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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들' 욕심없는 이민호의 깊고 슬픈 눈동자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상속자들

'상속자들' 욕심없는 이민호의 깊고 슬픈 눈동자

빛무리~ 2013. 11. 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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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특별한 개성도 없어 보이고 밋밋한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김탄(이민호) 이 녀석 볼수록 매력적이다. 순수가 실종된 시대에, 순수를 지닌 채로는 살아남을 수조차 없는 그 곳에서, 어떻게든 순수를 지켜 보려는 그 아이의 마지막 발버둥이 한없이 애처롭다. 물론 그 발버둥도 아직은 열 여덟 살이기에 가능한 것일 뿐, 이복형 김원(최진혁)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김탄 역시 10년쯤 흐른 후에는 형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어린 이복동생을 영영 미국으로 쫓아 보내려는 냉혹한 김원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테니까.

 

자신과 김탄의 약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기업의 거대한 약속이라며 차은상(박신혜)을 다그치는 유라헬(김지원)을 볼 때 너무 어른같은 모습에 나는 살짝 소름이 끼쳤는데, 사실은 그녀도 첫사랑에 아파하는 소녀일 뿐이었다. 정작 김탄과의 약혼이 깨어지자 라헬은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나는 그래도 탄이 좋아했단 말이야!" 그러자 엄마 에스더(윤손하)는 말했다. "너답지 않게 무슨 신파야? 나도 네 아빠 좋아했었어. 결과는 이혼이었고!" 오래 전에 어른이 되어버린 에스더에게 순수나 사랑 따위는 씹다 뱉은 껌처럼 의미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세계였다.

 

 

상큼 발랄하게 연애하는 윤찬영(강민혁)과 이보나(크리스탈), 수능시험을 안 보는 것으로 부모에게 반항하는 학생회장 이효신(강하늘), 세상에 온통 재밌는 일 투성이인 조명수(박형식), 그리고 초딩 수준의 짝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악동 스토커 최영도(김우빈)까지... 아무리 어른인 척해도 그들은 아직 순수하다. 어쩌면 그들에게 순수란 머지않아 벗어 던져야 하는 굴레일 뿐이겠지만, 아직은 그 굴레 안에서 웃고 울고 아파한다. 그들 중에도 유독 순수의 퍼센테이지를 많이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으니, 바로 김탄이다. 다른 아이들은 순수 속에서도 어느 정도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지만, 김탄은 100% 순수를 지향하면서 힘겹게 현실을 부정한다.

 

남들은 비교적 쉽게 벗어던지는 순수의 굴레를, 김탄은 제 살점 떼어내는 아픔을 겪은 후에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김탄이 이러한 천성을 갖게 된 데는 물론 생모 한기애(김성령)의 영향이 크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로 부계(父系) 쪽에서도 만만찮은 순수를 발견할 수 있다. 탄의 이복형 김원은 서른 한 살이고 제국그룹의 사장이다. 그는 세상과 현실을 극명히 파악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어떤 것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가난한 천애고아 전현주(임주은)와의 사랑을 놓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제국그룹 경영권을 두고 자신의 라이벌이 될 이복동생 김탄을 항상 구박하고 무시하지만, 정작 그 녀석이 전교 꼴찌나 하면서 벌칙으로 유리창이나 닦고 있는 꼴를 보니 울화가 치미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 몸에 흐르는 피조차 푸른색 얼음물일 듯한 김남윤 회장(정동환)에게도 순수의 한 토막이 남아 있었다. 그의 조강지처였던 원이 엄마는 원이가 겨우 여섯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김회장의 기밀서류가 보관되어 있는 금고의 비밀번호는 아직도 원이 엄마의 생일이었다. 혹시 원이 엄마는 그의 첫사랑이었을까? 금고를 열 때마다 그녀의 생일을 누르며, 김회장은 수십 년 동안이나 무의식중에 그리움을 곱씹고 있었던 것일까? 김탄은 냉혹한 얼굴 뒤에 깊은 사랑을 숨긴 아버지와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한 생모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물론 김회장의 훈육 방식은 냉정하고 비인간적이고 가혹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게 바로 아들을 사랑하는 방식일 것이다.

