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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박범신, 흑백논리에 경종을 울리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힐링캠프' 박범신, 흑백논리에 경종을 울리다

빛무리~ 2012. 6. 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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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로 제작된 '은교' 덕분에 그의 원작소설도 함께 화제가 되고 있는 만큼, 초반의 화제가 오욕칠정(五慾七情)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저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은교'의 주제는 너무도 명확하고 당연한 것이어서 가부를 논할 필요조차 없었거든요. 늙음이 죄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몸이 늙는다 하여 마음이 함께 늙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너무 당연한 것인데, 기이하게도 늙음 자체를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한지 오래 되었으니 한심스러울 뿐이지요. 하다못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특정 인물을 단지 '나이 많다'는 이유로 놀려대는 모습을 보는 게 드문 일은 아니잖습니까? 영원한 젊음을 누리고 싶은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이 불러온 비틀린 사회 현상이죠. 

 

'은교'가 70대 노인과 17세 소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식으로 자극적인 홍보가 되는 바람에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작품 속에서는 이적요(박해일)와 은교(김고은)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싱그러운 젊음을 상징하는 17세 소녀 은교는 노시인 이적요에게 있어 단지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지요.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이적요의 마음 속에서 노역 분장을 하지 않은 박해일의 현재 모습이 잠시 등장하는 장면은 참으로 가슴아프면서도 매혹적이었습니다. 소년같은 그 얼굴은 은교의 청순한 모습과 너무 잘 어울렸지만, 더 이상 그 때처럼 젊지 않은 이적요는 끝내 은교라는 꽃을 꺾지 않고 바라만 보았지요. 하지만 젊은 서지우(김무열)는 그 꽃을 아낌없이 거침없이 꺾어 버렸습니다. 충분한 절제가 동반된 노년의 사랑은 젊음의 무절제한 사랑보다 차라리 아름다웠을 뿐, 변명이 필요한 죄악은 아니었어요.

 

변명도 필요없다면서 서론이 길었네요. 제가 주목한 부분은 '은교'도 아니고 '오욕칠정'도 아닌, 작가 박범신의 삶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인생 역경을 거쳐 왔길래 무려 4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을까? MC들의 질문을 받은 노작가는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이 시대의 예민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고백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라 두렵다면서, 지금은 많이 후회하고 있노라는 말을 먼저 하더군요. 자칫 예전의 잘못된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더라면, 삶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인지를 깨달을 수 없었을 거라면서 말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평생을 지배한다는 말이, 어쩌면 맞는 것 같습니다. "50년이 지나도 내 앞을 가로막는 담벼락이 있다"고 말할 때, 노작가 박범신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히는 듯했고 달변을 이어가던 음성도 살짝 목이 메는 듯했습니다. 등잔불을 켤 수조차 없을 만큼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돈을 벌러 외지에 나가 계셨고, 1남 4녀의 막내였던 박범신은 좁아터진 집에서 어머니와 네 명의 누나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너무도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그 어둡고 좁은 공간 속에서 가족들은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해갔고 별 이유도 없는 다툼이 날마다 계속되었습니다. 어린 막내는 학교에서 돌아와도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는군요. 담벼락 한 귀퉁이에 숨어 앉으면, 귓가에는 어머니의 한숨소리와 누나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눈 앞에 보이는 이웃집 창문에는 등잔불이 켜지고 가족들의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밥상에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는 소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린 소년은 그 화목한 가정을 한없이 그리워했지만 자기는 그 쪽의 소속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소속된 곳은 캄캄하고 상처투성이인 등 뒤의 집이었지요. 소속된 곳으로도 그리운 곳으로도 갈 수 없었던 외톨이 소년은 마음 둘 곳을 찾다가 책에 탐닉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좋은 스승의 가르침 없이 너무 어린 나이부터 지나치게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한 것은 오히려 해가 되었습니다. 소년은 자기 취향에 맞는 염세적인 내용들만 스폰지처럼 빨아들였을 뿐, 그 너머에 있는 커다란 주제를 깨달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방송에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처음 2차례의 자살 시도는 10대 청소년 시절에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박범신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책이 너를 미치게 한다"면서 강제로 2개월 동안 학교를 쉬게 하고 산봉우리의 외딴 집에 요양을 보냈을 정도였다니까요. 어지간히 충격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그러지는 않았겠지요. 그 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고, 박범신 작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평범한 상태는 아니었던, 가엾게도 스무 살이 채 되기 전부터 그는 이미 마음의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던 거예요.

