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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닥터' 자폐증 주원, 그래도 좋은 의사인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굿 닥터' 자폐증 주원, 그래도 좋은 의사인 이유

빛무리~ 2013. 8.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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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을 앓는 주인공이 좋은 의사가 되는 이야기 '굿 닥터'는 참으로 따스한 드라마입니다. 순수를 찾기 힘들어진 사회 속에서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들과 그 순수의 힘으로 생명을 되찾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 주제와 의도를 알면서도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이 드라마 또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마찬가지로 이상향을 그리는 동화쯤으로 생각하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첫 회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너목들'은 초능력이라는 판타지를 내세움으로써 동화적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다소 과장된 설정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자폐증이라는 현실적 질환을 내세운 '굿 닥터'는 훨씬 강한 리얼리티로 다가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비현실적이거나 과장된 요소가 발견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픽션이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도 말이죠.

 

이렇듯 허구와 현실의 경계선이 모호한 데다가, 배경은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병원입니다. 병원은 살다 보면 누구나 수시로 들락거리게 되는 곳이기에 '너목들'의 배경이었던 법원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더욱 밀접하다고도 볼 수 있고요. 그렇다 보니 "언제든 나도 저런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시청자의 마음은 자꾸 환자들에게 몰입되고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메디컬 드라마를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요.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은 환자보다 의사인 경우가 많고, 초점이 의사에게 맞취지다 보면 자연히 그들의 사회에 존재하는 부정부패와 비리 등 추한 모습들도 부각되기 마련이죠. 물론 의사도 사람이니 그들의 사회 역시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다고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언제나 환자 쪽 입장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저로서는 뻔히 드라마인 줄을 알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굿 닥터'는 이제껏 보았던 의학 드라마들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 박시온(주원)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인데요. 어려서부터 앓던 자폐증이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로 의사 가운을 입게 된 박시온은 '의사'이면서 동시에 '환자'입니다. 서번트 증후군으로 의학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지녔지만 정신연령은 아직도 7~8세 가량에 멈추어 있죠. 그는 아직도 '어른들의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며, 그의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저돌적입니다. 숨겨진 의도나 꿍꿍이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상황 판단의 기로에 놓였을 때 어른이라면 누구나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적 고뇌'조차도 박시온에겐 없어요. 그의 우선 순위는 어느 경우에나 단순 명백하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병원의 시스템이나 원칙도, 선후배간의 예의도, 자신에게 닥쳐올 불이익도, 박시온에게 있어 그 어떤 것도 '환자의 치료'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습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눈빛, 타인과 일상적인 대화조차 나누기 힘든 어눌한 화술, 앞뒤를 가리지 않는 무모한 행동, 툭하면 본의 아니게 사고를 치거나 벌벌 떨리는 손발... 확실히 의사로서는 부적격하다 싶은 모습들 투성이인데, 이상하게도 그런 박시온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박시온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겨울 따스한 물 속에 잠긴 것처럼 황홀하고 짜릿하더군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계산하는 일 없이 자기 소신대로 행동하고, 더러운 세상의 복잡한 원칙들 따위는 깨끗이 무시해 주는(물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아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자기처럼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데만 온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의사 박시온...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캐릭터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 자체로 힐링이었습니다. 

 

물론 '굿 닥터'에도 불편한 모습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죠. 성원대학병원 의료진 내에서도 선과 악의 구분은 촌스러울 만큼 뚜렷합니다. 박시온의 정신적 지주이며 아버지 같은 원장 최우석(천호진)이 대표적 선역이고, 그의 소울메이트처럼 보이는 재단 이사장 이여원(나영희)도 선역에 해당되죠. 그에 반해 시커먼 속을 숨긴 채 기회만 엿보고 있는 부원장 강현태(곽도원)와 이사장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재단 전무 이혁필(이기열)은 악역입니다. 게다가 4회에서는 강현태를 조종하는 미스터리의 인물 김창완까지 나타나, 병원 재단이 위기에 처했음이 드러났군요. 하지만 악역들 중에서도 제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위쪽의 굵직한 거물들이 아니었습니다. 실무 의료진에 속하면서도 매사에 환자는 뒷전이고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소아외과 과장 고충만(조희봉)이 저는 가장 끔찍하더군요.