 

열 여덟 김탄의 순수는 아직도 생나무처럼 싱싱하건만, 그것을 벗어던져야 할 시기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가 원한 것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뿐이었는데,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았다. 그의 생모는 절대 그의 손을 잡고 밖에 나갈 수 없었고,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꼼짝없이 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둘째 왕자 김탄이 서자라는 사실은 제국그룹의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가난한 소녀 차은상을 만나 꿈 같은 첫사랑을 시작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김탄이 선택한 방법은 약혼녀 라헬과 그 엄마 앞에서 자신이 서자임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불쌍한 엄마도 갇혀있던 방에서 나오게 해줄 수 있고, 아무런 비밀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은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찌라시를 퍼뜨린 사람은 십중팔구 라헬 엄마 에스더일 것이다. 서자인 줄도 모르고 딸을 약혼시켰으니 그러잖아도 울화통이 치미는데, 그 와중에 탄이 엄마 한기애가 찾아와 에스더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들이밀며 당장 파혼해 달라고 협박까지 했으니, 그대로 참고 당하기는 억울했을 터이다. 김탄 출생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 여파는 무지막지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김회장은 기왕 판이 엎어졌으니 다른 그림을 그리겠다며 고등학생에 불과한 김탄을 대주주 반열에 올려 놓았던 것이다. 이로써 18세 김탄이 소유한 주식 지분은 현임 사장으로 있는 이복형 김원과 동일해졌다. 김탄이 예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결과였다. 그는 결코 형의 것을 탐하지 않았으나, 그의 뜻과 관계없이 전쟁은 시작되었다.

 

김회장의 엄명으로 제 방에 갇혀 있던 김탄은 앙숙 최영도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해서 곧장 형에게 달려갔다. 제발 오해하지 말라고, 이건 내 뜻이 아니었다고, 나는 절대 형의 것을 탐내지 않으며, 형의 앞길에 방해되지 않겠노라고, 김탄은 애타게 말했지만 김원의 눈빛은 서리처럼 차가웠다. "진심? 너는 너를 믿니? 사람을 움직이는 건 진심이 아니라 상황이야. 난 지금의 너도 못 믿고, 10년 후의 너는 더 못 믿어. 오늘이 그 시작이고, 나랑 동등해진 네 지분이 바로 네 진심이야!" 김탄이 애원했다. "어떻게 해야 믿어 줄 건데?" 김원이 말했다. "주식 다 내놓고 미국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그럼 믿어 줄게." 김탄의 눈빛이 그렁해졌다.

 

