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가 깨부순 자기합리화의 함정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가 깨부순 자기합리화의 함정

빛무리~ 2013. 8. 1. 08:00
반응형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처럼, 자기 잘못에 대해 변명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심리일 것입니다. 그러니 변명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은 상당히 인간적인 자세라고 볼 수 있겠죠. 타인의 변명을 들어주는 것은 자기 자신도 언제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며, 힘든 상황에서 더욱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상대방의 입장을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니까요. 누군가의 변명을 들어주는 것은 겸허한 마음과 측은지심을 실천하는 것으로서 매우 고상한 인격을 드러내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변명'이 적정선을 넘어 '자기합리화'의 수준으로 진행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변명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합리화는 스스로 잘못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기에, 두 가지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변명을 하려다 보니 합리화의 길로 잘못 빠져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자기합리화의 대표적 근거로 이용되는 개념이 바로 '사람은 모두 똑같다'는 전제인데요. 자기합리화에 중독된 사람들은 언제나 습관처럼 말합니다. "사람 다 똑같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이 되면 나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들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은 다 똑같다'는 전제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믿어 버립니다. '사람은 제각각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게 되거든요. 정말 확신해서 그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게 아닌 줄을 알면서도 애써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경우도 분명 있겠죠. 죽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합리화의 온갖 양상들을 보면 그 비굴함이 몹시 처연한데,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는 편이 훨씬 당당해 보인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와 같은 '자기합리화'를 주제랍시고 내세웠던 드마라가 바로 '청담동 앨리스'였죠. '사람은 다 똑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세상 모든 여자들을 잠재적 된장녀로 단정지어 버렸던 그 추악한 드라마의 충격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군요.

 

 

따라서 변명에는 귀를 기울여 줄 필요가 있지만, 자기합리화를 시도하는 사람 앞에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함정을 파놓은 채 기다리고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 함정을 피하기가 쉽지 않죠. 아차 하는 사이에 함정에 빠지고 나면, 상대방은 신랄하게 비웃으며 다시 외칠 겁니다. "그것 봐라. 사람은 모두 똑같다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어도, 함정에 빠진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고 말게 되죠. 모질고 영악한 상대방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굳건한 신념과 극한의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 19회에서 그 어려운 미션을 통과한 박수하(이종석)에게는 신념과 인내력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또 하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죠.

 

"나는 당신과 달라.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신처럼 짐승같이 살지는 않을 거야!" 낚시터에서 당당히 선포했던 박수하의 한 마디는 민준국(정웅인)의 가슴 속에 억눌려 있던 수치심을 일깨웠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처했던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자기와 똑같이 행동할 거라는 자기합리화에 의지해서 지금껏 살아왔을 거예요. 원래는 장혜성(이보영)과 박수하를 모두 죽임으로써 미친 복수를 마감하고 자살할 생각이었지만, 박수하의 한 마디 때문에 박살난 마지막 자존감은 민준국의 계획을 수정하게 합니다. 박수하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고 살인자가 되게 함으로써 '너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거죠.

  

 

"사람은 다 똑같다. 누군가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모두 나처럼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단 말이다. 봐라! 너는 나와 다르다고 잘난체 하더니, 결국은 마찬가지 아니냐?" 민준국은 박수하에게 이 말을 간절히 하고 싶었을 겁니다. 더불어 "그는 너와 다르다"고 주장했던 장혜성에게도 박수하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죠. 그렇게 자기합리화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심경이 조금은 편안하리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너도 마찬가지다!"라는 그 한 마디가 자신의 유언이 될지라도 말이죠. 민준국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에 깊은 한숨을 짓게 됩니다.

