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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아무래도 천성일 작가는 '여자'를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여자가 매력적인 여자인지를 모르는 듯해요. 올해 초에 대박을 기록했던 드라마 '추노'에서도 장혁을 비롯한 남성 캐릭터들은 모두 인기를 얻었으나, 여주인공 이다해는 '민폐언년'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악평에 시달렸지요. 아무리 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그녀였지만, 대본상 구제불능일 정도로 매력없게 그려지고 있는 언년이를 살려내지는 못했어요. 그에 비해 '도망자 Plan.B'의 여주인공 '진이'는 초반에 좀 다른 면모를 보이기에, 오랜만에 드라마로 컴백한 이나영을 위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작가의 특이한 여성관은 '진이'를 끝까지 매력적인 여주인공으로 유지시키는 데 실패했군요. 차라리 이다해의 '언년이'는 ..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에서는 몇 가지의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지난번의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밝고 유쾌한 터치의 드라마보다는 인간의 근본적 슬픔을 다룬 드라마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지요. (슬픈 드라마가 연이어 대박을 치는 이유) 그리고 저는 '신데렐라 언니' 7회에서 또 한 명의 성자를 발견했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거든요. '신언니'의 성자는 마지막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 이전에 많은 사랑을 받은 성자들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선덕여왕'의 덕만 (이요원) 역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임금이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진 모습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타인들을 위해 선덕(善德)을 베풀다가 자기의 삶은 모두 ..
브라운관에 모습을 비치며 우리에게 웃음과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연예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평범한 시청자들은 그들을 보며 일상의 피로를 잊고 괴로움을 달랩니다. 그런데 제게 있어 이런 경험은 처음이군요. 한 사람의 연예인이 토크쇼에 나와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아진 적은 없었습니다. 드라마 '추노'가 방영되기 시작할 무렵, 여주인공 이다해가 신동엽의 '달콤한 밤'에 출연했었지요. '이상형 월드컵'을 진행하면서 그녀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저는 장혁이라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으로 밤을 샐 수도 있어요. 그렇게 좋은 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에요"... 이제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진솔한 모습을 드러낸 장혁을 보니, 저 역시 그녀의..
어이, 노비양반, 망설일 것 없어.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가. 이 모든 일은 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미안하다는 쓸데없는 생각 따윈 하지도 말고, 자네는 그냥 잘 살면 되는 거야. 노비양반, 처음엔 나도 몰랐어. 내가 왜 그렇게 언년이를 찾아다녔는지를 말야. 하지만 그애 얼굴을 다시 보는 순간 알겠더라구. 눈에 안 보이니까 더 걱정되고, 하루하루 걱정이 쌓여 가면서 내가 미친놈이 되었던 거야. 하지만 노비양반,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돼. 단지 걱정이 되어서 그런 거였어. 그것 뿐이야. 그애 오라비도 죽어가면서 나에게 당부하더라구. 우리 언년이 평안히 살게 해달라고 말이야. 이제 내가 자네한테 하는 말, 오라비의 당부라 생각하고 잘 들어. 난 차마 언년이한테 말할 수가 없었어. 너의 유일한 핏줄인 오..
어차피 그들의 혁명이 실패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허무할 거라는 예상은 솔직히 하지 못했습니다. 송태하의 수족같은 부하들이 모두 황철웅의 손에 추풍낙엽처럼 어이없이 쓰러져갈 때에도 설마 이것이 끝은 아니겠지 했었습니다. 송태하와 더불어 혁명군의 수장격이었던 조선비가 변절했을 때에도, 그 변절의 결과로 숨어있던 동지들이 모조리 잡혀들어갔을 때에도, 심지어 끝까지 남아서 활약하던 한섬이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에도 설마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횃불인 송태하의 존재가 남아있는 한,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의 이미지와는 달리 더 이상 송태하가 완벽한 인간상이 아님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나, 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 있었..
대길이와 언년이가 아직 다시 만나지 못했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대길이가 그토록 언년이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했으니까요. 가끔은 분노 같기도 하고, 얼핏 증오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 같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눈에 띄지도 않고 생사조차 불분명한 사람에게 그토록 자기 인생을 올인하며 집착하게 만든 것이 무엇일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재회하고 나서야 대길이의 인생을 중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겉으로는 분노와 증오를 드러냈지만, 차마 숨길 수 없던 그 눈빛의 애절함...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사랑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 정도로 절대적인 줄은 몰랐기에..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고...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일은 드디어 포문을 열며 실행되고... 이렇게 '추노' 역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궁극적으로 중점을 두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서로를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의 더없이 인간적인 화해와 사랑인지,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추노'는 두 가지를 다 그려내고 있으며, 어느 쪽에 더 비중이 있는지도 시청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최소한 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에 따라 결말이 주는 여운은 많이 달라질 듯 싶습니다. 1. 외유내강한 짝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포스팅의 주제와 직접적 연관은 없음에도, 짝..
다행히도 짝귀의 산채를 향해 엄습해 오던 어두운 그림자는 일단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황철웅이 목표로 삼고 있는 이대길과 송태하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지요. 원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산채는 들이치게 되겠지만, 그 가엾은 사람들이 속 편히 숨 쉬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이틀은 늘어난 셈입니다. 어느 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어버린 언년이와 설화, 그리고 귀여운 원손 아기씨도 그 평화 속에서 며칠은 더 곱게 웃을 수 있겠네요. 1. 두 남자의 이상한 동행 "예전에는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며 되뇌이는 대길이의 쓸쓸한 얼굴을 보니, 그 사내의 바보같은 사랑에 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정말 그와 같은 사..
어쩌면 조선비의 변절은 벌써부터 명백히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의 속내가 개인적 탐욕에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송태하와 의견충돌로 갈등을 빚으면서,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던 조선비의 야욕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송태하와 조선비는 둘 다 뿌리깊은 양반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지만, 그 방향은 여실히 달랐습니다. 송태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대의명분이었지요. 언년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빛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송태하의 삶에 있어 가장 큰 목적은, 죽은 소현세자에 대한 충성으로 그가 남긴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반란을 일으키기보다는 현재의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뜻을 전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고자 했..
언년아, 어떠하냐? 네 눈에 비친 내 몰골이 어떠하냐? 네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그 옛날 풍채 고운 도령은 온데간데 없이, 반은 짐승이요 반은 사람인 괴물로 변해버린 내 몰골이 어떠하냐? 너는 내게 물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끔이라도 네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느냐고... 내 어찌 잊겠느냐? 네 오라비에게 칼을 맞고 불길 속에 쓰러지는 나를 뒤로 한 채 멀어져가던 네 모습은 지금까지 나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었다. 언년아, 너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였더냐? 네 오라비 큰놈이보다도 나는 너를 더 미워하였다. 잡아끄는 오라비의 힘을 뿌리칠 수 없었던, 연약한 너를 더 미워하였다. 언제나 감싸주고 싶던 너의 가녀린 어깨가, 언제나 꽁꽁 얼어 있던 너의 작고 차가운 손이 그지없이 미웠다. 나를 보며 아스라히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