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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들' 최대 수혜자는 용서받지 못한 김우빈이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상속자들

'상속자들' 최대 수혜자는 용서받지 못한 김우빈이다

빛무리~ 2013. 12.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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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보이던 제국그룹의 김남윤(정동환)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만약 현실이라면 그 상황에서 이런 식의 변화가 일어나리라 생각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이 드라마에서 김회장의 위독은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였다. 대략 20년 동안이나 김회장의 명목상 본처 자리를 지키며 호시탐탐 제국그룹을 집어삼킬 계획을 세워 온 정지숙(박준금) 여사는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자신의 추종자들을 불러모아 총공격을 개시하고, 김회장의 반목하던 두 아들 김원(최진혁)과 김탄(이민호)는 경영권을 남의 손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자연스레 화해했다. 두 형제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얕은 데다가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허를 찔렸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비서실장이었다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제국그룹의 충신 윤재호(최원영)는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나는 능력을 보였다. RS인터내셔널 대표 이에스더(윤손하)는 외동딸 유라헬(김지원)의 약혼자 김탄이 서자였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김회장에게 등을 돌렸지만, 결국 첫사랑 윤재호의 애절한 눈빛에 허물어지며 위임장에 사인을 해주고 말았다. 게다가 윤재호는 18세의 고등학생 김탄을 데리고 열흘 동안이나 해외 출장을 다니며 주주들을 설득했는데, 과연 그들이 전혀 어려 보이지 않는 김탄의 외모를 보고 얼마나 안스럽게 여겼을까는 의문이지만 나름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 김원의 오랜 연인 전현주(임주은)는 헤어져야 할 순간이 왔음을 깨닫고 먼저 이별을 고한다. 고통스럽게 이별을 받아들인 김원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정략결혼을 발표함으로써 또 한 명의 대주주를 포섭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젊은 두 형제는 노회한 정지숙 여사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다분히 해피엔딩을 위한 비현실적 만화적 설정이었고, 별로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솔직히 '상속자들'을 보면서 계속 느꼈던 감정은, 그들이 써야 할 왕관의 무게를 막연히 짐작은 하겠지만 거의 실감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내게는 가난한 차은상(박신혜)의 어깨에 지워진 삶의 무게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벅차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인간의 고통이 오직 경제적 결핍에서만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삶의 모든 문제를 '돈'으로 귀결키시는 사람들을 몹시 답답하게 여긴다. 돈이 많아도 지독히 불행할 수 있으며, 개인이 느끼는 고통의 깊이를 객관적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속자들'에서 비취진 그들의 고통은 크게 심각한 것들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굳이 재벌집 자손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겪는 아픔들일 뿐이었다. 진로 문제나 이성 문제로 부모님과 충돌하고, 왕따 은따가 난무하는 학교의 살벌한 분위기를 견디는 것이 오직 왕관 수혜자인 그들만의 몫일까? 평범한 학교에서도 끔찍한 왕따가 일어나고, 가난한 집 부모들도 갖가지 이유로 자녀를 억압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등은 누구나 겪는 일인데 심하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너희들은 그래도 부자니까 훨씬 낫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자 김탄과 그 어머니 한기애(김성령)의 고통도 마찬가지였다. 서민 사회에서도 첩실이나 혼외자식은 온갖 질시와 놀림을 받게 마련인데, 그래도 제국그룹의 위세 덕분에 남들이 뒤에서만 수군거릴 뿐 노골적으로 괴롭히지는 못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차라리 주인공이 어른들이었다면, 한층 다양해진 삶의 양상을 통해 그들만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각인시킬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 열 여덟의 아이들은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고, 남들과 차이가 있다고 해봤자 아직은 거기서 거기였다. '상속자들'이 공감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견고한 황금의 제국 속에서 그토록 뜨겁게 반항하는 것은 오직 열 여덟 청춘만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모습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뻔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쉽게 잊혀져갈 뻔한 이야기 속에서도 알차게 자기 몫을 챙기고, 결국은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강한 인상을 준 캐릭터가 있었으니 바로 최영도(김우빈)였다.

 

 

악동 최영도네 집에서도 갈등의 해결은 아버지의 몰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차은상을 짝사랑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진행되고 있긴 했지만, 최영도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은 호텔 제우스 대표 최동욱(최진호)이 검찰에 구속된 이후였다. 역시 아버지의 존재가 거대한 산처럼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는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던 걸까? 좀 웃기는 것은 항상 아들을 가르칠 때 무조건 승리하면 된다고, 룰 따위는 필요없고 반칙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해왔던 최동욱이 막상 구속되고 나더니 측근을 통해 "그래도 룰은 있어야 한다. 반칙은 안 된다"고 말을 바꿔서 전해왔다는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한다고? ㅎㅎ 어쨌든 한결 자유로워진(?) 최영도는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죄책감의 돌멩이를 치우기 위해 행동을 시작한다.

