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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최달포(이종석)에게 공감할 수 없는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피노키오

'피노키오' 최달포(이종석)에게 공감할 수 없는 이유

빛무리~ 2014. 12. 11.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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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같은 명작이 연달아 나오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작품성과 대중적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전작 '너목들'의 기세를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고 애쓴 흔적이 많이 엿보이지만, 안타깝게도 '피노키오'는 전작에 비해 많이 부족한 퀄리티로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 나는 그 일차적 원인을 '진실과 정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나 역시 진실과 정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 없을 만큼 절대적인 덕목이라 여겨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실과 정의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이 드라마를 통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일단 '거짓말을 못하는' (정확히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병 '피노키오 증후군'이 예상했던 것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처음 생각할 때는 거짓 투성이인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비춰주는 순백의 고귀한 존재쯤으로 느껴질 것 같았는데, 어쩐지 보면 볼수록 진짜 장애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며, 사회 생활에 엄청난 지장을 주는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최인하(박신혜)의 모습도 그저 안스럽게만 느껴질 뿐이다. '너목들'의 박수하(이종석)가 지녔던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주인공을 별처럼 빛나게 해주었으나, 거짓말을 못하는 증세는 여주인공을 특정한 장애의 틀에 가두어버린 느낌이다. 


박혜련 작가는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병을 통해 '진실'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거짓말을 못하는 장애'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 목적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거짓말은 단지 수단으로써 활용될 뿐 거짓말 그 자체에는 선악의 분별이 없음을 입증한 셈이다. 더불어 최달포(이종석)와 최인하의 애틋한 사랑이 제법 절절하게 그려지고 있으나 '너목들'의 남녀 주인공처럼 운명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운명은 커녕 오히려 케케묵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악연으로 얽혀있어 염증을 유발한다. (원수 집안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제발 그만 좀 보고 싶다.) 



'피노키오'에서는 일관성 있게 기자라는 직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기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언론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함께 역설한다. 이 시대 언론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따라서 최대한 진실만을 보도해야 할 언론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거듭 외친다. 백 번 천 번 옳은 소리인데, 왜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질까? 언론인은 의료인, 법조인과 더불어 그 직업의 특성상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의무가 있다. 다른 직업에서의 실수와 달리 그들의 실수는 사람의 목숨과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현실적으로 실수는 발생할 수밖에 없고, 유일한 방법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최달포의 가정이 풍비박산되고 그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 이유는 정말 무책임한 언론 때문이었을까? 이것은 드라마 '피노키오'를 시청할 때 대전제로 깔아두고 봐야 하는 부분인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30% 정도밖에 동의할 수 없으니 여기서부터 괴리가 발생한다. 소방관 기호상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간 것은 폐기물 공장 직원 문덕수의 거짓말이었다. 공장 안에 사람이 없다고 말했는데도 소방대장이 무리한 진압을 명령했다는 그 악한 거짓말이 모든 비극의 씨앗이었다. 거기에 외모가 비슷한 사람을 기호상으로 착각해서 그를 보았노라 증언한 피노키오의 실수가 덧붙여졌다.



 

언론은 그 상황에서 드러난 사실을 보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송차옥(진경)을 비롯한 기자들의 취재 태도가 지나치게 과장됨으로써 보는 사람의 울화를 돋우기는 했지만, 최대한 건조한 시선으로 본다면 그 당시 언론의 보도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뿐 치명적 잘못이었다고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공교롭게도 기호상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고 경찰조차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언론이라고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었을까? 13년 후에야 기호상의 시신이 발견됨으로써 진실이 드러나고 언론의 오보도 밝혀지게 되었지만, 그 당시 언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기자들이 직접 불타버린 폐공장과 주변의 야산을 샅샅이 뒤져 기호상의 시신을 찾아내야 했을까? 아니면 "기호상의 실종과 함께 진실은 숨겨지고 말았습니다"라는 식으로 애매모호한 내용의 보도를 해야만 했던 것일까? 


훨씬 무거운 책임감으로 신중하게 진실만을 보도했어야 한다고 최달포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외쳤지만, (물론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드라마 속에서 만들어진 상황만을 볼 때 당시 언론은 나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된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실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뒤늦게나마 오보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죄한다면, 최달포와 기재명(윤균상)이 더 이상 언론에 악감정을 가질 이유는 없다. 형제의 진짜 원수는 언론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악한 목적의 거짓말을 내뱉은 문덕수다. 이것이 팩트인데, 드라마는 자꾸만 모든 것을 언론의 책임으로 몰고가니 당최 몰입이 되질 않는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13년만에 형을 만났으면서도 주춤거리며 그 앞에 나서지 못하는 최달포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들이 재회하기 전에 기재명이 문덕수와 그 일당을 살해함으로써 비극은 이미 완성되었다. 13년 전의 악한 거짓말로 뿌려진 비극의 씨앗은 결국 누구보다도 착하고 영리하고 건실한 청년을 살인범으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기재명이 살인하는 장면은 방송되지 않았기에 100%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정황상으로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 최달포가 선뜻 형 앞에 나서서 자신이 기하명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이유 역시 그 부분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못 하겠다. 그 상황에서 '진실'이 그렇게 중요할까? 하늘 아래 일점 혈육인 형과 무려 13년만에 재회했는데, 살인자든 아니든 일단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려야 맞는 거 아닌가? 


게다가 형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부모의 억울한 죽음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복수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기재명을 비난한다 해도 오직 한 사람 최달포는 그럴 수 없다. 만약 기재명이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또는 사이코패스라서 살인을 저지른 거라면 모를까, 최달포는 그 누구보다도 형의 분노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아닌가? 평범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녔다면, 마땅히 형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뜨겁게 포옹한 후 서로 지나 온 시간의 회포를 풀며 솔직한 대화를 나눠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형의 범죄를 확실히 알게 되면 자수를 권유하든 어쩌든 다음 차례의 선택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형은 얼마나 동생을 애타게 그리워했던지, 위기에 처한 중학생을 보는 순간 그 아이가 동생으로 보여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구해냈다. "괜찮니?... 다행이다, 하명아..."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중학생을 끌어안고 되뇌이는 목소리가 얼마나 절절했던가! 하지만 정작 동생은 헤어져 지내는 동안 형제간의 애틋함을 모두 잊은 모양이었다. 형이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마치 괴물을 본 것처럼 두려움에 떨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 것이다. 설상가상 최달포는 부친의 납골당에 찾아가 형을 몰래 인터뷰하며 대화를 녹음하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진실을 밝혀내서 뭐 하게? 특종이라도 터뜨리게? 


차라리 진실 따위 외면하고 우애로써 형을 감싸며 그 범죄마저 덮으려 했다면 최달포의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느껴졌을 것이다. 정의롭지는 못해도 그것이 인간다운 모습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진실과 정의에 집착하며, 형을 감싸기는 커녕 오히려 자기가 나서서 막다른 곳으로 몰아붙이는 최달포의 냉혹한 모습은 실로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심지어 최달포는 형이라는 괴물로부터 자기 여자를 보호해야겠다는 듯, 최인하에게 "저 사람 굉장히 위험하니까 조심해!" 라고 당부까지 했다. 나는 도저히 최달포의 이러한 캐릭터를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으니 '피노키오'를 향한 기대도 이쯤에서 접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시 2014년은 드라마 폭망의 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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