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고현정 (50)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처음부터 1~2회 연속 방송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을 만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걸고 있는 방송사의 기대감이 큰 모양입니다. 더구나 같은 날 시작되는 '아이리스2'는 무려 17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니만큼 더욱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겠지요. 다행히 첫 방송 후의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이른바 감성멜로 전문 콤비라 불리는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PD의 만남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깔끔한 짜임새와 감각적인 대사를 자랑하는 노희경 작가의 대본은 역시 명불허전이었고 '그들이 사는 세상',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에 이어 그녀와 세번째 호흡을 맞추는 김규태 PD의 영상미 또한 여지없이 빛을 발했습니다. 주연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누구 한 사람 삐걱거림 없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배..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교체된 후, 손영목 작가의 '메이퀸'은 김순옥 작가의 '다섯 손가락'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확연한 승세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순옥 작가 특유의 자극적인 스토리로 무장한 '다섯 손가락'의 약진이 예상되던 초반과는 좀 다른 양상이죠. '메이퀸'은 촘촘한 구성과 개연성 있는 스토리뿐 아니라 각각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많이 등장시켜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반면, '다섯 손가락'은 의외로 단순하고 진부한 선악 대결 구도를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독한 대사들에 너무 치중한 탓인지 캐릭터의 개성조차 말살시키는 패착을 두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선역과 악역이 나뉘어 있지만, 인물들이 모두 어찌나 독하고 무섭고 이기적인지 다 비슷해 보여서 선역과 악역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예요. 독..
제 생각에 요즘 '추적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서회장(박근형)입니다. 주인공 백홍석(손현주)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강동윤(김상중)의 존재감이 강해지긴 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 봐야 서회장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소록소록 전해지는군요. 거의 표정 변화 없이 냉철하고 강인한 남자의 기상을 풍기는 강동윤의 얼굴도, 늘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서회장의 능글맞은 얼굴과 마주치면 삽시간에 그 빛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연륜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서회장의 기막힌 대사들이라니, 요즘은 박근형이 입만 뗐다 하면 저절로 명언 퍼레이드가 되고 마네요. 분명히 악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는 회를 거듭할수록 서회장의 캐릭터에 푹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회장에게도 부인..
"저희 고쇼는 우아하고 품위있는 고품격 토크쇼가 되겠습니다... 근데 이러면... 너무 재미없지 않겠어요,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런칭되는 토크쇼 '고쇼'의 첫방송에서 여배우 고현정은 "대놓고 최선을 다해 천박해질 것"을 선언했습니다. 우아하고 품위있게 하면 재미없으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천박하고 품위없게 만듦으로써 재미를 추구하겠다는 선포였죠. 저는 다른 일을 하느라고 처음부터 시청하지 못했는데, 보는 동안 내내 "어쩌면 토크쇼가 이렇게까지 천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현정이 처음 무대에 나와서 했던 인삿말을 나중에 듣는 순간 모든 의문이 풀리더군요. 천박함을 위한 노력,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데뷔 시절부터 지..
MBC의 새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방송 전부터 여러모로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경성 스캔들'을 집필한 진수완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원작소설이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드라마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망작이 되기 십상인데, 진수완 작가라면 안심해도 될 듯 싶었거든요. '해를 품은 달'은 1년 전쯤 방송되어 인기를 끌었던 '성균관 스캔들'과 마찬가지로 정은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극입니다. 하여 일각에서는 '해품달'을 가리켜 '경복궁 스캔들'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ㅎ저의 개인적 느낌으로는 '성스'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로열패밀리'에서 '공순호' 역할을 맡아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영애가 다시 한 번 강력한 악역으로 돌아왔습니다. ..
보기 드문 수작이었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인물은 주인공들보다 오히려 악역 김미숙이었습니다. 이제껏 주로 선역을 맡아 왔던 김미숙은 차분한 표정과 기품있는 말투로, 눈 한 번 부릅뜨지 않고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소름끼치는 악역 백성희를 훌륭히 소화해냈었지요. 오직 돈을 가로채기 위해 살아있는 남편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고, 아픈 아이를 먼 곳에 내다 버렸으며, 가족들을 뿔뿔이 헤어지게 만들고, 사랑하는 연인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백성희의 악행에는 정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역할에 100% 몰입하여 진짜 백성희가 된 듯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미숙은 '선덕여왕'의 미실 고현정보다 한 발 앞서 '악역 전성시대'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
사택가문의 사람들이 백제의 권력을 움켜쥐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명석한 두뇌를 지녔고, 권력의 속성에 밝으며,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더없이 비정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무왕(최종환) 역시 뛰어난 지략으로 신라와의 수차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지만, 손에 넣은 살생부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하는 무왕의 머릿속은 사택비(오연수)에게 훤히 읽히고 있었습니다. 무왕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리 예측하여 모든 대비를 해 놓는 상황이니 이래서는 속수무책, 이길 방도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택비는 자부심과 기개 면에서도 무왕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사택가문의 사람답게 비정하기 짝이 없는 대좌평 사택적덕(김병기)은 살생부를 무왕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자기 딸 사택비를 희생시키려 ..
첫 느낌이 상당히 좋습니다. '계백'은 '선덕여왕' 이후로 주춤했던 사극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삼국통일 후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한때 찬란했던 백제의 영광을 무참히 짓밟았고, 삼천궁녀의 낭설 등으로 갖가지 흠집내기의 표적이 된 의자왕은 우리나라 역대 망국 군주 중에서도 최악의 임금으로 알려졌지만, 숨겨졌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백제의 역사는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 과연 그 시절의 이야기를 얼마나 흥미롭고 공정하게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퓨전사극 '다모'를 집필하여 드라마 폐인 시대를 이끌었던 정형수 작가와 '주몽', '선덕여왕'을 연출하며 삼국시대 사극의 새 장을 열었던 김근홍 PD가 '계백'에서 손을 잡았습니다. 김근홍 PD의 드라마 배경은 고구려에..
차인표는 최근 '오늘예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을 쓴 이유는 바로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어서였다는군요. 6월 14일, 소설 출간과 관련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차인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 삶의 메뉴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살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살은 결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세상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말했습니다. "(연예인들이) TV 프로그램에서 힘들어서 자살하려고 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공감하지만, 방송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이죠.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살인하려고 했다는 말과 같은 ..
지난 주 신지현(남규리)의 목걸이에 첫번째 눈물 방울이 담겼을 때, 저는 당연히 한강(조현재)의 눈물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바로 직전에 나온 장면이 한강의 방에 놓여있는 화분에서 신지현의 도장이 발견되고, 그것을 본 한강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송이경(이요원)의 몸 속에 갇힌 신지현의 영혼은 하늘을 향해 "살려주세요, 난 살아야 해요, 살고 싶어요" 하고 간절히 외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그녀의 목걸이가 눈부신 빛을 내더니 첫번째 눈물 방울이 담겨졌습니다.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죠. 저는 드라마 리뷰를 쓸 때 추측성 글은 되도록 쓰지 않는 편입니다. 사실 그 쪽에는 별 능력이 없거든요. 저는 그 눈물의 주인이 당연히 한강일 거라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