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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냉정한 이서진의 흔들리는 눈빛 본문

드라마를 보다

'참 좋은 시절' 냉정한 이서진의 흔들리는 눈빛

빛무리~ 2014. 3. 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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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있어 '참 좋은 시절'이란 언제였을까? 동석이랑 동옥이랑 해원이가 아주 어렸을 때, 아직은 동옥이가 머리를 다치지 않아서 영리한 꼬마 소녀였을 때, 그들은 모두 티없이 행복했을까?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 장소심(윤여정)에게는 언제가 '참 좋은 시절'이었을까? 아직 큰아들 동탁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남편 강태섭과의 꿈 같은 신혼 3개월이 가장 행복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들의 '참 좋은 시절'은 너무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너무 잘 생겨서 마음을 애태우던 남편은 고작 3개월을 살고 집을 나가더니 첫아들이 태어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 돌아오던 발걸음도 동옥이 동석이가 태어난 후에는 뚝 끊겨 버렸다. 이제는 장소심의 인생에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기억도 아련해졌다.  

 

 

동석이 동옥이가 아홉 살 되던 해 같이 사고를 당해서 머리를 다쳤을 때, 곧바로 할아버지 등에 업혀 병원으로 옮겨진 동석이만 회복되고 동옥이는 정신지체아가 되어 버렸을 때, 그들의 '참 좋은 시절'은 이미 끝나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때부터 강동옥(김지호)은 온 가족에게 보기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아픈 손가락이 되었고, 특히 쌍둥이 동생 강동석(이서진)에게는 결코 뽑을 수 없는 가슴 속 큰 가시로 박혀 버렸다. 자기 때문에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쌍둥이 누나에 대한 죄책감은 동석으로 하여금 고향인 경주와 그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볼 때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 아프기에, 차라리 안 보리라 결심하고 15년이나 돌아오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차해원(김희선)의 존재가 강동석에게 또 하나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이유도 사실은 동옥이 때문이었다. 자기 집 식모살이를 한다는 이유로 온 가족을 벌레 취급하던 해원이 엄마는 걸핏하면 가장 약하고 만만한 동옥을 물고 늘어졌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모욕하는 것은 물론, 아무 근거 없이 도둑 누명을 씌워 생쥐 몰듯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동옥이가 아프지만 않았다면, 예전처럼 똑똑하기만 했더라면 결코 당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그러나 억울하다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눈물만 그렁한 채 딸꾹질을 해대는 동옥의 모습은 동석을 반 미치게 했다. 그런데 하필 그 악귀같은 아줌마의 작은 딸 해원이는 동석이가 좋다면서 몇 년째 쫓아다니는 중이었고, 18세 소년의 치기어린 복수심은 그녀를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며 사귀자고 했던 것이, 함께 도망치자고 제안했던 것이 100% 복수심에서 비롯된 일이었을까? 당시에는 그런 줄만 알았다. 그저 물색없이 자기를 쫓아다니며 귀찮게 구는 계집애, 하필 그 집 딸이라서 처음부터 절대 사랑할 수도 없었고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차해원, 그 아이가 어느 사이엔가 자기 마음 속에 들어와 자리잡고 있는 줄을 그 때는 동석도 몰랐었다. "복수하려고 너를 이용했을 뿐이야. 나는 한 번도 너를 좋아한 적이 없어. 강동석 이 나쁜 놈 하면서 침이나 퉤퉤 뱉고 잊어버려라!" 잔뜩 들떠있는 해원을 향해 차갑게 내뱉은 한 마디, 그러나 눈물까지 얼어붙은 듯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며 꼼짝없이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이 송곳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힐 줄이야.

 

그 날 이후로 해원이는 동옥이와 마찬가지로 강동석의 기피대상 1호가 되었다. 보기만 하면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는 그녀들을 피해 공부한답시고 서울로 도망친 강동석은 무려 15년 후에야 경주로 돌아오게 된다. 높으신 검사님이 되어 금의환향한 셈이지만, 스스로 원해서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마지못해 돌아온 고향,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동석의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반향을 일으킨다. 거북할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 너무나 따사로운 이 곳... 그리고 저마다 손 잡고 반겨주는 사람들... 잊고 싶었는데, 잊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리웠던 걸까?

