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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선덕여왕' 30회에서 보여준 고현정의 출중한 연기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연기하던 김명민의 흡입력은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걷잡을 수 없이 빨아들이면서 가치관의 혼란까지 초래했다. 이번에 미실의 눈물을 보며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장준혁의 몸부림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 마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혹자는 미실의 야망을 꿈이라고 말한다. 남들과는 좀 다른 꿈, 남들보다 더 큰 꿈을 가졌을 뿐이라고... 그런데 충분한 능력을 가졌고 평생을 노력해 왔음에도 불공평한 태생적 한계에 부딪혀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그녀는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불공평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미실이 ..
ugly는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극장판의 자막에서 표현한 대로 '불편한'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듯 싶다. 즉 The ugly truth, 어글리트루스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가 되겠다. (이후, 약간의 영화 내용이 들어 있지만, 후반부의 중요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시사회 리뷰는 처음 써보는데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개방적인 사회 미국에서, 노처녀가 될 때까지 살아온 전문직 여성 애비가, 더구나 지금까지 연애를 못해 본 것도 아닌 듯한데 아직도 남자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 등, 그렇게까지 순진한 허당 캐릭터로 그려진 것은 상당히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하여튼 방송국 PD인 애비는 처참한 시청률로 인해 목조임을 당하다가 급기야 무척이나 맘에 안 드는 ..
몇 년 전에 김창렬이 출연한 '만원의 행복'을 보았었다. 그저 노래를 썩 잘 부르는 악동 이미지의 가수라고만 생각했던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나는 적잖이 감동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굉장히 외로운 삶을 견디어 온 사람 같았고,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짜내어 줄 수 있을 만큼 절절히 사랑하는 것 같았다. 방송에서 그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처갓집을 방문하는 내용이 나왔었는데, 친아들도 저런 아들은 없겠다 싶을 정도로 부모님께 살갑게 구는 것을 보고는 저절로 살짝 눈물이 맺혔었다. 물론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성격이 워낙 다정하여 가족들을 잘 챙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을 대하는 김창렬의 모습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
혀짧은 서민 아가씨를 금실은실로 휘감아 놓은 듯한 윤은혜(강혜나)의 모습을 보며 드라마에 몰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가씨를 부탁해'도 이제 5회에 이르렀는데 왜 아직도 저렇게나 어울리지 않는 걸까? 매회 입고 나오는 의상은 매일 남의 옷을 빌려입는 듯 부자연스럽고, 여전히 있는 힘을 다해서 오버하는 연기는 부잣집의 외로운 공주님과는 거리가 삼만리쯤 멀어 보인다. 그에 비해 꽃집 딸네미 문채원(여의주)의 자연스러움은 이미 그녀가 캐릭터와 일치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로 나오시는 관록의 권기선씨와 비교해도 거의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예전에 '배우 윤상현을 주목하는 이유' 라는 포스팅에서 윤상현을 가리켜 '끼를 타고난 연기자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문채원에게도 그 말이 적용되지..
1994년 데뷔작 '눈먼 새의 노래'에서 보여준 안재욱의 존재감은 충격적이었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 좋기도 했거니와 전혀 신인답지 않은 안재욱의 연기력은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 친구의 어머님을 비롯하여 몇몇 어르신들은 진짜 맹인이 드라마에 나온 줄 아셨다고 한다. 나는 '눈먼 새의 노래'를 운 좋게 녹화할 수가 있었는데, 보고 또 보고,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같이 또 보고, 안재욱의 연기를 보며 친구와 함께 감탄했다. "이름이 뭐라고? 안재욱? 오호.. 마음에 드는 걸~" 친구의 말에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동의했다. 그때부터 몇년간 나는 안재욱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특히 일요 아침드라마 '짝'을 보는 재미에 휴일의 기쁨은 배가되곤 했다. 남들이 그 당시 잘 나가던 연예인의 이름을 대며 좋다고..
어찌도 그리 닮았느냐 사소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소인(小人)과 저울대 - 인도의 잠언시 - 류시화의 인도 여행기인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란 책을 좋아합니다. 이른바 문명화된 사회라는 곳에서 살아온 우리의 식견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도인들의 삶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서도 크게 미안해하지 않고 그것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당신과 나의 존재 근원에서부터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 허락도 없이 남의 음식을 집어 먹으며 누군가 소유권을 주장하면, 그것이 어찌 당신의 것이라 단정지을 수 있느냐고 되묻는 뻔뻔한(?) 사람들. 그들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란 없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
노홍철의 연인 장윤정이 결국 '골미다'에서 하차한다. 그러나 이미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이다. 노홍철과의 열애를 공개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차했다면 그래도 조금은 나았을텐데... 나는 골미다를 안 본지가 꽤 오래되었고 이제와서 다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기왕 마음이 떠난 사람들은 김 빠진 맥주를 마시러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어차피 예능도 대본이 있고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부분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골미다처럼 어느 정도의 리얼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더구나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약간은 진실일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시청하게 마련이다. 또한 그런 기대감이 재미를 더한다. 골드미스들이 맞선 전 날 두근거리며 잠 못 이루는 모습, 맞선남의 정보를 들으며 환호하는 ..
"왕이 될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쉽게 하는 거 아니다." 어쩐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비담은 공주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 자유분방한 눈빛 속에 진지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다고 스승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반드시 연민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운명적으로 끌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제와 생각하니 소화에게 안겨 피신해 온 아기 덕만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고사리 손으로 아기의 이마를 쓰다듬던 어린 비담의 모습부터가 그리 범상치는 않았었다. 그리고 마침내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그 순간 일식이 일어나면서, 덕만공주의 엄청난 존재감은 비담의 머리와 가슴을 온통 뒤덮고 말았다. 완전히 반해버린 거다. 타인의 놀라운 능력이나 매력을 보았..
'선덕여왕' 29회에서 첨성대의 건립 문제를 놓고 벌인 덕만과 미실의 불꽃튀는 설전은 섣불리 그 시시비비를 판가름할 수 없을 만큼 심오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미실의 말대로 백성에게 있어 '진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꽤 많은 경우에 진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니까. 그래서 어쩌면 백성들은 덕만이 주겠다는 '희망'보다는 미실이 주겠다는 '환상'을 더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환상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편안하기만 하다면. 그럼에도 덕만공주가 반드시 왕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현 작가의 또 다른 사극 '서동요'를 나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보았었다.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 '장'과 선덕여왕 '덕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왕의 혈육이면서도 왕실의 사정으로 버려져 자..
'2009 멀티 문학상' 수상작인 김이환의 소설 '절망의 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현대인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하고, 언제 어디서 치명적 불행이 닥칠지 몰라 공포에 떨고 있으며,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 하지만 정작 진심을 나눌 친구는 없어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데다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폭발할 듯한 분노의 불길을 가슴 속에 잠재우며 살아간다. '절망의 구'는 그런 현대인의 삭막한 내면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1. 공포(恐怖) 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전반적인 정서는 '공포'이다. 주인공인 '남자' 김정수는 무려 418페이지에 달하는 긴 소설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에 질려 있다. 서울 시내에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2미터 가량 크기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