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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버지"의 순서가 먼저일까요?

빛무리~ 2009. 7. 1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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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로는, 추리소설 이야기 하나 >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참 재미있게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의 작품(벙어리 목격자)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노부인이 살해를 당합니다.
그 유산의 상속자로 지목된 세 명의 조카들이 용의선상에 오르지요.
그 조카들 중에 "테레사"라는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습니다.
테레사는 "레너드"라는 젊은 의사와 약혼한 사이였지요.

탐정 포와로는 테레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레너드를 찾아갑니다.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의 레너드는 거침없이 포와로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테레사의 죽은 어머니는 좀 이상한 성격이었습니다.
 허영도 심하고 짜증도 잘 부려서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었지요.
 테레사도 그런 어머니를 닮아서 매우 허영이 심한 편입니다.
 자기 과시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짜증도 심하게 부리지요.
 한 마디로 그다지 좋은 성격을 가졌다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포와로는 순간 아연실색해서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것이, 당신의 약혼녀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그러자 레너드는 포와로를 똑바로 마주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저는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테레사를 사랑합니다."
 

< 두번째로는, 신앙서적 이야기 하나 >

언젠가 개신교의 목사가 저술한 "사도신경과 그리스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벌써 거의 10년 전에, 누군가에게서 빌려 읽었던 것이라
저자의 이름도, 세밀한 내용도, 출판사도...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같은 크리스트교의 신자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아직까지도 한 가지 뚜렷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사도신경의 첫 구절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었습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이것은 우리말로 번역된 표현이죠.
그러나 라틴어로 된 원문과는 그 순서에 있어서 좀 다르더군요.
책의 저자인 목사는, 이 문장이 원문인 라틴어에 있어서
어떠한 순서로 단어들이 배열되어 있는가에 주목했습니다.

저 문장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세 가지의 호칭이 등장합니다.
"전능자", "아버지(성부)", "천지의 창조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라틴어로 된 원문의 순서에서는
가장 먼저 "아버지"라는 호칭이 나오고,
그 다음이 "전능자"이며 또 그 다음이 "천지의 창조자"라고 합니다.

책의 저자는 이 순서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의 순서가 "전능자"보다 먼저라는 데에 주목하고
큰 비중을 둡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전능자"와 "천지의 창조자"라는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나요?
사랑을 느끼나요? 음... 그건 아니죠.
다만 이성적으로 감탄하고 두려워하고 존경하게 되지요.

그러나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 입니다.
그것도 조건부가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못났거나, 죄인이거나 불구자라 하여도
그에 전혀 개의치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오히려 부족하기에 더욱 안스러워하며 감싸주는...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그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지요.
아버지가 남들보다 부족해서 잘 해주지 못하면
자식들은 곧잘 아버지를 원망하곤 합니다.
무언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조상 탓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와 비슷한 것도 같고...

이리하여, 사도신경의 첫 구절에 등장하는 하느님께 대한 세 가지 호칭 중,
"아버지"의 순서가 "전능자"보다 먼저라는 사실은
"머리의 신앙"보다는 "가슴의 신앙"이 우선임을,
즉 "이성의 신앙"보다는 "감성의 신앙"이 우선임을 의미한다고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 세번째로는, 토크쇼 이야기 하나 >

언젠가 TV 토크쇼에 출연한 한 유명인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젊은 부부들에게 주례를 서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그들에게 당부하는 사랑의 약속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지요.
 하나는 "~때문에"의 사랑이고, 또 하나는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때문에"의 사랑이란, 상대의 좋은 점을 기반으로 합니다.
 당신이 아름답기 때문에, 당신이 부자이기 때문에, 당신이 젊기 때문에... 등등...
 이 사랑은, 상대의 장점이 지속되지 못할 경우 즉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으로 결합된 부부관계는 지극히 위험합니다.

 하지만 "~불구하고"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의 장점이 아닌 단점을 기반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못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노쇠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구하고"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부부들은 이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맺어져야 할 것입니다."

----------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결국, 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허영에 넘친 약혼녀를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젊은이...
상대의 단점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언제나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하늘의 아버지...

삶으로 인해... 신앙으로 인해... 때로는 고통스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이신 주님은
이기적인 우리의 "~때문에" 사랑을,
충분히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바꾸어 놓으실만한 강력한 힘을 지닌,
"전능자"이기도 하시므로
우리는 한 걸음씩 완전한 사랑에로 가까이 나아가고 있음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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