 

장혜성을 납치한 민준국은 그녀의 입을 막아 아래층에 결박해 놓고, 철거중인 기정단지 옥상에서 박수하를 기다렸습니다. 민준국의 손에는 피 묻은 몽키스패너가 들려 있었는데, 그게 장혜성의 피였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런 물체로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치고는 장혜성의 상태가 너무 멀쩡해서 말입니다..;; 어쨌든 민준국은 타인의 생각을 읽는 박수하의 능력을 경계하여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채, 살아 있는 그녀를 자기가 죽였다고 거짓말을 했지요. 스패너에 묻은 피를 보는 순간 박수하의 몸이 휘청이기 시작합니다. 그녀를 향한 사랑이 컸던 만큼, 냉정한 이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죽였어?" 스패너를 집어들고 민준국에게 다가가는 박수하의 눈에 핏발이 서고, 상처입은 맹수처럼 광폭한 기운이 뻗쳐 나왔습니다. 

 

 

"그래. 내가 죽였어!" 의기양양하게 외치며 민준국은 박수하의 손에 들린 스패너가 자기 머리로 떨어지길 기다렸죠. 마지막 순간, 실컷 비웃어 주리라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장혜성의 곁에는 통화 상태의 휴대폰을 놓아두어, 현장의 생생한 음성들이 그대로 전달되게 만들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봐라, 계집애야. 내가 맞았지? 이 녀석도 결국은 나와 똑같은 짐승이 되어 버리지 않았니?" 그 한 마디를 남기고 통쾌한 웃음으로 세상 하직하려 했는데... 다음 순간, 민준국의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자제력으로 이성을 회복한 박수하가 선글라스 속에 숨겨진 민준국의 본심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거든요.

 

"내 앞에서 눈을 가리고 있다는 건,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 사람은 지금 살아 있어!" 그리고 박수하는 근처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칩니다. "장혜성... 장혜성... 내 목소리 들리지? 절대로, 난 절대 이 사람을 죽이지 않을 거야. 난 절대 짐승으로 살지 않아... 당신하고 한 약속을 꼭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장혜성은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입니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은 기쁨인지 슬픔인지 염려인지 감동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계속 장혜성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민준국을 향해 박수하는 단호히 선언합니다. "아니, 그 사람은 살아 있어. 만일...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내 선택은 같아.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아! ... 그 사람은 내가 당신에게 복수하는 걸로 인생을 보내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 당신 아내처럼... 당신 아내도 당신이 이렇게 사는 걸 알면 괴로울 거야. 지금 당신 꼴이 말이 아니거든. 아주 끔찍하고 불쌍해... 내 선택은 끝났으니까, 더 이상 나를 이용해서 당신 인생을 변명하려고 하지 마!" 이로써 민준국이 회복하려 했던 마지막 자존감과 자기합리화의 계획은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돌아서는 박수하를 향해, 민준국은 스패너를 집어들고 야수처럼 포효하며 달려갔죠. 하지만 차관우(윤상현)의 신고를 받아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 병력에 의해 민준국의 도발은 제압되었습니다. 민준국의 자살을 막으려고 다가가 붙잡았던 박수하는 끝내 뉘우치지 않은 그 놈의 물귀신 작전에 걸려 함께 옥상 밑으로 떨어졌지만, 미리 설치되어 있던 에어매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죠. 민준국은 그 자리에서 경찰에 연행되었고, 경미한 부상을 입은 장혜성과 박수하는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응급실에서의 꿈 같은 재회... 두 사람은 서로 살아 있음에 감격하며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군요. 이젠... 이젠 저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회에선 민준국을 상대하다가 실수로 장혜성을 찔렀던 박수하의 과거가 밝혀지며 약간의 문제가 될 모양이지만,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일까요? 고의도 아니고 피해자도 처벌을 원치 않을텐데... 다만 이 두 사람이 민준국을 어느 정도까지 용서할 수 있을지, 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서 보면 될 것 같네요. 부디 오버하지 말고 적정한 수준에서 멈추길 바라며... 어쨌든 혜성과 수하가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이 눈부신 세상 속에서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된 것만으로 저의 소원 한 가지는 이루어진 셈입니다. 물론 때로는 어둡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니까요.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