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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밤마다' 싸이의 한 가지 착각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밤이면 밤마다' 싸이의 한 가지 착각

빛무리~ 2010. 11.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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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중계로 인해 '놀러와'가 결방된 월요일 밤, 그 무주공산에 새로운 예능 '밤이면 밤마다'가 쳐들어왔습니다. 첫방송의 느낌은 나쁘지 않더군요. 매주 2명의 게스트를 초청하여 공격적인 '청문회' 형식으로 일종의 스타 탐구를 하는 포맷인데, 우선 고정패널이라 할 수 있는 청문위원들의 구성이 심상치 않습니다. 탁재훈 팀과 박명수 팀으로 나뉘어진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오랜만에 공중파 예능의 고정을 맡게 된 김제동의 모습이 반가웠고, 빅뱅의 대성과 씨엔블루의 정용화를 토크 중심의 예능에서 보는 것은 아마도 처음인 듯하여 신선했습니다.

첫방송은 상당히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편이었으나, 이런 포맷에는 한 가지의 맹점이 있습니다. 그 날의 게스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방송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공격적 질문들로 스타 탐구를 하는 형식이니 만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스트의 성격도 쉽게 드러날 수 있고, 일반 시청자들이 몰랐던 부분까지 파헤쳐질 가능성도 있거든요. 자칫하면 여기에 출연함으로써 원래의 좋았던 이미지를 왕창 까먹고 돌아가는 연예인이 많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성격을 드러낸다든가, 허세를 부린다든가, 입에 담기 민망한 과거가 밝혀진다든가, 기타 등등의 위험성이 많이 내포되어 있어요. 그런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연예인에게도 마이너스겠지만 프로그램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습니다. 너무 거칠고 불편한 방송으로 느껴질 수가 있지요.


그런데도 첫방송의 느낌이 이렇게 좋았던 이유는 게스트 섭외의 대성공이었습니다. 1회의 게스트는 영화배우 김수로와 가수 싸이였지요. 저는 그 동안 잘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의 많은 면들을, 이 방송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더욱 호감이 가고 매력적인 사람들이더군요. 이 포스트의 제목만 보고 싸이를 비방하는 글이라고 생각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어제 이후로 싸이에게 아주 큰 호감을 갖게 되었거든요.

연예계 마당발 김수로의 인맥에 관한 이야기는 코믹으로 시작해서 훈훈한 감동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김수로가 그렇게까지 통 크고 의리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었네요. 겨우 2년을 함께 일한 매니저가 결혼하는데 수천만원에 달하는 결혼 비용 전체를 대 주기로 했다는 내용은 약간 충격이었습니다. (연예인치고는 수입이 아주 많은 편도 아닐 듯한데..;;) 그리고 작년에 대성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그의 매니저보다도 더 손빠르게 도와주었다고 하더군요. 그의 넓은 인맥은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편 싸이에게 쏟아진 질문은 주로 연애 관련 상담과 군대 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전무후무하게 2개의 군번을 지닌 남자, 싸이의 군대 관련 에피소드는 요즘 하도 여러 군데에서 우려먹는 이야기이니 언급을 생략하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연애 기술에 관한 싸이의 달변이었지요. 그는 어려서부터 이성에 관심이 많았으나 얼굴, 공부, 운동, 싸움 등 잘 하는 것이 없었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인기를 얻고 싶어서 죽어라 연마한 것이 화술(話術)이었다더군요. 화술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독파하고, 틈만 나면 거울을 보며 연습하고, 때로는 나무에게 말을 걸면서까지 익혔다는 그 화술이 현재의 달변가를 만들어낸 모양입니다.

저는 한동안 속으로 생각했지요. "두 게스트가 확연히 다른 빛깔을 지니고 있구나. 김수로는 훈훈한 감동으로 다가오는데 반해 싸이는 자극적인 재미로 다가오는군." 그런데 잠시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발언으로 싸이가 감동을 왕창 느끼게 했거든요.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그건 틀린 말입니다. 열 번 찍어서 넘어가는 건 나무입니다. 사람은 열 번 찍으면 상처가 남습니다."


자기 욕심만 생각하고 무리하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할 줄 아는 남자... 싸이를 바라보는 제 시각은 그 순간 확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카사노바인지 돈쥬앙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하여튼 그 전설의 바람둥이는 평생 수많은 여자를 만나고 헤어졌으나, 그 많은 연인들은 헤어진 후에도 그에 대해 고마운 기억만을 갖고 있을 뿐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여자의 심리를 깊이 꿰뚫어 보고, 상처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그 남자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헤어지고 나면 사랑했던 기억마저 끔찍할 정도로 상처가 남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헤어지면서도 상처받지 않도록 했다니 정말 대단하지요. 그런데 싸이의 발언에서는 그와 비슷한 포스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태어난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쌍둥이 딸과, 출산 후 몸도 회복되지 않은 아내를 남겨둔 채 다시 입대해야 했던, 그 미안하고도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평생 그들에게 갚으며 살겠다고 말하는 진솔한 태도는 감동을 배가시켰지요. 평생 익혀 온 화술의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밤이면 밤마다' 첫방송에서 보여 준 싸이의 모습은 호감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싸이의 발언 중에서 저는 한 가지의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만든 노래 중 약 40% 가량의 곡이 음란성 등의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한 항변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악역은 연기로 인정하면서, 왜 음악에 대해서는 노래와 가수를 동일시하느냐? 나는 노래가사를 쓸 때 '화자'로서 말하는 것뿐이지 그게 나 자신은 아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만이 아닌 다양한 세상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라고 싸이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악역'과 기타 장르 예술의 '화자(話者)'를 같은 개념으로 설명한 것은 맞지 않습니다. 악역은 어디까지나 악역일 뿐, 주제를 전달하는 '화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화자'는 보통 주인공이며, 주인공이 악역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악역은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으며, 그 악역과 대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작품의 선한 주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요즘 매력적인 악역이 뜨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악역이 주제를 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노래'는 기본 성격이 아주 다른 장르의 예술입니다. 노래와 비슷한 장르를 찾아 본다면 '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시'에는 따로 '악역'이 없습니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이 말하는 내용은 곧바로 그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방송불가 판정을 받을 정도로 음란한 것이라면, 사회적으로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는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싸이는 그 노래의 주체를 주인공이 아니라 화자라고 객관화시켰지만, 실제적으로 듣는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솔직히 문제가 된 그 노래들을 직접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설마 노래 가사가 "#%$^%^& ... 이건 나빠... #$^%&$%& ...그 사람은 이렇게 살았지만...  #^$%^%& ... 넌 이렇게 살면 안 돼..." 이런 식은 아닐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웃기게 만들지 않고서는 듣는 사람이 노래의 주체를 '화자'라고 인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듣는 이에게 노래의 주체는 언제나 '주인공'일 수밖에 없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노래의 '주제'가 됩니다.

싸이가 직접 본인 입으로 '악역'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 그 자신도 자기 노래의 내용이 별로 건전하거나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런 점에서 자신이 있었다면 굳이 악역이란 표현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기는 화자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렇다면 저는 그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악역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면 노래 가사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고 말입니다. 노래 가사에 악역의 이야기를 담으면 그 노래의 주인공이 악역이 되고 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회에 악한 메시지를 던져 주게 됩니다. 이것은 예술의 장르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싸이는 지탄을 받더라도 앞으로 더욱 다양한 곡을 만들고 싶다 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듯해서 염려스럽습니다. 만약 그가 자기의 예술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고집을 부리고 싶어서 저렇게 현란한 화술로 포장한 것이라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 좋은 예술을 하고 싶다면,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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