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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도다, 나를 울린 버진아방의 마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탐나는도다

탐나는도다, 나를 울린 버진아방의 마음

빛무리~ 2009. 9. 1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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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이라고 이곳보다 나을 건 없단다. 중요한건 마음이지...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는 한 몸뚱이가 어디엘 가 있어도 다 똑같을 뿐이다."


윌리엄과 박규를 떠나보내고 하루하루 시름에 잠겨 뭍으로 따라갈 생각뿐인 버진에게 미치광이 노인으로 위장한 광해군 할아버지가 타이르십니다. 아직 어려서 그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버진이를 보고는 껄껄 웃으며 수염을 날리시는 임금 할아버지는 약간 신선같아 보이더군요. 모든 것을 다 가졌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 본 적이 있는, 그 이후 마음을 비워버린 자의 가벼운 웃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꼭 그 푸른 눈 소나이 때문인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라는 질문을 받자 펄쩍 뛰면서까지 박규에 대해 끌리는 감정을 극구부인하는 버진이의 마음은 알쏭달쏭하더군요. 푸른 눈의 이양인은 사랑해도 될 사람이고, 어사 나리는 사랑해선 안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면 한번도 내색한 적 없던 새로운 연정이 단지 스스로도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그러는 걸까요?


버진이의 집에서는 마을 남자들과 술을 나누며 어사 박규를 그리워하는 버진아방의 모습이 보입니다. 박규가 거처하던 방(헛간을 개조했던)을 치우고 있는 어멍에게 화를 내는 버진. "귀양다리 떠난지 이제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럼매?" 아이고, 네 속 다 보인다 버진아. "안 버리고 있으면 어사님이 다시 돌아오난?" 딸의 마음을 다 알면서도 저렇게 현실을 인식시켜주려 모진 말을 할 수밖에 없는 버진어멍의 마음도 상상해보니 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버진이는 자기가 평생 탐라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일만 하며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상 그 시절의 사람들이란, 더구나 여인들의 삶이란 다 똑같지 않았나 싶습니다. 뭍으로 나와 봤자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평생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겠어요? 양반집 여인들이야 평민보다는 좀 나았는지 모르지만 어디 외출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언제나 집안에 매여서 기껏 해봐야 바느질이지 뭐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싶습니다. 천성이 망아지 같은 버진이로서는 그 당시 어디에 가서 어떤 신분이 되어 살더라도 만족하지 못했을 거예요.


"버진은 뭘 하고 있을까?" 윌리엄이 혼잣말처럼 묻자 "오늘 한 물질 내일도 하고 모레도 하고... 그리 산다 했지... 어느 바다밭에서 오늘도 물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박규의 표정은 또 어찌나 쓸쓸해 보이던지... 철모르는 버진의 펑펑 쏟는 눈물보다, 오히려 그녀의 가엾은 운명을 잘 알면서도 구해주지 못하고 떠나온 박규의 수심 가득한 표정에서 저는 더욱더 슬퍼졌습니다.

끝내 새벽에 몰래 길을 나서는 버진... 딸의 기색을 보고 눈치라도 채셨던 걸까요? 버진아방은 밤새 한잠도 못잔 듯 퀭한 얼굴로 딸을 마중나옵니다. "살아보니까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는 게 그나마 후회가 적은 법이더구나... 이것만은 기억해라. 우리가 언제까지나 여기서 기다릴테니 힘들면 탐라로 언제든 돌아오렴."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윌리엄과 박규를 떠나보내며 눈이 새빨개지도록 울던 버진을 보면서도 저는 울지 않았고, 눈가에 맺힌 한 방울 아픈 눈물을 애써 삼키는 박규 도령을 보면서도 울지 않았건만, 울지도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딸을 보내는 버진아방의 짧은 대사 두 마디에 제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언제나 기가 세고 괄괄한 버진어멍의 뒤에서 조용히 새끼만 꼬는 모습이 조금은 나약해 보였던 버진아방이었지만, 역시 버진에게는 산처럼 든든하고 커다란 아버지였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기서 너를 기다리겠다"는 그 대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식상한 말인데도 버진아방의 입에서 나오니 왜 이다지도 눈물겨운 것입니까? 딸자식을 떠나보내던 그 모습 그대로, 야트막한 돌담 뒤에 서서 언제까지나 기다릴 아버지의 모습이 저절로 눈앞에 떠오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이유를 저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법도를 어기면서까지 탐라를 탈출하여 그 위험한 길을 홀로 가면서도 기죽지 않고 능청스레 얀에게 들러붙는 버진의 붙임성을 보니, 장버진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현대여성이다 싶었습니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대성했을 인물이예요. 후훗...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이 안스러울 뿐이죠.


한편 한양까지 몇 걸음 가지도 못한 채 서린상단의 삿갓 자객에게 습격을 받는 바람에 크게 다친 박규와 그를 보호하여 도망친 윌리엄은 산 속 깊은 곳에서 신비한 도공(이한위)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애써 구운 도자기를 내다 팔아서 박규의 치료약도 사다 주고, 관군의 이름을 들먹여서 자객들을 따돌리는 영민한 기지까지 갖춘 이 도공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지 궁금하군요. 혹시 얀의 조상들과 무슨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요?


이렇게 해서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이루어집니다. 대체 어느 새 흙벽을 쌓고 그 안에 숨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우수수 흙벽이 무너져내리며 기어나오는 윌리엄과 박규를 본 순간 버진의 표정이라니... 어이쿠야, 우리 버진이 좋겠구나~~ㅎㅎ

오늘이 벌써 목요일이니까, 박규의 집에 초대(?)되어 처음으로 색동 꼬까옷(^^)을 입어보게 될 버진이의 깜찍한 모습을 내일모레면 볼 수 있겠군요. 일요일에 '탐나는도다' 10회를 보았건만, 버진아방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서인지 한참동안 리뷰를 쓸 수가 없었어요. 오늘 이렇게 쓰고 나니 버진아방이 내준 숙제 하나를 해놓은 기분입니다...^^

              "버진아방~ 너무 걱정하지 맙소. 딸네미는 무사히 어사나리를 만났으니 이제 잘 지낼 것임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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