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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이슈

아이유 제제 논란, 자유보다는 존중이 먼저다

빛무리~ 2015. 11. 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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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아이유가 지난 달 23일 발표한 신보 '챗셔(CHAT-SHIRE)'를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앞서 제기된 논란은 표절 의혹이었다. 수록곡 'Twenty-Three'에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2007년 곡 'Gimme more' 일부가 무단으로 샘플링 됐다는 주장이 스피어스 팬을 중심으로 대두된 것이다. 그에 관해 아이유 소속사는 "해당 보이스 샘플의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해, 브리트니 스피어스 측에 확인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데 표절 의혹이 진행중인 상태에서 잇달아 또 하나의 논란이 점화되었다. 수록곡 '제제'의 가사가 원작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 대한 왜곡된 해석뿐 아니라 소아성애 심리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문제가 된 가사는 5살 소년 제제를 가리켜 "넌 아주 순진해 /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 어딘가는 더러워" 라고 표현한 부분이었다.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제제는 원작자인 J. M. 데 바스콘셀로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여 창조한 것이며,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눈물과 공감을 자아낸 캐릭터였기에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국내에 번역 출간한 출판사 '동녘'측에서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파문은 시작되었다. "학대로 인한 아픔을 지닌 다섯 살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동녘'은 주장했다. 


또한 재킷이미지에 나온 제제의 이미지가 상업적이고 성적인 요소가 다분한 '핀업걸'처럼 표현된 점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사실 '챗셔'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타이틀곡 '23'의 뮤직비디오는 네티즌들에 의해 '로리타 콘셉트' 등 성적인 코드로 해석되었고, 앨범 티저 영상은 'Lost Things'라는 제목의 외국 스톱모션 영상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오직 하나의 앨범을 두고 이토록 많은 의혹과 논란이 일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과연 아이유에게는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것이며, 그녀에게 억울함이 있다면 그 억울한 감정은 또 어느 만큼의 정당성을 지닌 것일까? 


핵심은 '표절'과 '문학 작품의 해석' 그리고 '성적 코드'의 문제인데, 아이유 측에서는 모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주장으로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중에도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이 끌리는 것은 '문학 작품의 해석' 부분인데, 이는 현재 가장 뜨거운 논란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과연 문학 작품의 해석에 있어 소비자의 '자유'가 먼저일까, 아니면 작품에 대한 존중이 먼저일까? 이 쟁점에 관한 필자의 의견부터 밝혀 본다면, 나는 자유보다 존중이 우선이라 말하고 싶다. '작품에 대한 존중'은 곧 '원작자에 대한 존중'이며, 범위를 확대시켜 보았을 때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 할 수 있는데,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자유보다 무서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문화계의 몇몇 유명 인사들도 논란에 참여했다. 소재원과 이외수 등의 소설가는 '작품 존중'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택했고, 허지웅과 진중권 등의 평론가는 '해석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입장을 택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허지웅은 지난 5일 "출판사가 문학의 해석에 있어 엄정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든 문학은 해석하는 자의 자유와 역량 위에서 시시각각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고 SNS를 게재했다. 하지만 이외수는 아이유 논란에 대해 네티즌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전시장에 가면,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 라는 경고문을 보게 됩니다. 왜 손대지 말아야 할까요?"라고 반문하며 자신의 뜻을 드러냈다. 


양측의 주장은 모두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다. 허지웅은 "이외수 작가님은 자기 작품이 박물관 유리벽 안에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끔 박제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아이유에 대한 비판을 '획일화의 강요'라 규정지으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고 취향을 거스르지 않으며 주류의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는 표현만을 '표현의 자유' 아래 두려 한다. 그러나 가장 불편하고 도저히 동의하고 싶지 않은 표현도 제시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동의할 수 없다. 무엇이든 선을 넘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 중에도 '자유'가 선을 넘는 것은 가장 위험하다. 


