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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주의보' 차도남 공현석, 미친 사랑을 배우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못난이 주의보

'못난이 주의보' 차도남 공현석, 미친 사랑을 배우다

빛무리~ 2013. 9. 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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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영씨는... 저기요, 라는 사람을 닮았습니다..." 공현석(최태준)의 말을 언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기요'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던 공상만(안내상)은 공현석과 공진주(강별)의 새아버지였고 공준수(임주환)의 친아버지였다. '저기요'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못난이 주의보'라는 드라마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 다시 떠올랐다. 아역들이 열연하던 그 무렵의 '못난이 주의보'는 이 시대에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명품 힐링 드라마로서 내 마음에 뿌듯한 만족감을 선사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10년의 복역을 마치고 세상에 나온 공준수가 운명처럼 나도희(강소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죽어도 이룰 수 없을 듯한 사랑에 절망하며 아파할 때까지도 감동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도희가 모든 진실을 알고서도 기꺼이 공준수를 감싸안은 후부터, 스토리 전개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지고 오글거리는 농담따먹기가 많아지면서 작품성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몹시 안타까웠지만, 처음부터 120부작의 (도저히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분량..;;) 일일드라마로 편성된 것을 원망할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분량 채우기에 급급한 작가는 120부작의 중간 부분을 온통 사랑 이야기로 채우려는 듯, 온갖 인물들의 갖가지 러브라인이 난무했다. 듣기 좋은 꽃타령도 한두번이라고, 사랑 이야기가 반복되면 얼마나 지겨울 수 있는가를 새삼 깨우치게 될 정도였다. 그 중에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공현석과 신주영(신소율)의 러브라인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주영의 독특한 마마걸 캐릭터는 볼 때마다 짜증스러웠고, 더없이 매력적인 공현석이라는 남자의 캐릭터가 그런 여자 때문에 흔들린다는 게 더 기분 나빴다. 그런데 드디어 공현석이 입을 열었다. "신주영씨는... 저기요, 라는 사람을 닮았습니다..." 자기가 신주영이란 여자에게 흔들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바로 '저기요'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뭐가 닮았다는 걸까? 신주영은 공상만처럼 가난하지도 않고 사기꾼도 아니고, 성격도 별로 비슷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하지만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이제까지는 한없이 타인에게 퍼주기만 하며 살아가는 공준수의 캐릭터가 이 드라마를 대표하는 '못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온통 못난이 투성이다. 도저히 세상에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어딘가에서 한두명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도 같은 못난이들이 이 작품 속에는 수두룩했던 거다. 태생과 환경이 달라서 삶의 양상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지만, 공상만과 신주영은 둘 다 지독한 '못난이'였다. 특히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지독한 민폐형의 못난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아주 꼭 닮아 있었다. 마치 타인을 돕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공준수가 힐링형의 못난이라면, 민폐와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공상만과 신주영은 짜증형의 못난이라는 점에서 너무 다르지만, 어쨌든 각양각색의 못난이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이름값을 톡톡이 하는 중이다.

 

"왜 엄마는 하필 우리 아버지같은 사람을 사랑했을까?" 새엄마 진선혜(신애라)를 처음 만나던 날부터 지금까지, 공준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이다. 그토록 완벽한 여자가 왜 하필 공상만 같은 남자를 사랑해서 자기 인생은 물론 자식들의 인생까지 고생문으로 처박았는지, 이성적인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공상만이 거듭된 사기 전과로 번쩍이는 별 5개도 모자라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려다가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어린 공준수는 울면서 외쳤다. "사기꾼이고 푼수고 멍청이였어도... 진짜 많이 사랑했다, 아버지!" 그러나 며칠 후 공상만이 새로 저지른 사기사건에 진선혜의 인감을 몰래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공준수의 착한 새엄마는 죽은 아버지의 죗값을 대신 치르느라, 풍족했던 재산과 안정적인 직업을 모두 잃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단칸방으로 내몰려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잘한 게 하나도 없냐?" 열 네 살의 공준수는 기막힌 표정으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원망을 하고 싶어도 아버지는 벌써 죽고 없었다. 설상가상 죽은 사람에게는 속죄의 기회조차 없었다. 공준수는 어떻게든 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만회하고 싶었지만, 공상만이 죽기 전에 남기고 간 죄의 구멍은, 어린 공준수가 메꾸기에는 너무 컸다. 가녀린 몸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식들을 키우느라 애쓰던 엄마는 얼마 못 가 기름이 다한 등잔불처럼 맥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부터 공준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6년 동안이나 온갖 막노동으로 세 명의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하지만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씩씩하고 밝기만 했던 그 얼굴 뒤에 숨겨진 눈물을... 그도 강철이나 무쇠가 아니라 연약한 피와 살로 된 인간이었던 것을... 이제 서른이 넘은 공준수는 나도희에게 고백한다. "어쩌면 아버지를 진짜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현석이와 진주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몰라!"

 

왜 공현석이 자기보고 '저기요'를 닮았다고 했는지, 공상만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신주영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사랑고백이었던 거야.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었어... 맞잖아, 공현석? 넌 엄마가 새아버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깨달았던 거야, 나 때문에... 아니야?" 신주영은 자기가 대책없는 못난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정략결혼을 하려던 것도, 못난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해 줄 남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주영은 어려서부터 월등한 사촌 나도희와 비교당하며 극성스런 엄마의 등쌀에 시달려 왔다. BY그룹 회장의 외손녀로서 남부럽지 않은 환경을 지녔으나, 그녀의 자존감은 벌써 바닥을 친 지 오래였다. 사기전과 6범의 공상만과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도 신주영은 불쾌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맞습니다. 그건 저항할 수 없는 거라고 깨달았죠." 공현석은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 공현석은 형 준수와의 관계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나도희를 좋아했었다. 원래 현석의 이상형은 도희처럼 당당하고 뚜렷한 주관을 지닌 여자였다. 1년쯤 후에는 손을 잡고 3년쯤 후에는 청혼을 하리라... 모처럼 이상형을 만나게 된 현석은 혼자 달콤한 사랑을 꿈꾸었지만, 그녀가 형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깨끗이 마음을 접고 두 사람의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다. 그런 공현석 앞에 나도희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좋아하기는 커녕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특이한 성격의 여자 신주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귀찮고 싫었지만 놀랍게도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흔들리는 자신을 느끼며, 공현석은 믿을 수도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세상 많은 남자들 중에 하필 '저기요' 같은 남자를 사랑했던 엄마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느껴지긴 해..." 공준수에게 털어놓은 그 한 마디는 공현석의 가감없는 진심이었다. 어차피 사랑이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던가? 머리로 계산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면서 그저 잊고 살아갈 뿐...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참 묘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마음이지만, 동시에 진짜 미친 짓이며 진짜 못난 짓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저절로 가슴에 스미며 느껴지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엄마 진선혜가 못난이 공상만을 만나 미친 사랑을 했던 것처럼, 차도남 공현석은 이제 못난이 신주영을 통해 미친 사랑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래, 바로 이거였구나! 더 이상 나는 그들의 사랑이 짜증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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