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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초복아, 날 용서해라니... 네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나는 갈 수가 없게 되었구나... "오실거죠?" 네가 울면서 물었을 때 "미칬나? 당연히 가야지... 내가 너를 거기 두고 어찌 혼자 사나?" 하고 큰소리를 쳤는데... 너는 내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매일 기다릴텐데, 나는 약속을 지킬 수가 없구나... 초복아, 날 용서해라니. 그래도 정말 고마웠다니... 둘이 도망쳐서 살기를 원하냐고 물어봤을 때, 네 맘도 내 맘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니... 나라고 왜 네 손만 붙잡고 도망칠 생각을 안 해봤겠나? 나는 사냥하고, 너는 농사짓고... 호랑이 잡아 가죽 팔아서 꽃놀이도 가고, 물놀이도 가고... 그렇게 살다가 애기도 낳고... 그렇게 살고 싶은 맘이 낸들 없었겠나? 그..
어차피 그들의 혁명이 실패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허무할 거라는 예상은 솔직히 하지 못했습니다. 송태하의 수족같은 부하들이 모두 황철웅의 손에 추풍낙엽처럼 어이없이 쓰러져갈 때에도 설마 이것이 끝은 아니겠지 했었습니다. 송태하와 더불어 혁명군의 수장격이었던 조선비가 변절했을 때에도, 그 변절의 결과로 숨어있던 동지들이 모조리 잡혀들어갔을 때에도, 심지어 끝까지 남아서 활약하던 한섬이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에도 설마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횃불인 송태하의 존재가 남아있는 한,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의 이미지와는 달리 더 이상 송태하가 완벽한 인간상이 아님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나, 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 있었..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고...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일은 드디어 포문을 열며 실행되고... 이렇게 '추노' 역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궁극적으로 중점을 두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서로를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의 더없이 인간적인 화해와 사랑인지,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추노'는 두 가지를 다 그려내고 있으며, 어느 쪽에 더 비중이 있는지도 시청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최소한 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에 따라 결말이 주는 여운은 많이 달라질 듯 싶습니다. 1. 외유내강한 짝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포스팅의 주제와 직접적 연관은 없음에도, 짝..
다행히도 짝귀의 산채를 향해 엄습해 오던 어두운 그림자는 일단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황철웅이 목표로 삼고 있는 이대길과 송태하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지요. 원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산채는 들이치게 되겠지만, 그 가엾은 사람들이 속 편히 숨 쉬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이틀은 늘어난 셈입니다. 어느 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어버린 언년이와 설화, 그리고 귀여운 원손 아기씨도 그 평화 속에서 며칠은 더 곱게 웃을 수 있겠네요. 1. 두 남자의 이상한 동행 "예전에는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며 되뇌이는 대길이의 쓸쓸한 얼굴을 보니, 그 사내의 바보같은 사랑에 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정말 그와 같은 사..
아저씨, 업복 아저씨,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저씨, 혹시 날 좋아하나요?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는 한 번도 잠잘 때 꿈을 꾸어 본 적이 없는데, 참 이상하죠. 난 요즘 잠만 자면 꿈을 꾸어요. 그리고 그 꿈에는 항상 아저씨가 나와요. 그 못생긴 얼굴을 해갖고는 날 보며 헤벌쭉 웃는, 그런 아저씨가 요즘 매일 내 꿈에 나온단 말이에요. 아저씨는 나에게, 좋은 세상이 오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지만, 나에겐 꿈이 없었지요. 눈 뜨면 오늘도 죽지 않고 어떻게든 견뎌 나가야 할 또 하루의 삶이 펼쳐져 있었고, 밤이 되면 이제 쉴 수 있다는 안도감에 행복해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곤 했는걸요.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겠어요? 이런 나에게 무슨 꿈이 있었겠어요? 그래서 난 대답했지요. "내..
드라마 '추노'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7회는 마치 공들여 만든 한 편의 영화와도 같더군요. 감칠맛 나는 대사와 적절히 어우러지는 가무(歌舞), 게다가 옛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도록 중간중간에 삽입된 고어(古語)들... 그 섬세한 구성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더불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황홀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송태하(오지호)는 스승이 살해당한 참혹한 현장에서 원수 황철웅(이종혁)과 맞서 싸우다가, 위기에 처한 혜원(이다해)이 부는 호각소리를 듣고 그녀를 구하러 달려갑니다. 소현세자의 유명을 받들고 한시바삐 원손을 구하러 가는 충신인 그가, 어찌 보면 참 한가하다 싶기도 하군요. 게다가 혜원을 잡으러 온 자들은 그녀의 오라버니가 파견한 집안의 호위무사 백호(데니안) 일행이니 실상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