 

 

그런데 과거의 악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서른이 넘어서도 일곱 살에 머물고 있는 동옥이는 여전히 사람 눈을 똑바로 못 보며, 괜히 주눅들어 아무 잘못 없이도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중이었다. 형 강동탁(류승수)은 애 딸린 홀아비가 되어 있고, 배다른 동생 강동희(옥택연)는 한 술 더 떠서 쌍둥이 자식들을 엄마한테 입적시켜 놓은 채 주먹 건달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속 없는 엄마는 아버지의 첩실 하영춘(최화정)마저 제 자식처럼 끼고 살며, 운신 못하는 할아버지 수발 들랴, 족발집 운영하랴, 걸핏하면 사고치는 동희 단속하랴, 어린 손주들 건사하랴, 대가족 뒷바라지에 여린 몸이 삭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너덜너덜하도록 초라해진 모습으로 다시 만난 해원이... 아, 동석을 미치게 하는 이 사람들.

 

 

해원이 엄마는 가끔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그래도 해원이 때문에 저주까지는 안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해원이 엄마니까, 죄 없는 해원이한테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까, 그 죄를 갚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미워하지는 않으려 했었다. 그런데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사이에 해원이 아버지가 죽고 사업이 망하고 거지꼴 셋방살이 신세가 되었어도, 해원이 엄마와 언니는 부잣집 마나님 공주님이던 예전과 똑같았다. 여전히 사치스럽고 허영에 넘치며 사람을 벌레보듯 거만하게 굴었다. 해원이만 아니면 동석 역시 그들을 벌레보듯 하면 그만일텐데, 또 해원이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질 나쁜 대부업체 직원이 되어 온갖 험한 꼴을 당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해원이를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좀 더 제대로 살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지만.

 

그런 해원이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손을 내민다. "동석이 오빠야, 우리 옛날처럼 다시 사귀자!" 너무 놀라서, 얼떨결에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와 버렸다. "싫다!" 이 계집애가 왜 또, 왜 또 이러는 걸까? 또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려고, 또 얼마나 오랫동안 지옥 속에 살게 하려고! 어림없다 다짐하며 냉정하게 돌아서는 강동석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린다. 행여 속내를 들킬세라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차해원이 쫓아와 앞을 막는다. "그럼 말을 바꿀게. 나한테 이용 좀 당해 줘. 승훈이 오빠야를 다시 찾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그러니 강동석 검사님께서 나를 조금만 도와 줘. 나도 예전에 이용당해 줬잖아!" 이건 또 무슨 헛소리? 설마 그 찌질한 오승훈이를 정말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싶어 대답조차 안 하고 돌아섰는데.

 

 

좀처럼 해결할 수 없는 사건 때문에 부득이 해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검사로서 증언을 요청하는 것이 면목없을 일은 아니지만, 왠지 그녀에게는 한없이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 그냥 도와달라 말을 꺼내기가 뭣해서, 아까 거절했던 그 부탁을 들먹였다. "승훈이를 다시 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던 말, 아직도 유효하니? 오케이, 그럼 난 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일까? 나무토막처럼 딱딱하니 연극에는 소질도 없으면서 연애하는 시늉을 하겠다니, 그것도 해원이랑 승훈이를 이어주기 위해서! 하지만 동석의 마음 속에는 저도 모르게 사특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기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하고 싶은데, 난!" 옴므파탈 포스를 철철 흘리며 해원의 두 뺨을 감싸고 입술로 다가가는 동석의 모습이 예고편에 비친다.

 

어쩌면 그들의 '참 좋은 시절'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 오래된 매듭을 풀어내고, 먼지처럼 쌓인 슬픔을 털어내고, 서로의 가슴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며,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상처 투성이인 지금도 행복할 수 있노라고, 서로의 피 흘리는 가슴을 따스히 보듬어 안으며, 그들이 진정한 '참 쫗은 시절'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은 처음이라 서로가 어색해서 입으로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서로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낼 수 있을 테니까, 이 두 사람에게서 시작된 사랑과 화해는 파도처럼 먼 곳까지 퍼져나갈 테니까, 아주 밝고 따사로운 고향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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