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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야' 상처받은 영혼들의 금빛 하모니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도희야' 상처받은 영혼들의 금빛 하모니

빛무리~ 2014. 5. 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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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주리
출연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 외
개봉 2014년 5월 22일


출연 배우들의 이름과 짧은 내용 소개만으로 강한 끌림을 느꼈기에 영화 '도희야'가 개봉하는 첫날 첫회 상영을 보러 갔다. 나를 가장 강렬하게 유혹한 것은 다름아닌 김새론의 연기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언제부턴가 아역들의 존재감은 성인 배우들을 압도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도희야'에서의 김새론은 단순한 아역이 아니라 배두나와 쌍벽을 이루어 작품의 균형을 잡는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한편 그녀들을 괴롭히는 송새벽의 악역 연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그런 인간'들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자연스러워서 시종일관 소름이 끼쳤다.


작품의 배경이자 주요 촬영지는 전남 여수의 외딴 섬 금오도였다고 한다. 풍광이 아름다워 관광지로도 유명하다는데, 아직 그 곳에 가본 적 없는 내 머릿속에 이제 금오도의 이미지는 '도희야'의 한 장면으로 각인되었다. 앙상한 다리가 무릎 위까지 드러나는 짧은 흰 옷을 입고 바닷가에서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던 도희(김새론)의 모습... 순수와 상처의 결합체는 핏빛이라야 할 것 같은데, 왠지 그 모습에서는 찬란한 금빛이 느껴졌다. 차갑고도 따스한, 시리도록 아름다운, 살아있는 영혼의 움직임.


의붓아빠 박용하(송새벽)와 할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친엄마는 도망가 버렸다. 삶에 지친 탓이었을까? 새끼양처럼 어리고 약한 열 네 살의 딸자식을 r거추장스런 짐짝처럼 그 늑대굴에 팽개쳐두고 혼자 몸으로 훌훌 떠나갔다. 한밤중에 눈을 떴을 때 몰래 짐을 싸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지만, 엄마는 "그냥 자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떠나갔다. 그 순간 도희는 깨달았다.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서 자기를 지켜주고 있던 미약하나마 유일한 끈이 끊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이후엔 그 누가 어떻게 괴롭혀도 "난 엄마도 버린 아이니까" 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엄마가 없는 그 외딴 섬에서 소녀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의붓아빠는 거의 매일처럼 술을 퍼마시고 아이를 때렸다. 그럼 할머니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더 때리라고 부추겼다. 이름도 없는 것처럼 항상 "이 ××××년아!" 라고 불러대면서, 아이가 도망치면 오토바이를 타고 죽일듯이 쫓아왔다. 하지만 의붓아빠 박용하는 그 작은 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젊은 남자였고, 외국인 노동자를 여럿 고용해서 제법 큰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일꾼이었다. 섬 사람들의 생계가 대부분 박용하와 얽혀 있어선지, 학대받는 소녀의 모습을 일상처럼 보면서도 선뜻 손 내밀어 구해 주려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그 날도 아빠는 술에 취해 돌아왔다. 아무 저항도 못하고 마당에 쓰러진 채 복날 개처럼 맞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누군가 달려들어와 아빠를 밀쳐내고 소녀를 부축해 일으킨다. "도희야, 괜찮니?" 얼마 전에 길거리에서 괴롭히는 동급생들로부터 구해주었던, 동네 파출소에 새로 부임한 여자 소장님이다. 그녀의 얼굴에선 달빛보다 환한 빛이 난다. 술 취한 아빠가 욕을 하면서 달려드는데, 가냘픈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꺾고 아빠의 우람한 몸집을 땅바닥에 메어꽂는다. 아...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다니! 그 날부터 이영남(배두나)은 소녀의 구세주가 되었다. 

 

 

이영남은 서울에서도 제법 인정받던 경찰이었다. 젊은 나이에 무궁화 두 개짜리 견장(직위:경감)을 어깨에 반듯이 달고 선 모습이 눈부셨다. 그러나 평범치 않은 사생활이 폭로되면서 공직 사회의 논란거리가 되었고, 결국 외딴 섬으로 좌천되어 온 것이다. 다만 평범치 않았을 뿐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는데, 사회는 그녀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한없이 무력한 도희에 비해 능력있고 힘도 있어 보이는 영남이지만, 견고한 사회의 틀 밖으로 내몰린 소외된 존재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일치한다.

하지만 비정한 사회는 소외된 존재들이 서로 보듬고 기대어 살아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영남이 도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하면서 의붓아비 용하와의 마찰이 시작되었고, 어린 의붓딸에 대한 상습폭력뿐만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던 용하는 번번이 영남의 제지에 가로막히게 되자 비열한 앙심을 먹었다. 어느 날 영남은 우연히 비밀스런 모습을 용하에게 들키게 되고, 그녀의 약점을 틀어쥔 용하로부터 공격을 받아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고 마는데... 유일한 구세주 영남을 지키기 위한 소녀 도희의 활약이 시작된다. 위험한 선택이지만, 악(惡)은 아니었다.


김새론은 여진구와 더불어 좀 독특한 필모그라피를 쌓아가고 있는 청소년 배우다. 그들은 분명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출연한 영화는 19금의 연소자 관람불가 등급이 압도적으로 많다. 에로틱한 영화라서가 아니고,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너무 극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향후 몇 년간 자신의 출연작을 감상할 수 없다. 하지만 쉽지 않은 캐릭터에 몰입하고 연기하면서 이미 폭삭 젖고 말았는데, 단지 완성품을 안 본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희야' 속 김새론을 보며 그 탁월한 연기에 물론 감탄했지만, 감탄보다 더욱 커지는 것은 새론이를 향한 염려였다.


여진구는 덩치도 크고 강해 보여서 염려가 좀 덜 되었는데, 너무 작고 앙상한 김새론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렸다. 각종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소녀 도희를 연기하면서, 정말 새론이는 괜찮았던 걸까? 생각해 보니 '여행자', '아저씨', '이웃사람' 등 김새론의 출연작마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인신매매 집단에 팔려가거나, 납치 살해되는 소녀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폭행 당하는 장면이 하도 많아서 신체적으로도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이 소녀의 연기하는 모습은 지극히 매혹적이지만, 그러면서 점차 어린 내면이 황폐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염려스럽다.

 


송새벽이 연기한 '박용하'와 그의 늙은 어머니는 '범죄'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악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악이 더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언제부턴가 당연시 되어버린 일상 속 폭력, 모두의 외면 속에 홀로 버려진 아이, 탈출구 없는 외딴 섬의 작은 마을... 소녀 도희의 막막한 삶은 어린 시절의 가장 힘겨웠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한없이 무력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만 했던 어린 날의 고통들... 김새론의 처연한 눈물은 약한 듯 강인한 배두나의 연기와 황홀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힐링을 극대화시킨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그 이름 "도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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