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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남자' 이장일을 향한 복수의 끝은 용서?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적도의 남자

'적도의 남자' 이장일을 향한 복수의 끝은 용서?

빛무리~ 2012. 4. 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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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일이 김선우의 뒤통수를 내리치고 벼랑에서 밀어 바다로 떨어뜨리던 그 충격적인 명장면은, 두 명품 아역들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었지요. 임시완의 눈빛이 갑자기 정신나간 것처럼 변해서 몽둥이를 들고 이현우의 뒤를 바짝 쫓아갈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는데,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선우의 머리를 몽둥이로 있는 힘껏 내리치는 장일의 모습이 너무도 뜻밖이었던 이유는, 첫 회의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선우와 장일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이장일(이준혁)은 마치 절대악을 응징하려는 정의로운 검사처럼 진노식(김영철) 회장을 찾아가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진노식은 이미 김선우(엄태웅)의 복수극에 휘말려 거의 모든 재산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씩 되찾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면서, 자기는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진노식을 이장일은 증오의 핏발이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며, 이미 두 장의 유서를 써 놓았으니 부디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건넸지요. 그를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는 결연한 태도였습니다.

이장일의 총구가 진노식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순간, 김선우가 나타나 저지합니다. "장일아, 이제 그만 하자!" 그래도 이장일이 말을 듣지 않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자 김선우는 그의 손목을 잡아채며 총을 빼앗으려 했고, 위험천만한 실랑이 끝에 총을 사수하는데 성공한 이장일은 목표를 바꾸어 총구를 김선우의 이마에 겨눕니다. 하지만 김선우는 서늘한 총구에는 아랑곳 없이, 핏발 선 눈동자로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이장일의 모습을 처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요. 그런 김선우의 모습에서 프롤로그는 마무리되고, 드라마는 모든 사건이 시작되었던 15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프롤로그의 분위기로 볼 때 이장일은 김선우의 친구이자 동료일 뿐, 원수일 가능성은 없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장일이 선우에게 총을 겨누긴 했지만, 단순히 자기 일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려는 과장된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웬걸, 알고 보니 김선우에게 이장일은 진노식보다 더한 원수였습니다. 선우는 자기 몸을 다치면서까지 빚쟁이들 손에서 장일과 그 아버지를 구해 주었고, 대신 정학을 당하면서까지 장일의 실수를 덮어주는 친구였지요. 서울로 대학 간 장일에게, 자기가 돈 벌어서 학비와 생활비를 대어 줄테니 걱정말고 공부만 하라던,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장일은 그 깊은 온정과 진실한 마음을 배신하고 자기 출세를 위하여 친구를 죽이려 했으니, 이보다 더 나쁜 놈이 있겠습니까?

김선우가 2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눈 먼 상태로 깨어났을 때도 이장일은 수없이 그를 기만했습니다. 친구를 가장하여 곁에 있으면서 수차례나 선우를 위기에 빠뜨렸고, 한지원(이보영)과의 관계를 알게 된 이후로는 질투심에 가득차 번번이 독한 말로 약올리며 비웃었고, 급기야는 뭐 뀐 놈이 성낸다고 그러잖아도 피해자인 선우를 실컷 두들겨 패기까지 했습니다. 늙은 진노식이 때묻고 교활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장일은 나이도 어린 놈이 어찌나 극악스러운지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어요. 물론 본성이 악해서라기보다는 한 번의 큰 죄악이 올가미가 되어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음을 모르지는 않았지만요.  

 

드라마가 12회까지 진행된 현재, 복수의 초점은 이장일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진노식은 다음 차례로 미뤄놓고, 일단은 장일이 녀석부터 쓰러뜨리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에요. 그 방식은 전적으로 문태주(정호빈)의 조언에 따르고 있는 듯합니다. "벌레먹은 나무는 바람이 불면 쓰러진다. 굳이 도끼질을 할 필요가 없어. 너는 그냥 바람이면 된다."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김선우는 말했었지요. "싸우러 가지 않습니다. 무너뜨리러 갑니다!"

