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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김성령, 난잡한 드라마의 유일한 구심점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야왕

'야왕' 김성령, 난잡한 드라마의 유일한 구심점

빛무리~ 2013. 2. 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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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권상우)는 자기를 배신하고 딸 은별이(박민하)와 쌍둥이 형 차재웅을 죽음으로 몰아간 옛 연인 주다해(수애)를 향해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하류가 그 복수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칼날은 백학그룹의 장녀 백도경(김성령)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그녀가 주다해의 약혼자 백도훈(정윤호)의 누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백창학(이덕화) 회장의 늦둥이 아들로 알려져 있는 백도훈은 사실 백도경이 18세 되던 해, 첫사랑과의 사이에서 몰래 출산한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백도경은 누나가 아닌 엄마이고, 백회장은 아버지가 아닌 외할아버지가 되는군요. 극 중에서는 11회에 이르러서야 밝혀졌지만 벌써 모든 시청자가 알아차리고 있던 사실입니다.

 

'파리의 연인' 재탕이라고 할만큼 뻔한 설정이지만, 신기하게도 백도경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는 좋은 편입니다. 주다해야 말할 것도 없이 독하고 나쁜 ×인데, 줄곧 그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두 남자 하류와 백도훈은 멍청해 보일 뿐이니, 당최 남녀 주인공에게 몰입을 할 수 없는 드라마라서요. 앞으로는 하류가 어떻게 변신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어설프고 순진할 뿐입니다. 기껏 변호사인 쌍둥이 형으로 위장하여 복수를 해보겠다고 설치면서도 매사에 어찌나 허당스러운지 (예를 들면 낯선 여자가 다가와 정체모를 서류에 싸인하고 지문을 찍으라는데도 의심 없이 그냥 찍으려던 행동..;;)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네요.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가 이러니 그들 중 가장 '제정신'인 것처럼 보이는 백도경에게 상대적으로 몰입이 되더군요.

 

 

그러나 하류의 순진함이 오히려 백도경을 위해서는 다행스런 일입니다. 여자를 이용할 목적으로 접근하면서 자기 속을 거의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남자 캐릭터는 흔치 않거든요. 원래 드라마의 정석대로라면 하류는 옴므파탈의 불가항력적인 매력으로 백도경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녀가 자기에게 홀딱 빠지도록 한 다음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냉정하게 버리는 나쁜 남자의 수순을 밟아야 할 텐데요. 현재 하류는 거의 모든 사실을 백도경에게 곧이 곧대로 털어놓고 협조를 구한 상태입니다. 지금 하류가 백도경을 속이고 있는 부분은 자기 정체가 차재웅이 아니라 하류라는 진실 딱 하나뿐이에요.

 

"실종된 쌍둥이 형제의 행방을 찾아야 하는데 그 열쇠는 주다해가 쥐고 있다. 비밀스런 그 여자의 뒤를 캐내어 압박을 해야 하는데, 이제 백도훈과 결혼해 버리면 정체를 밝히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진다. 당신도 애지중지하는 남동생이 그런 여자와 결혼하는 건 싫지 않은가? 다행히 백도훈은 누나인 당신에게 연인이 생긴다면, 자기들의 결혼 계획을 당신의 결혼 이후로 미루겠다고 한다. 그러니 목표가 같은 우리는 한패가 되어 백도훈과 주다해의 결혼을 막아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과 내가 잠시 연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남자다운 매력으로 여자를 유혹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시시콜콜히 양해를 구하고 협조 요청을 하다니 남주인공 체면은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백도경의 입장에서는 나중에 배신감을 느끼거나 상처받을 일이 없으니 다행이죠. 지금 상황에서는 백도경이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 하류와 서로 윈윈전략을 구사하는 셈입니다.

 

느닷없이 남자가 생겼다면서 다짜고짜 가족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 초청하고 집안에 끌어들이는 백도경의 연기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배우 김성령의 연기는 훌륭하지만 캐릭터 백도경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거든요..^^) 의외로 백창학 회장은 쉽게 속아넘어갈 뿐 아니라 매우 좋아하기까지 합니다. 다 늙도록 결혼을 거부하고 혼자 살기를 고집하던 딸자식이 모처럼 사윗감을 데려온 데다가 인물도 번듯하고 직업도 변호사라니 그저 흐뭇했던 걸까요?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백도훈 역시 누나에게 연인이 생겼음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기꺼이 주다해와 자신의 결혼을 누나의 결혼 뒤로 미루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일단 하류-백도경 연합은 악녀 주다해에게 한 방을 먹이는 데 성공했네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왜 하필 지금일까요? 춘천의 어느 요양원에서 백도경과 백도훈 앞으로 소포가 배달되어 옵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강지혁으로 되어 있네요. 그 이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백도경. 한편 백도훈에게 배달된 소포의 내용물은 오래된 신문 스크랩들입니다. 10년 전 백도훈이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을 시작할 때부터 무릎 부상으로 그만둘 때까지, 그에 관한 기사들을 정성껏 모아둔 스크랩을 보니, 그걸 보낸 사람이 누군지 단숨에 짐작이 되더군요. 백도훈의 생부이자 백도경의 첫사랑이었던, 강지혁은 바로 그 사람이겠죠.

