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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차피 그들의 혁명이 실패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허무할 거라는 예상은 솔직히 하지 못했습니다. 송태하의 수족같은 부하들이 모두 황철웅의 손에 추풍낙엽처럼 어이없이 쓰러져갈 때에도 설마 이것이 끝은 아니겠지 했었습니다. 송태하와 더불어 혁명군의 수장격이었던 조선비가 변절했을 때에도, 그 변절의 결과로 숨어있던 동지들이 모조리 잡혀들어갔을 때에도, 심지어 끝까지 남아서 활약하던 한섬이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에도 설마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횃불인 송태하의 존재가 남아있는 한,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의 이미지와는 달리 더 이상 송태하가 완벽한 인간상이 아님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나, 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 있었..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고...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일은 드디어 포문을 열며 실행되고... 이렇게 '추노' 역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궁극적으로 중점을 두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서로를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의 더없이 인간적인 화해와 사랑인지,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추노'는 두 가지를 다 그려내고 있으며, 어느 쪽에 더 비중이 있는지도 시청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최소한 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에 따라 결말이 주는 여운은 많이 달라질 듯 싶습니다. 1. 외유내강한 짝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포스팅의 주제와 직접적 연관은 없음에도, 짝..
다행히도 짝귀의 산채를 향해 엄습해 오던 어두운 그림자는 일단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황철웅이 목표로 삼고 있는 이대길과 송태하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지요. 원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산채는 들이치게 되겠지만, 그 가엾은 사람들이 속 편히 숨 쉬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이틀은 늘어난 셈입니다. 어느 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어버린 언년이와 설화, 그리고 귀여운 원손 아기씨도 그 평화 속에서 며칠은 더 곱게 웃을 수 있겠네요. 1. 두 남자의 이상한 동행 "예전에는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며 되뇌이는 대길이의 쓸쓸한 얼굴을 보니, 그 사내의 바보같은 사랑에 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정말 그와 같은 사..
어쩌면 조선비의 변절은 벌써부터 명백히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의 속내가 개인적 탐욕에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송태하와 의견충돌로 갈등을 빚으면서,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던 조선비의 야욕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송태하와 조선비는 둘 다 뿌리깊은 양반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지만, 그 방향은 여실히 달랐습니다. 송태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대의명분이었지요. 언년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빛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송태하의 삶에 있어 가장 큰 목적은, 죽은 소현세자에 대한 충성으로 그가 남긴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반란을 일으키기보다는 현재의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뜻을 전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고자 했..
'추노' 12회를 시청하면서 문득 그 작가의 여성관이 궁금해졌습니다. 드라마의 전개가 이미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비호감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를 보며,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주인공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관계로 리뷰를 쓰면서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를 한동안 고민했으나, 제 느낌에는 혜원이보다 언년이라는 이름이 그녀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듯하여 앞으로도 계속 언년이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추노'에는 아찔할 정도로 멋진 남성 캐릭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대길, 송태하, 최장군은 말할 것도 없고, 악역인 황철웅과 귀여운 바람둥이 왕손이, 궁녀를 사랑했던 우직한 한섬이 등의 남자들이 제각각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