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연애의 발견' 한여름이 남하진과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연애의 발견

'연애의 발견' 한여름이 남하진과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

빛무리~ 2014. 10. 7. 04:30
반응형


최근 '연애의 발견' 뉴스를 보다가 누군가 써 놓은 댓글을 발견했다. 하진(夏盡)은 여름이 다했다는 뜻이고 태하(太夏)는 큰 여름, 즉 영원한 여름이라는 뜻이니 결국 '한여름'은 '남하진'을 떠나 '강태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정현정 작가는 그런 의미를 담고 캐릭터의 이름을 지었던 것일까? 꽤나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는데 종영을 하루 앞둔 15회에서 끝내 남하진(성준)과 결별하는 한여름(정유미)의 모습을 보니 왠지 더욱 확신이 생긴다. 사실 나는 드라마가 시작된 초반부터 한여름이 강태하(에릭)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유는 같은 여자로서 한여름이 행복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깜찍한 여우짓이 얄밉긴 했지만 그래도 여자가 불행해지는 건 싫었다. 물론 현재 연인인 남하진도 매우 좋은 사람이어서, 만약 강태하와 재회하지 않았다면 남하진의 곁에 남는 것도 불행한 선택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강태하와 한여름은 운명적으로 재회했고, 그로 인해 남하진과의 관계에는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가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봉합하려 애써봤자 결론은 파탄뿐이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훌륭한 인품과 멋진 외모, 좋은 직업과 풍요로운 집안까지 모두 갖춘 완벽한 남하진을 내가 처음부터 탐탁치 않게 여겼던 이유는 '마음 약한' 성격 때문이었다. 사실 '착한 것'과 '마음 약한 것'은 아주 다른 특징인데 의외로 헛갈리는 사람이 많다. 마음 약한 사람의 대표적 특징은 타인에게 상처주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거절해야 할 순간에도 거절을 못하고, 자기 의사 표현을 명확히 해야 할 순간에도 그렇지 못해서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마음 약한 사람의 그런 특징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더욱 큰 상처를 입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독해질 필요는 없지만, 인생에서 때로는 반드시 단호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단호해야 할 때 단호하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빚보증을 서 준다든가 하는 경우가 해당되겠다. '연애의 발견'에서 비춰진 남하진 캐릭터는 바로 그 '마음 약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애인 한여름에게 수없이 상처받으면서도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모처럼 독한 맘 먹었다가도 그녀의 눈물 한 방울에 무너지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이해하려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남하진의 그 참을성과 배려심이 무한 감동으로 다가온 순간도 있었지만, 차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여름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라기보다는 그저 '마음 약한 남자'의 특성에서 기인한 행동들이었다. 물론 한여름을 사랑한 것도 진심이겠지만, 그 사랑에서 비롯된 특별한 행동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남하진의 그런 태도는 한여름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와 안아림(윤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여자친구 한여름을 두고 맞선 볼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요구를 끝내 거절하지 못해서 맞선 자리에 나갔다가 연인에게 발각되는 남하진의 모습은 참으로 답답해 보였다.



 

친자식이 아니라서 어머니의 눈치를 많이 보나 싶기도 했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가 없어서 거절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한여름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고하다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결심까지 했을 정도라면, 일시적으로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단호히 밝히고 부당한 요구는 거절했어야 마땅하다.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찾아헤매던 고아원 동생 안아림을 다시 만났을 때도 남하진은 선뜻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관계를 질질 끌었다. 그 역시 마음이 약한 탓이었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상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므로 용기가 없고, 용기가 없으니 본의 아니게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가는 혹시 상처를 주게 될까봐, 그리고 자신도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남하진은 안아림에게도 솔직하지 못했고, 한여름에게도 솔직하지 못했고, 어머니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결국은 다 들통나고 말았는데, 좀 더 일찍 솔직해졌더라면... 특히 한여름이 안아림과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연인 관계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남하진의 모습에서는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입양아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겠다고 어머니와 약속을 했다지만, 그 작은 약속의 무게가 연인 사이의 근본적 믿음보다 중하다는 말인가? 



한여름이 남하진과 맺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서 또 한 가지 발견된다. 첫째는 '마음 약한 남자' 곁에 있다 보면 여자가 꾸준히 맘고생을 하게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한여름 역시 '솔직하지 못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경우는 남하진과 달리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던 것인데, 번번이 남하진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숨기는데 급급한 그녀의 모습은 참 안 예뻤다. 특별히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못되고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만약 남하진이 내 동생이라면 일찌감치 그 여우같은 계집애와의 이별을 권했을 것도 같다. 


어쨌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솔직하지 못한' 두 남녀가 만나서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나 이런저런 이유들로 상대방을 속일 것이고, 숨겼던 사실들이 주머니 안의 송곳처럼 튀어나올 때면 서로가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애당초 솔직히 밝혔더라면 별 것 아니었을 일도 거짓말하며 감추다가 들키게 되면 수백 수천 배로 커지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여름의 배필로는 강태하가 최적격이다. 배려심 부족과 무뚝뚝한 성격으로 한여름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졌지만, 언제나 강태하는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그녀를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동안 너를 많이 생각했다고, 이렇게 다시 만나서 기쁘다고, 어느 새 너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고, 결코 쉽지 않았을 고백들까지도 강태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헤어져 있는 동안 큰 깨달음을 얻었기에 과거처럼 무뚝뚝하거나 배려심이 없지도 않다. 오히려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뜻을 짐작하며 한 발 앞서서 배려해주는 센스까지 선보인다. 남하진과는 달리 독한 면도 있고 과감한 결단력도 있어서, 한여름의 여우짓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지 않고 그녀를 적당히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상태에서 이 두 남녀는 그야말로 환상의 커플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복잡다단하고 스펙터클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선지, 나는 그들의 숱한 말다툼과 흔한 눈물과 지루한 밀당과 골치아픈 신경전에 큰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내 성격대로 지독히 단순 솔직한 연애를 했고, 나와 많이 닮았지만 훨씬 품이 넓은 짝꿍을 만나 정착했다. 결혼 전 남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별로 정치적인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당신보다는 내가 좀 더 정치적이지요. 하지만 나는 평생 당신을 상대로 정치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겁니다." 결혼한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가끔씩 그 말을 떠올리며 미소짓곤 한다. 정치든 연애든 복잡한 술수가 필요한 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는데, 그런 거 안 하고 살아도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행복하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