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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좌충우돌 홍콩 마카오 여행기 <1편> 본문

여행을 가다

빛무리의 좌충우돌 홍콩 마카오 여행기 <1편>

빛무리~ 2014. 1.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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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마카오로 여행을 다녀온지가 벌써 일주일이 넘었건만, 공기 나쁘고 일교차 심한 그 곳의 후유증 때문에 아직도 맥을 못 추는 중이다. 사실 여행 전부터도 홍콩의 공기 오염도가 세계 최악의 수준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꽤나 염려를 했었다. 어려서부터 호흡기의 알레르기성 염증이 극심했고, 어른이 된 후 만성화된 비염과 기관지염은 천식으로 발전했으며, 지독한 부비동염으로 전신마취 수술까지 받은 후에도 언감생심 완치는 꿈도 못 꾸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뚜껑 없는 2층 버스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면 얼굴에서 검댕이 묻어난다는 어느 블로거의 홍콩 여행기를 읽고 나는 질겁을 했다.

 

 

그래도 불과 3박 4일인데 설마 별 일이야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얄궂게도 설마는 역시나의 결과로 돌아왔다. 나의 저질 호흡기는 홍콩의 오염된 공기를 불과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염증의 재발 증상을 보였으며,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남편은 일교차 심한 홍콩의 싸늘한 밤 공기에 적응 못해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홍콩은 한겨울에도 우리나라의 초가을 정도밖에 안 되는 더운 날씨 때문에 본질적으로 '난방이 없는 나라'인데, 남편은 서늘한 호텔룸에서 이틀간 웅크리고 자더니 삼일째는 최악의 컨디션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병증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현재진행형이라, 평소 숨결이 고르고 조용하던 남편은 요란한 기침을 달고 사는 중이며, 나는 콧물이 아니라 코피를 쏟을 정도의 염증에 시달리고 있다.

 

늘 다니던 종합병원 이비인후과의 주치의 선생님을 찾아가보려 하는데, 워낙 귀하신 명의의 몸이라 쉽게 만날 수가 없다.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3시간씩만 진료 일정이 잡혀 있으니 예약을 하고 가자면 1개월 넘게 기다려야만 차례가 오고, 예약을 안 하고 가면 허탕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좀 다행인 것은 지난 겨울에 결혼하면서 이사 온 이쪽 동네의 작은 병원 의사가 꽤나 유능한 것 같다. 예전 살던 동네 병원에서는 아무리 약을 받아다 먹어도 증상의 호전 기미가 전혀 없었는데, 그래도 여기서 처방해 주는 약에는 나의 고질적 염증이 조금씩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며칠간 이 약을 더 먹으면 굳이 피곤하게 종합병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우리 부부의 여행은 패키지로 시작되었지만 후반부에는 자유 여행으로 이루어졌다. 둘 다 어리버리하고 해외 여행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모든 일정을 자유로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겁이 났지만, 패키지 여행이 얼마나 빛 좋은 개살구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만 하루 동안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투어버스를 타고 다닌 이후에는 과감히 맨땅에 헤딩하듯 둘만의 모험을 시작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유 여행이 열 배는 더 좋았다. 아예 패키지와는 비교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소호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근처에서 30분, 스탠리 마켓에서 30분, 빅토리아 피크에서 30분, 낭만의 거리에서 30분... 오후 2시쯤 홍콩 공항에 도착한 우리의 첫 날 일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나름 여러 곳을 방문하긴 했는데 당최 뭘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 24명의 대부대는 엄청 걸음이 빠른 여자 가이드의 꽁무니를 놓칠까봐 계속 죽어라 쫓아다녔고, 각 곳에 들러 조금씩 구경하며 사진을 찍은 후에는 목숨줄같은 투어버스를 놓칠까봐 시간도 되기 전에 미팅 장소로 모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글쎄 뭘 보고 느끼고 생각했을까? 홍콩은 전체적으로 서울의 느낌과 비슷했다. 좀 더 협소하고, 좀 더 사람이 많고, 좀 더 공기가 나쁘고, 좀 더 건물이 낡은 것 외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마침 안개가 낀 탓인지 백만불짜리라는 홍콩의 야경도 별 감흥이 없었고, 하필 지난 가을에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거센 파도를 실컷 만끽하고 온 탓인지 홍콩의 밋밋하고 잔잔한 바다는 그저 한강처럼 보일 뿐이었다. 