이외수 작가의 발언이 어찌 예술 작품을 박제화시키자는 뜻이겠는가? 해석은 물론 자유지만 작품의 본질 자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영화 '소원'의 원작자인 소재원 작가는 보다 강력한 어조로 아이유의 왜곡된 해석을 비판했다. "예술에도 금기는 존재한다. 만약 내 순결한 작품을 누군가 예술이란 명분으로 금기된 성역으로 끌고 들어간다면 난 그를 저주할 것이다. 최후의 보루는 지켜져야 예술은 예술로 남을 수 있다." 이어 "창작의 고통을 모르는 평론가 따위의 말장난이 더 화가 난다."고 덧붙임으로써 허지웅의 주장을 반박했다. 피고름으로 탄생시킨 자식과도 같은 작품이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난도질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창작자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든 진중권 교수의 발언이 있었다.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석을 출판사가 독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 시대에 웬만하큼 무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망발이죠. 저자도 책을 썼으면 해석에 대해선 입 닥치는 게 예의입니다. 저자도 아니고 책 팔아먹는 장사치들이 뭔 자격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지... 게다가 망사 스타킹이 어쩌구 자세가 어쩌구.... 글의 수준이란.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어휴, 포르노 좀 적당히 보세요." 


원래는 아이유 논란이 아무리 떠들썩해도 별로 끼어들 생각이 없었지만, 진중권의 저 발언을 보는 순간 나도 한 마디쯤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동녘', 이외수 작가, 소재원 작가는 결코 문학 작품에 대한 '표준적 해석'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독점적 해석'을 고집한 것도 아니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여 '획일화'시켜야 된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예술 작품과 예술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말했을 뿐이다. 그 의미를 정말 몰랐다면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도 책을 썼으면 해석에 대해선 입 닥치는 게 예의'라고? 그런 황당한 예의는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다양한 해석'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명백한 오류가 있다면, 저자에게는 당연히 그것을 바로잡을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외수 작가 역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옳지 않은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다르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얘깁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잘못된 해석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틀린 것은 없다. 오직 다른 것만 있을 뿐이다!" 라고 주장하겠지만, 틀린 것은 반드시 존재한다. 세상에 틀린 것이 없다면, 나중에는 살인 강간 등의 범죄까지도 그저 남들과 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는 안 되는 일, 금기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예술 작품의 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포르노 어쩌고 한 부분에서는 극심한 불쾌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포르노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망사 스타킹이나 핀업걸 자세를 볼 때 익숙한 즐거움을 느꼈을 텐데 마땅히 환호성을 올리지 않겠는가? 반대로 그런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섯 살 어린애가 망사 스타킹을 신고 기묘한 자세를 취한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며 비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건전한 시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포르노쟁이로 몰고 가는 수준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결국 아이유는 6일 SNS에 글을 올려 사과했다. "가사 속 제제는 소설에서 모티브만을 차용한 제3의 인물이며, 제제한테 섹시하다고 말한 게 아니라 제제가 가진 양면성의 성질이 섹시하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저의 음악과 가사가 불쾌하게 들리고 많은 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면 작사가로서 부족한 탓이니 반성하겠다." 라는 내용이었다. 아이유의 사과문을 보니, 그녀가 특별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제제'의 가사를 쓴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녀가 생각한 인물은 다섯 살 꼬마 제제가 아니라, 어린애처럼 천진한 눈빛을 지녔지만 사실은 나쁜 남자라서 연인에게 번번이 상처를 주는 성인 청년의 이미지였을지도 모른다. (제3의 인물) 

그렇다면 왜 굳이 어린 제제를 내세웠을까? 아이유는 "처음으로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이라 흥분되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수가 많았습니다." 라고 인정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라는 작품이 워낙 유명하니까, 주인공 제제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으면 그만큼 주목받을 거라 예상했을 수 있다. 작품이 발표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아무도 꼬마 제제의 캐릭터를 '섹시'와 연관지어 해석한 사람은 없었으니, 아주 신선하다는 칭찬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어리고 미숙한 그녀의 실수였다고 나는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이제 겨우 스물 세 살의 아이유는 이해할 수 있어도, 그릇된 자유의 논리로 그녀를 감싸고 도는 어른들의 행위에는 등골이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는다. 특히 나이 쉰을 넘긴 진중권의 과격한 발언에는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자유는 물론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가치의 위에 놓아도 좋을 만큼 소중한 가치는 아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피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자유는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자유가 존중보다 앞서는 순간, 자유는 바로 그 자신을 멸망시키는 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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