일반적인 복수극의 주인공과 달리, 김선우는 처음부터 원수들 앞에 자신의 정체를 똑똑히 밝히고 정면승부를 시작합니다. 죄 지은 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의 무게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죠. 이와 같은 방식이 과연 진노식에게도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장일에게는 기대 이상으로 잘 먹혀들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거센 바람은 아직 불기도 전인데, 전초전에 지나지 않는 산들바람이 불었을 뿐인데도 이장일은 거의 정신줄을 놓은 상태거든요. 밑둥이 어찌나 썩었는지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제풀에 쓰러질 게 뻔해 보이는군요.

 

공교롭게도 김선우와 같은 시기에 최수미(임정은)가 귀국하면서, 이장일은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김선우가 나타나 15년 전의 진실을 밝히려 하는 것만도 숨통이 막힐 지경인데, 줄곧 무시해 왔던 최수미가 세계적인 화가로 성공하여 나타났을 뿐 아니라 당시 사건의 생생한 목격자였음이 밝혀졌으니까요. 그리고 김경필 살해사건 당시, 자기 아버지 이용배가 단순히 시체를 처리하는 심부름만 했던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던 사람의 목숨을 끊어놓은 살인자였음이, 진노식의 입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제 이장일은 손발을 꽁꽁 묶인 듯, 도망치기는 커녕 옴쭉달싹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네요.

이장일을 향한 김선우의 복수의 끝은 어떤 모양새일까요? 거센 회오리바람으로 복수의 직격탄을 맞은 이장일은 어떤 모습으로 파멸하게 될까요? 진노식과 이장일에게 김선우가 원했던 것은 법적 처벌 그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분명히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친구라고 봐주려는 건 아니죠?" 라고 쿤(조희봉)이 물었을 때, 김선우는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누가 내 친굽니까?" 하고 되묻기까지 했습니다. 그 단호함으로 봐서 이장일의 최후는 더없이 비참해야 마땅할 듯한데... 예를 들어 자기가 아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을 깨달은 이용배가 먼저 자살을 하고, 그러잖아도 극심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던 이장일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쓸쓸히 그 뒤를 따른다... 뭐 이 정도 되면 충분할까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프롤로그의 장면들을 돌이켜보면, 김선우는 결국 이장일을 용서하고 다시 친구로 받아들인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분명 이장일은 김선우의 친구이자 동료로서, 진노식을 향한 복수극에 동참해 온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장일아, 이제 그만 하자!" 라고 말하는 김선우의 목소리에는 깊은 우정이 담겨 있었고, 이장일의 핏발 선 눈빛에는 진노식을 죽임으로써 친구의 복수를 대신해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죗값을 치르려는 결연함이 엿보였습니다. 그런데 김선우는 어떻게 이장일 같은 놈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이장일은 어려서부터 현재까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한 명도 갖지 못한 외로운 녀석입니다. 아버지만이 유일한 그의 편이었지만, 이용배는 비뚤어진 부정(父情)으로 범죄자가 됨으로써 아들의 인생까지 망가뜨렸죠. 또한 이장일은 애써 강한 척하지만 내면은 소심하기 이를 데 없어, 쉽게 흥분하고 쉽게 상처받는 어린애같은 인물입니다. 김인영 작가는 이와 같은 이장일의 캐릭터를, 증오보다는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해요. 현재 사방에서 이장일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는 너무 촘촘해서 잔인하다 싶을 정도인데, 그렇다 보니 시청자들 사이에는 동정론이 퍼져가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어쩌면 이러한 반응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만큼 고통받았으면 됐잖아요? 사실은 외롭고 소심하고 딱한 녀석인데, 이제 그만 용서해 주는 게 어때요?" 마치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거든요. 그 목소리가 결국은 김선우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을테니, 아마도 이장일을 향한 복수의 끝은 용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최후에 이장일이 죽음으로써 김선우에게 사죄를 할지, 아니면 평생 죄의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김선우의 곁에서 친구로 살아갈지, 그의 선택은 아직 알 수가 없겠네요.

 

제 생각이 맞다면 '적도의 남자'는 방법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결과에 있어서도 기존의 복수극과 사뭇 다른 방식을 택한 셈인데, 이 새롭고도 과감한 시도를 과연 얼마나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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