 

백씨 남매는 순진한게 특징이라, 백도경은 뻔히 주다해가 보는 앞에서 허둥지둥 그 소포를 빼앗아 가는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이런 거 모아 뒀다가 보내는 사람 제정신 아니야"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죠. 누가 봐도 수상한데 여우같은 주다해가 놓칠 리 없습니다. 신문 스크랩 상자만 빼앗고 정작 발신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택배용지는 챙기지 않은 백도경의 어설픔은 결국 악녀 주다해에게 제대로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본 백도경은 강지혁이 며칠 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할 뿐 찾아가 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데, 발 빠른 주다해는 주소에 적힌 요양원으로 곧장 찾아가 강지혁이 남긴 유품마저 차지하고 말았네요.

 

강지혁의 유품 상자에는 젊은 날 청순미 넘치는 백도경과 함께 다정한 포즈로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왜 죽음을 앞두고 백도경에게 소포를 챙겨 보내면서 그 사진들은 굳이 빼놓았던 걸까요? 최후의 순간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서였을까요? 하여튼 그 덕분에 주다해는 백도경의 비밀을 알게 되고, 난적의 덜미를 잡아 결정적인 승세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유전자 검사 따위는 하지도 않았으면서 봉투에 백지를 넣어 검사 결과라고 백도경 앞에 내밀던 그 담대함은 역시 최강 악녀의 포스로 손색이 없군요. 순진한 백도경은 제대로 허를 찔리자 당황한 나머지 봉투를 열어 볼 생각도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며, 주다해의 협박 내용이 진실이라는 것을 무언중에 시인하고 말았습니다.

 

 

'야왕'은 참으로 헛점이 많은 드라마입니다. 하류는 살인죄를 덮어쓰고 체포되었을 때 주다해와의 사실혼 관계(아이가 있었다는 과거까지)를 폭로했고 주다해도 어쩔 수 없이 경찰 앞에서 모두 인정했는데, 만약 현실에서였다면 벌써 각종 신문에 대서특필되고도 남았을 그 사안은 단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라는 주다해의 한 마디로 원천봉쇄되어 버렸죠. 신문 방송은 커녕 한 마디 소문조차 새어나가질 않습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네" 하면서 완벽히 입을 다물어 준 그 경찰들은 주다해의 수호천사라도 되나요? ㅎㅎ

 

게다가 차재웅은 제법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것 같은데, 아무 준비도 없이 차재웅으로 변신한 하류는 무슨 개점휴업 중인지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전혀 안 하고 있습니다. 주다해가 그를 떠보기 위해 요청했던 커피전문점 사업에 관한 법률적 조언도 어떻게 얼렁뚱땅 넘겼는지 그 내용은 전혀 나오질 않는군요. 법률 공부는 한 글자도 안 했으면서 변호사 흉내를 완벽하게 내고 있다니, 멍청해 보이는 하류가 사실은 천재였나요? ㅎㅎ '야왕'을 시청하다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하게 되는 장면들이 그야말로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김성령의 풍부한 감성 연기에 힘입어,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한 내용 속에서도 백도경의 캐릭터만은 날이 갈수록 생동감 넘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아 참, 백창학 회장의 여동생이며 도경, 도훈 남매의 고모인 백지미(차화연), 이 사람의 역할도 앞으로 좀 기대되기는 하는군요. 지금 백지미가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백창학의 집에 10년째 머물고 있는 이유는 자기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간 오빠에게 복수하려는 목적에서라고 여겨지는데요. 아직까지는 역할이 미미하지만, 백학그룹을 파멸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죠. 그러므로 역시 백도경보다는 주다해와 손을 잡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오래 전 비정한 아버지 때문에 사랑을 잃고 아들마저 빼앗겼던 백도경은 이제 또 그 비밀 때문에 주다해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네요. 지금 수세에 몰린 백도경을 도와줄 유일한 아군은 그녀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덤벼든 하류 뿐이니, 지성과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여인의 삶이 이토록 쓸쓸하고 가여울 수가 없습니다. 백도경의 캐릭터가 이 난잡한(어수선하고 너저분한)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구심점이 되고 있는 이유는, 얼핏 완벽한 듯 싶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허술하고 인간적인, 그런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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