 

대학시절, 일생의 동반자가 될 아내를 만나 사랑을 시작했지만,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병은 다시금 그를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었습니다. 자기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는 절망감... 병든 마음의 그 미칠듯한 고통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그런 끔찍한 모습을 보고 나서도 결혼을 결심한 아내분의 사랑이 저는 더욱 놀랍더군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내에게 더욱 큰 타격을 입힌 사건은 몇 년 후에 찾아왔습니다. 아이를 셋이나 낳고, 신문에 '풀잎처럼 눕다'를 연재하며 인기작가로서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던 1980년, 무책임한 마지막 자살 시도를 했던 것입니다. 

 

당시 사회는 젊은 지성인이라면 마땅히 민주화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여기는 분위기였습니다. 광주사태 등의 흉흉한 소식은 날마다 들려오고, 박범신도 시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외부적으로 그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여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소설가처럼 비춰지고 있었지요. 무엇보다 그를 가슴아프게 했던 것은, 스스로 동지라 여겼던 사람들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료들의 비난을 받을수록 자괴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작가로서 온당한 자리일까? 나는 연재소설을 쓰며 아이들 벌어 먹이는데 불과한 작가란 말인가?"

 

저는 여기까지 들었을 때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벌어 먹이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을까요?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안락한 삶의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폄하당할 만큼 가치없는 일일까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기 존재 가치를 부정할 지경이 되어, 해서는 안 될 시도를 할 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더구나 박범신은 어린 시절의 가난 때문에 커다란 마음의 병을 얻었고, 몇 차례나 세상을 등질 뻔했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자기 가족의 평안을 버리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하는 시대였던 것이,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뒤늦게서야 깨달았다고, 아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죄인이 되었다고, 큰 책임에 앞서 작은 책임부터 져야 했는데, 나라에 대한 책임에 앞서 가정에 대한 책임부터 져야 했는데, 자기가 있어야 할 포지션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아주 많이 후회하고 있노라고. 박범신 작가는 거듭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산을 좋아하여 히말라야를 자주 찾는다는 그는 등산의 기본 원칙을 "홀로 걷되 함께 걷는 것" 이라고 정의하더군요. 원칙적으로는 산의 경치를 감상하며 홀로 걷는 것이지만, 이따금씩 동행의 안부를 챙기고, 멀찌감치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에 반가워하며, 그렇게 홀로이되 함께이고 함께이되 홀로인 길.

 

그리고 우리 인생과 사회도 그렇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중간의 목소리가 없다고... 얼마든지 함께 하면서도 홀로일 수 있건만, 지금 사회의 분위기는 함께가 아니면 무조건 적이라고... 양극단이 아닌 회색지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박범신 작가는 말했습니다. 또한 인생이란 작더라도 자신만의 봉우리를 가꾸는 것이며, 옆에 있는 다른 이웃 봉우리를 인정하고 함께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너무 깊은 공감에 저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사실 흑백논리는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것이라 빠져들기가 쉽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흑백논리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타인의 흑백논리에 깊은 상처를 받아본 경험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있으련만, 그런 상처를 갖고서도 또 다른 사람에게 흑백논리로 상처를 주게 됩니다. 저 자신부터도 그랬던 것 같네요. 온 몸과 영혼을 불사르며 그 어려운 시대를 지나오신 박범신 작가가 그 삶 속에서 깨달은 가장 귀한 교훈을 전해 주셨으니, 부디 몇몇 사람의 마음이라도 열어젖힐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제가 그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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