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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손혁에게 보내는 윤혜인의 편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아테나 전쟁의 여신

'아테나' 손혁에게 보내는 윤혜인의 편지

빛무리~ 2011. 2. 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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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당신을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 어떤 말로도 당신을 부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진이는 이제 더 이상 아홉살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남들처럼 나에게도 평범한 삶이 주어졌다면, 지금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나를 닮은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을 만나면서부터 나에게 주어진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나는 아홉살 나이에 LA 폭동으로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기 얼마 전, 부모님과 함께 다녀왔던 뉴질랜드 여행은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부모님과 함께 숨을 거두었겠지요. 그랬다면 이 세상에 대한 나의 짧은 기억은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었을까요? 하지만 나는 화염 속에서 나에게 내밀어 온 당신의 커다란 손을 잡았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나의 운명이었을 뿐입니다.


그 때부터 나에게 당신은 아버지였고, 오빠였고, 친구였고... 나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서 당신을 믿었고, 당신에게 모든 이야기를 했고, 당신의 뜻에 따라 모든 일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심장이었던 것처럼, 당신도 나의 심장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우리 인생은 한 순간의 선택으로 완전히 달라지게 되지요. 당신이 처음으로 아테나에 발을 들여놓을 때, 지금과 같은 삶을 상상했었나요? 당신의 푸른 젊음은 아테나에서 스러져갔고, 이제 깊은 어둠의 눈빛을 지닌 중년 사내가 남아 있습니다. 어린 내 손을 잡아서 아테나로 이끌 때,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했었나요? 내 손에 넘쳐 흐르는 핏물은 나의 눈빛마저 붉게 물들였습니다.


이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저 이런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겠지요. 아무 죄책감 없이 언제나 그렇게 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갔겠지요. 이정우는 내가 나의 인생을 산 게 아니라 손혁에게 길들여진 삶을 산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도 역시 아테나에 길들여진 삶을 살아왔고, 습관처럼 내 손을 잡은 채 그 길을 걸어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당신 아닌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죽으려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정우로부터 SNC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물고문을 자청하며 그 사람을 속였는데, 그는 자신의 일과 목숨을 내놓고 나를 구하러 왔습니다. 여인을 향한 남자의 관심이란 욕정의 다른 말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그의 품에 안길 때 나는 알고 있었지요. 이제 그는 나에게서 더욱 헤어날 수 없을 것임을, 그래서 나는 좀 더 안전하게 그를 이용할 수 있을 것임을... 하지만 이제 다시 기억을 떠올리니, 그것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보는 그 눈빛의 따스함이 고마워서, 그저 고마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나는 한 몸이나 다름없었지만, 이정우는 나와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아무 억울함 없이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었지만, 이정우는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이길래 그는 나를 믿고, 사랑하고,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란 게 무엇인지,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처음으로 궁금해졌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이정우라는 한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느끼면서, 내 눈에는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나 사랑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아테나 안에서, 이제껏 나는 당신만 믿었고 당신은 나만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만 심장같은 존재였지요. 그런데 이 곳 NTS의 동료들은 너무 쉽게 서로를 믿고, 아끼고, 의지하며 살아가더군요. 이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했던 삶이, 내게는 그저 신기하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세상에 마음이 열리면서, 내 손에 흐르는 강물같은 피가 보였습니다. 돌아서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제라도 멈추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뿐, 나의 삶과 죽음 따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여전히 그것이 중요하군요. 당신은 나를 데려가기 위해 수십명의 목숨을 담보로 잡았고, 나는 당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쏴, 쏘라고, 어차피 너 때문에 움직이는 심장이니까!" 내가 당신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었을 때, 당신이 말했지요. 그 순간 당신의 심장을 멎게 해야만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면, 나는 방아쇠를 당겼을 것입니다. 당신 눈 속의 어둠이 너무 깊어서 숨이 멎을 것 같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변해버린 내 모습을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요. 나를 버리지도 못한 채, 당신을 외면하고 돌아선 내 모습에 아파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아저씨, 나는 이제야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치명상을 입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나는 아버지를 잃고, 오빠를 잃고, 친구를 잃고, 연인을 잃고, 온 세상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로 변장하여 당신을 구해낼 때, 내 머릿속에 당신의 존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해 왔고... 믿지 않으시겠지만, 지금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을 뿐, 우리의 삶과 사랑도 거짓은 아니었어요. 그 오랜 세월 동안 내 곁에 있어 주었으니 나는 감사할 뿐입니다. 후회도 원망도 없이, 이제 나는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오래 전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당신도 나의 손을 잡아주면 안될까요? 이것이 혜인이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나는 더 늦기 전에 그 어두운 곳에서 당신을 이끌어, 또 다른 이 세상을 보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 손의 핏자국을 지울 수 없어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 내가 함께 갈게요. 어차피 내 손의 핏자국도 지울 수 없으니, 내가 끝까지 당신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니 아저씨, 제발... 내 손을 잡아 주세요.

*******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 감상입니다만, 윤혜인(수애)이 사랑하는 사람은 이정우(정우성)가 아니라 손혁(차승원)인 것 같습니다. 이정우는 윤혜인에게 그저 한없이 고마운 사람이지요. 그 남자 때문에 혜인은 비로소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이제껏 살아온 차가운 세상과 달리 정말 따뜻한 진심이 흐르는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윤혜인의 가슴속에 이정우에 대한 연정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있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그녀의 전부였던 손혁이라는 존재의 무게와는 왠지 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어쨌든 지금까지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을 지켜 본 저의 느낌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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