 부모의 한을 풀어주고 밝은 미래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는 식인데, 이나연에게는 파멸시켜야 할 원수만 있을 뿐 되찾아야 할 소중한 가치가 없다. 복수를 한다고 새별이나 백도희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다. 원수의 재산을 모조리 빼앗아 봤자 별로 속시원할 것 같지도 않다. 말하자면 이나연에게 주어진 숙제는 그저 복수를 위한 복수일 뿐, 그 이후의 희망찬 미래가 약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칫 허무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원수인 박유경(김혜리)과 장세진 모녀에게 복수를 한다 해도, 장경완(이종원)과 박휘경의 존재는 만만찮은 걸림돌이다. 비록 엄마를 배신했고 나연에게도 조금 못되게 굴긴 했지만, 장경완은 엄연한 친아버지다. 박유경에게 철저히 속아서 아무것도 몰랐을 뿐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한 것은 없는데, 생부인 장경완까지 복수의 대상에 포함시키기도 어렵고 쏙 빼놓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박휘경은 사랑 없는 결혼으로 복수에 이용하게 될 남편인데, 이 사람이 너무 착해서 문제다. 이나연의 복수로 가장 큰 상처를 입고 선의의 피해자가 될 사람이 휘경인데, 나연은 이 순수한 남자에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이나연이 박휘경을 사랑하게 된다면, 원수 박유경이 그의 누나라는 사실 때문에 복수에도 지장이 없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나연은 행복해지기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긴 하지만,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답답한 고구마를 훨씬 더 많이 먹게 될 것 같아서 약간 불안하기도 하다. 무릇 주인공과 악역은 복잡한 가족 관계로 얽히지 말아야 산뜻한 법인데, 이 지저분한 얽힘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백도희가 된 이나연을 어떻게 표현할지, 이유리의 연기를 기대하면서 당분간은 계속 시청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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