"주식은 다 내놓을 수 있어. 하지만 미국은 싫어. 형은 어떻게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 ... 마지막으로 물을게. 형 정말 이래야겠어?" 3년 전에도 김원은 그를 미국으로 보내며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못 박았는데, 이 녀석은 그게 형의 진심이 아니었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나를 또 버리냐면서, 새삼스레 깊이 상처받은 영혼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김탄은 엄마와 은상을 사랑하는 것처럼 형도 사랑했다. 형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해서 곁에 있고 싶었을 뿐, 아무런 욕심도 야망도 없었는데 형은 두 번씩이나 그를 차갑게 버린 것이다. 형을 원망스레 바라보는 김탄의 슬픈 눈동자가 내 가슴에 박혔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미국 갈지 말지나 대답해!" 한치의 흔들림 없이 냉정한 형의 모습을 보며, 이제껏 싸움을 피하던 김탄은 결국 응전을 선포한다. "나 미국 안 가. 그리고 형한테 주식도 안 줄 거야. 방금 마음을 바꿨어. 내 주식 갖고 싶으면, 형이 뺏어가 봐!" 비극이다. 결코 원치 않았던 이 싸움은 김탄에게 또 많은 상처를 입힐 것이며, 상처의 고통은 순수의 무게만큼 극심할 것이다. 형과 헤어진 김탄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마주한다. "제가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제가 형의 것을 탐하지 않고 형은 형의 길을, 저는 저의 길을 가면 우리 가족이 평화로워질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오늘 제 노력을 다 망치셨네요. 전 오늘부터 아버지 아들 아니에요. 형의 적이지!" 아... 정말 이 가여운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김회장이 말했다. "원이가 사업을 하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감옥에 갈 수도 있고 나처럼 아플 수도 있어. 그러면 개 떼처럼 그 자리 내놓으라고 달려들 게다. 그래서 네가 있어야 한다. 나한텐 그게 네 형을 위한 일이자 그룹을 위한 길이자 곧 평화다!" 알고 보니 김회장이 싫다는 김탄을 경영권 다툼에 강제로 밀어넣은 이유는 맏아들 김원을 위해서였다. 언뜻 보기엔 두 형제가 라이벌이지만, 사실은 원을 위해 든든한 보험으로서 탄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완고한 노인의 가슴 속 깊이 묻어 둔 조강지처에 대한 사랑이 그녀가 남긴 아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물론 김탄에게도 부정이야 있겠지만, 우선순위는 확실히 김원인 듯하다.

 

김원이 아버지인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맞서며 회사에서 그의 수족을 모두 잘라내고 있는데도, 김회장은 괘씸해하긴 커녕 오히려 대견해하는 눈치다. 맹수답게 사납게 잘 자란 새끼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늙은 호랑이처럼... 좀전에도 그는 호적상 아내인 정지숙(박준금) 여사를 불러다가 말하지 않았던가? "주식 가지고 원이 들쑤시고 다닐 거면 호적 정리해!" 맏아들을 건드리면 누구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김회장의 서슬 퍼런 의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김원은 자기가 아버지로부터 이렇게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줄 알기나 할까?

 

 

상대적으로 한켠에 밀려난 듯한 김탄의 모습은 더욱 서글퍼진다. "전 오늘 아버지 덕분에 가족을 잃었어요!"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18세 아들에게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게 바로 네가 쓸 왕관의 무게다. 견뎌내야지!" 하지만 김탄에게 진짜 왕관을 물려줄 생각은 있는 걸까? 김탄이 원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의 곁을 떠나간다. 오늘 그는 사랑하던 형을 잃었고, 보름 후에는 사랑하는 차은상을 잃게 될 것이다. 김회장이 차은상을 불러 강요한 두 가지 선택은 잔인했다.

 

오늘 당장 김탄과 헤어지면 어디든 네가 원하는 곳에 가서 공부나 일을 계속할 수 있지만, 15일 동안 김탄을 만나며 이별의 유예 기간을 갖는다면 그 후에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김회장은 말했다. 한국도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아닌, 그 어딘지 모를 곳으로 영영 보내 버리겠다는 경고였다. 그렇게 된다면 평생을 외로움과 고통 속에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은상은 보름 후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첫사랑에 빠진 18세 소녀이니까.

 

 

김탄의 방으로 올려보내도 좋다는 회장의 허락이 떨어진 듯, 복도와 계단에 줄줄이 서 있는 경호원들은 차은상의 발걸음을 막지 않는다. 밝게 웃으며 자신의 방문 앞에 서 있는 차은상을 놀란 듯 바라보는 김탄의 눈빛... 차라리 돈이나 권력을 욕심냈더라면 살기가 좀 편했을텐데, 욕심 한 점 없는 김탄의 눈동자는 그저 슬프기만 할 뿐이다. 이민호의 깊은 눈빛이 질풍노도의 18세 소년을 연기하기에 썩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슬픔의 깊이를 표현하는 데는 그야말로 제격이었다. 가슴이 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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