 

 

다음 날의 오전 일정은 호텔 조식을 먹은 후 웡타이신 사원을 찍고 쇼핑센터에 들르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일단은 순순히 끌려다니기로 했다. 샵 방문 이후 전체 인원에게 중식이 제공되니 그것을 먹고 나서 자유일정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둘쨋날 중식 이후에는 옵션으로 심천 또는 마카오 관광이 제시되어 있었는데, 옵션 요금이 터무니 없이 비싼 데 비해 상응하는 만족감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은 번갯불에 콩 볶아먹던 전날의 일정 체험만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딤섬을 먹고 홀가분하게 일행과 떨어진 우리는 가이드북에 꽂혀 있는 지하철 노선도를 참조하여 옹핑360 케이블카를 타러갔다.

 

쇼핑도 안 하고 옵션 관광도 안 하겠다는 우리가 가이드로서는 별로 고마운 손님들이 아니었을 게다. 숙소로 돌아올 때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라면서 호텔 명함 한 장만 던져 주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도 거리에서 만난 홍콩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길을 물어보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아흑, 영어를 충분히 알아들으면서도 못 알아들은 척 대답을 회피하거나 거짓말을 했던 파리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백화점 안내데스크의 직원들이 "화장실이 어딥니까?" 라고 묻는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잘못 가르쳐 주었을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도 말자..;;) 어쨌든 친절한 홍콩 아저씨의 도움으로 우리는 침사추이 지하철역을 무사히 찾아냈고, 또 친절한 여성 역무원의 도움으로 지하철표를 무사히 구입할 수 있었다.

 

날씨가 썩 좋지 않아서 케이블카 운행이 중지되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운행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개가 많이 낀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바닥이 투명한 케이블카를 단 둘이 타고 무려 20~30분 가량이나 산과 바다 위를 높이 둥둥 떠서 올라가는 기분은 사뭇 짜릿했다. 그렇게 높이 올라가니 그 위에 옹핑 빌리지가 있고 옹핑 사원이 있었다. 소호에서는 좁아터진 길목에 넘쳐나는 차량과 사람들로 숨이 막힐 것 같았는데, 옹핑은 비교적 한산해서 내 취향에 꼭 맞았다. (나는 사람 많은 곳을 무척 싫어하는지라..;;) 남편은 산꼭대기에 세워진 커다란 불상을 코앞에서 보겠다고 수백 계단을 올라갔지만, 나는 그냥 밑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기다렸다. 멀리서 보는 게 오히려 더 잘 보이는데 뭐, 하면서.

 

다시 내려올 때는 크리스탈이 아니라 저렴한 스탠다드를 선택했더니, 각양 각색 외국인들과 도합 8명이 한 칸의 케이블카에 함께 타야 했다. 어쨌든 까마득한 밑으로 내리꽂히는 기분을 놀이기구라도 탄 것처럼 실컷 만끽하고, 내려와서는 역 근처 쇼핑센터의 식당가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음식은 국물 있는 탕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해서 그림만 보고 선택했더니, 불고기와 해물 야채 등이 듬뿍 들어간 고급 라면이었다. 지하철 역에 들어서자 시간이 늦은 탓인지 낮에 도와주던 것처럼 친절한 역무원이 없었다. 우리는 별 수 없이 티켓 자판기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시작했다. 약 5분 후, 자판기가 내 손에서 10달러짜리 홍콩 지폐 3장을 받아먹고 빳빳한 지하철표 2장과 거스름 동전을 토해내던 그 순간의 희열은 좀 우습지만 이번 홍콩 여행 최고의 순간으로 내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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