 

최영도가 맨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사배자(사회배려자) 신분으로 제국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최영도의 모진 왕따를 견디다 못해 전학가고 말았던 문준영(조윤우)의 학교였다. 뚜벅뚜벅 걸어와 자기 앞에 선 영도에게 준영은 서릿발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묻는다. "왜 왔어? 아직도 괴롭힐 게 남았어?" 최영도가 대답했다. "그런 거 아냐. 미안하다는 말하고 싶어서 왔어. 미안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정말 미안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사과라선지, 로봇의 말처럼 어색하고 딱딱하다. 준영이 말했다. "네가 사과도 할 줄 아는 아이라는 게 놀랍지만, 네가 정말 나한테 미안하다면 평생 죄책감 느끼며 살아! (최영도 : 그래, 그럴게...) 나는 네 사과 안 받을 거야. 영원히... 다신 찾아오지 마!"

 

 

준영이 차가운 거절의 말을 던지고 가버린 후, 홀로 남은 영도의 눈빛이 먹먹했다. 단언컨대 그것은 '상속자들'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만약 준영이가 활짝 웃으며 "그래, 다 용서할게. 이렇게 용기내서 사과하러 와준 것, 고맙다!" 하면서 최영도를 끌어 안기라도 했다면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최악의 장면이 되고 말았을 터였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는 아직도 생생했고, 옹이진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흔적... 풀고 싶지만 풀리지 않는 업보... 이거야말로 최영도가 자신의 삶 속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할 무게였다. 쉽게 용서받는 것은 환상일 뿐, 현실은 바로 이런 것이다.

 

최영도는 용서받지 못했다. 김탄의 어머니를 모욕했던 잘못에 대해 김탄으로부터 무언의 용서를 받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구속된 아버지를 대신해서 제국그룹 주주 자격으로 위임장에 사인하며 받아낸 용서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하긴 김탄도 일일이 최영도의 죄를 캐물을 처지는 아니니까 그들은 애초부터 용서가 필요없는 관계였을 수도 있다. 짐작컨대 3년 전에 김탄으로부터 왕따당했던 아이들 역시 준영이와 마찬가지로 아직 상처를 품고 있을텐데, 이 드라마에서는 한 번도 그 피해자가 등장한 적이 없을 뿐이다. 그냥 지금은 착해졌으니까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대충 넘어갔을 뿐이다. 그것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가짜에 불과했다면, 최영도가 문준영을 찾아가 정식으로 사과하고 차갑게 거절당하는 모습은 알짜였고 진짜였다.

 

 

김우빈은 올초에 방영된 '학교 2013'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교실에서 고가의 휴대폰이 분실되자, 보호관찰 대상이던 김우빈은 체육시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누명을 쓰고 끌려갔다. 친구 이종석이 달려가 "너 아니잖아, 왜 너야?" 하고 외치자 김우빈은 대답했다. "막 살았으니까! ...너랑 노느라 잠깐 까먹고 있었다." 그 때 절규하듯 외친 한 마디 "막 살았으니까!"는 수많은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며 화제가 되었는데, 철 든 어른치고 그 한 마디에 숙연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내뱉은 말과 저지른 행동에 진짜 책임을 지고 용서받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풀리지 않은 매듭은 그대로 남아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상처와 걸림돌 한 두 개쯤 가슴에 얹고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김우빈의 독특한 외모는 가장 현실적인 악동 캐릭터에 아주 잘 어울렸고, 나이에 비해 성숙한 연기력은 캐릭터의 감정과 내면을 훌륭히 표현해냈다. '학교 2013'의 박흥수와 '상속자들'의 최영도는 앞으로 김우빈의 연기 인생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물론 한정된 이미지에 갇혀서는 곤란하지만 어떤 배우라도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은 있는 법이니까, 점점 더 발전시켜서 자신만의 특화된 커리어를 구축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사실 김우빈의 외모는 순하고 착한 남자보다 아픔을 가진 나쁜 남자가 훨씬 잘 어울리는 편이니, 출발부터 자신에게 맞춘 듯 어울리는 옷을 두 번이나 걸치게 된 김우빈은 보기드문 행운아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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