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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 김윤희의 불치병, 그 최악의 무리수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사랑비

'사랑비' 김윤희의 불치병, 그 최악의 무리수

빛무리~ 2012. 4. 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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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훌쩍 건너 뛴 이후로는 초반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참 좋았습니다. 서준(장근석)-정하나(윤아)의 발랄한 사랑과, 서인하(정진영)-김윤희(이미숙)의 기품있는 사랑이 조화를 이루면서, 드라마 전체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아름다워졌지요. 부디 유치하거나 식상하지 않게 끝까지 설득력 있게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안타깝게도 인하와 윤희가 절절하게 재회한지 고작 1회만에 최악의 무리수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제껏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모든 장르의 멜로에서 신물나도록 써먹었던 소재, 바로 불치병이었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중년커플의 사랑 코드를 없애는 편이 나았습니다. 영화 '클래식'이나 '유리의 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십 년 전에 사랑했던 두 사람 중 한 쪽을 (또는 두 사람 모두를) 이미 죽은 상태로 설정하는 겁니다. '클래식'에서는 남자(조승우)가 벌써 오래 전에 사망한 상태이며, 과거의 연인들은 현재 시점에서 재회하지 않습니다. 홍콩스타 여명이 직접 부른 OST <Try to remember>로 유명한 '유리의 성'에서는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모처럼 재회한 남녀 주인공, 여명과 서기가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만나게 된 여명의 아들과 서기의 딸이 부모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되고, 절묘한 공감을 이루면서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을 예고합니다.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은 처음부터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드라마 '사랑비'의 초반 설정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저는 염려를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양쪽 부모와 자녀들의 사랑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그 상황의 막장스러움과 지저분함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가 늘 궁금하면서도 염려스러웠지요. 그런데 고작 불치병이라니, 어쩌면 이렇게도 실망스러울 수 있을까요? 그 어떤 최악의 설정이라 해도 이보다는 나았을 겁니다. 이제 드라마는 신파와 막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하나가 서준에게 "엄마가 좀 아프시거든요. 그래서 (첫사랑을) 꼭 한 번쯤 만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라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설마 불치병은 아니겠지 했습니다. 예전에 걸렸던 폐결핵처럼, 많이 아프더라도 회복될 가능성은 있는 병이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김윤희가 "엄마가 좀 더 오래 버텨야 할텐데... 시집가는 것도 보고, 네가 만들 정원도 보아야 할텐데..." 라고 딸 하나에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희망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군요.

앞으로 전개될 내용은 훤히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김윤희는 서인하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죽음이 멀지 않았기에 오랫동안 거부할 것이고, 서준과 정하나는 부모들의 관계 때문에 약간 불안해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사랑을 계속 키워나가겠죠. (아이들이 젊은 시절의 부모를 너무 쏙 빼닮았으니, 서로의 관계를 눈치 못 채거나 감출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러다가 김윤희는 결국 모든 사람의 눈물바람 속에 숨을 거두고, 얼핏 보기에 헤어질 이유가 없는 서준과 정하나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겠죠. 이변이 없는 한 이렇게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 봐주어도 서인하와 김윤희의 스토리는 낡은 신파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나지 않는다면 몰라도 기껏 다시 만났으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스토리가 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열정을 차분히 잠재우고 (또는 깊이 감추고) 은발의 노년에 이르도록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도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만에 다시 만났는데 얼마 못 가서 한 사람이 죽는다니... 서인하는 김윤희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평생 고통받으며 살아왔는데, 이제 다시 만난 그녀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다니, 이건 정말 아니군요.

게다가 이렇게 되면 청춘커플의 상큼발랄한 사랑에도 찜찜한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32년만에 재회한 부모가 여전히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불태우다가, 김윤희의 죽음으로 처절하게 이별하는 모습을 두 아이는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겠죠. 그런 다음에 아주 쿨하게 "우린 상관 없어요!" 하면서 딴딴따따~ 결혼식을 올리면 되는 걸까요? 며느리가 된 하나의 모습에서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죽은 윤희를 보게 될 서인하의 감정은 무시해도 되는 걸까요? 이건 차라리 김윤희가 살아서 계속 서인하와 감정을 이어가는 것보다도 훨씬 막장스럽고 지저분한 결과입니다.

 

저는 도대체 오수연 작가가 왜 이렇게 식상하고 신파스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 일본에서는 불치병 코드가 신선하기라도 한 걸까요? (설마..;;) 달리 월화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 없으니 계속 보기는 하겠지만, 너무 실망스런 마음에 모든 기대감이 사라져 버렸네요. 몇 회쯤 후에 "불치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든가, "그 병을 완치시킬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었다" 는 식으로 분위기 전환하면 안 될까요? 물론 황당한 설정이지만, 어차피 망가졌으니까 차라리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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