 

 

솔직히 환자들 입장에서야 병원 재단이 넘어가든 말든, 누가 원장이 되고 이사장이 되든 상관없죠. 그저 눈 앞에서 나와 내 가족을 치료해 주는 의사 선생님이 중요할 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명색이 주치의로서 자기 환자의 병세가 위급해졌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신의 사회적 로비를 위해 골프를 치느라 늦게 오고, 당장 생명이 위급하다는데도 자기 체면을 생각해 다른 의사가 치료하지도 못하게 기다리라고만 하는 고충만의 모습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어요. 혹시라도 병원에 갔다가 지독히 운이 나빠 그런 의사를 만나게 될까 무섭고, 어쩌면 생각보다 그런 의사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런데 사회적 규칙도 모르고 아무의 눈치도 안 보는 박시온이 환자의 침대를 막무가내로 수술실에 밀어넣었을 때는 정말 속이 시원하더군요. 덕분에 병원 분위기는 싸해지고 몇몇 사람은 멘붕 상태에 빠졌지만, 꼼짝없이 죽을 뻔했던 어린 환자는 무사히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굿 닥터'를 보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던 것은, 과연 내가 환자로서 박시온 같은 의사를 만났을 때 그를 신뢰하고 내 몸을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환자의 가족인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진 않더군요. 더구나 실낱같은 실수에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외과 병동인데, 솔직히 그 불안한 눈빛과 어눌한 말투를 보고 들으면 당장 "이 선생님은 안 된다"면서 펄펄 뛰게 될 것 같았어요. 밀가루를 먹으면 안 되는 어린 환자에게 쌀가루 케이크를 사다 준 박시온의 행동은 100%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환자의 엄마는 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케이크를 집어 던지며 몹시 화를 냈죠. 사실상 박시온은 잘못이 없고 그 엄마의 과한 행동이 잘못된 거였지만, 혹시라도 아이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하는 엄마의 심정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선량하고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환자와의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면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의사가 될 수는 있는 것일까? 저는 줄곧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헤매며 이런 생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완벽한 의사는 김도한(주상욱) 교수입니다. 그는 깨끗한 양심과 투철한 사명감과 냉정한 판단력과 훌륭한 실력을 갖추었고, 편견 없이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겸허함까지 지녔습니다. 의사로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위급한 수술 중, 아무도 박시온의 어눌한 목소리를 귀 담아 듣지 않고 무시할 때, 오직 김도한은 마음을 열고 그 지적을 받아들여 몇 차례나 환자를 살려낼 수 있었죠.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실력과 지위를 갖추고도 오만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건 매우 존경스러운 인격입니다. 그리고 팰로우 2년차, 여주인공 차윤서(문채원)도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괜찮은 의사라고 볼 수 있겠네요.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다고 수술 전날 새벽까지 혼자 술을 퍼마시는 의사라니 심히 걱정되는 면도 있지만, 하여튼 캐릭터 설정상으로는 인품과 실력을 겸비한 게 맞는 듯하니까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의 주인공 박시온은 과연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박시온은 모두가 포기했던 미숙아 환자의 수술을 가장 먼저 고집했습니다. 다소 무리한 방법이었지만 그 열정으로 몇몇 동료 의사들을 감복시켜 치료에 임하게 했고, 그래서 결국은 꺼질 뻔했던 아기의 생명을 살려냈습니다. 그런데 위쪽의 높은 의사 양반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면서 참 말들만 많더군요. 수술 전에는 실패할 확률이 80% 이상이라고, 괜히 우리 병원만 덤터기를 쓰게 될 거라고, 자칫하면 소송에까지 휘말릴 수 있다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는 병원 규칙을 어겼다고, 상벌위원회를 열어서 징계를 주어야 한다고... 참 어찌나들 잘나셨는지요..;; 분명 그들도 의사인데, 환자의 생명을 포기하는 게 맞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사람이 눈 앞에서 죽어가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할 것도 많고 염려할 것도 많습니다. 그 곳은 분명히 병원인데,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미친 듯 단순한 골통 의사가 툭 튀어나와 사람 먼저 살려야 한다고 외친 거죠.

 

그는 오직 환자의 생명밖에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비록 타인과의 의사 소통은 잘 안되지만, 메디컬 머신이나 로봇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지만, 그럼 뭐 어떤가요? 누구보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의사가 박시온인 걸요. 물론 앞뒤 가리지 않는 무모한 행동 때문에 더 위험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환자라면... 자신들의 권익을 먼저 생각해서 이리저리 재고 따지며 환자를 방치해 두는 의사보다는, 차라리 불안하더라도 자폐증 의사 박시온을 선택해서 내 몸을 맡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드라마를 볼 때와 같은 전지적 시점으로 의사들의 속마음과 실체까지 모두 알고 선택할 수 있다면, 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정하에서지만 말이에요. 

 

 

만약 내 가족이 의사들의 이기적인 머뭇거림과 눈치보기 속에서 방치되다가 죽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법적 제재나 현실적 보복은 불가능하더라도 심정적으로는 평생 증오하게 될 것 같군요. 하지만 차윤서나 박시온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가 최선을 다해서 살려 보려다가 실패했다면, 설령 그 과정 중에 실수가 있었다 해도, 충분히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인명은 재천이니, 그런 상황이라면 원망보다 이해가 타당한 거니까요. 그러니 박시온은 좋은 의사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이 드라마의 판타지를 조금만 너그럽게 보아 준다면, 박시온은 확실히 '굿 닥터'가 맞아요. 이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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