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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 1회, 넘어서야 할 두 개의 관문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해를 품은 달

'해를 품은 달' 1회, 넘어서야 할 두 개의 관문

빛무리~ 2012. 1. 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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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새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방송 전부터 여러모로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경성 스캔들'을 집필한 진수완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원작소설이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드라마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망작이 되기 십상인데, 진수완 작가라면 안심해도 될 듯 싶었거든요. '해를 품은 달'은 1년 전쯤 방송되어 인기를 끌었던 '성균관 스캔들'과 마찬가지로 정은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극입니다. 하여 일각에서는 '해품달'을 가리켜 '경복궁 스캔들'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ㅎ저의 개인적 느낌으로는 '성스'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로열패밀리'에서 '공순호' 역할을 맡아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영애가 다시 한 번 강력한 악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왕실 외척 세력의 대지주인 대왕대비 윤씨입니다. 그녀는 자기 친정 세력의 득세를 위해 근거 없는 역모를 조작하고 억울한 죽음을 발생시킵니다. 그런 대왕대비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는 조카 윤대형 대감 역할은 중견 탤런트 김응수가 맡았습니다. 왠지 악역 연기가 낯설지 않다 했더니 '추노'에서 최강의 악역이었던 좌의정 이경식을 연기했던 분이네요. 앞으로 대왕대비 윤씨와 영의정 윤대형 일파는 주인공들을 끈덕지게 괴롭히는 숙적이 될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주인공보다 악역을 먼저 소개했네요. 아직은 주인공을 아역들이 소화하고 있는 중이라, 중견 연기자들의 강력한 포스에 비해 존재감이 미약했던 모양입니다. 이제 3명의 주인공을 소개하자면 젊은 임금 이훤(李暄)과 그의 연인 허연우(許煙雨), 그리고 훤의 이복 형으로서 연우를 짝사랑하는 양명군(陽明君)이 있습니다. 아역들의 시대가 지나면 김수현과 한가인, 그리고 정일우가 이어받게 될 것입니다. 정권을 장악하려는 윤씨 일가 세력은 끝없이 왕을 압박해 오고, 주인공들은 그에 맞서 싸우며 비극적 사랑을 하겠군요. 

비록 1회의 특별출연에 불과했지만, 의성군 역의 김명수와 무녀 아리 역의 장영남은 그들의 명품 연기를 더 오래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만큼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는 아직 세자 훤이 왕위를 이어받기 전이므로 그의 부친 성조대왕(안내상) 재위 중인데, 왕은 평소 이복동생 의성군과 우애가 두터웠으나, 후궁의 자식을 미워한 대비 윤씨의 사주로 의성군은 처참히 암살당하고 말았지요. 후에는 역모죄까지 뒤집어쓰게 됩니다. 하지만 의성군은 번뜩이는 칼날 앞에서도 서슬 퍼런 왕족의 위엄을 지켰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형님이신 임금께 대한 신의를 잃지 않더군요. 김명수의 중후하고도 강인한 연기가 참 멋있었습니다.

한편 의성군의 노비였던 '아리'는 마음속으로 의성군을 사모했지만, 영험한 신기가 발견되면서 성수청(星宿廳-왕실의 무속 의례를 주관하던 관청) 소속의 무녀로 바쳐졌지요. 하지만 운명의 그 날, 아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위험이 닥쳤음을 직감하고 홀로 밤길을 달려가, 담 너머에서 의성군이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맙니다. 하지만 곧장 들켜서 윤대형의 자객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는데, 마침 홍문관 대제학 허영재의 아내인 신씨부인이 가마를 타고 지나다가 아리를 구해 줍니다. 마침 신씨부인은 만삭의 몸이었는데, 그 뱃속에 든 아기는 바로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허연우입니다. 아리는 영험한 신기로 그 뱃속의 아기가 범상찮은 운명을 지녔음을 곧 알아차렸으나, 신씨부인의 은혜에 감읍한 나머지 시키지도 않은 약속과 맹세를 합니다. "마님의 아기씨는 제가 죽어서라도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그 말이 유언이었던 것처럼, 아리는 얼마 못 가 의성군 역모의 공범이라는 누명으로 체포되어 죽는군요. 얼마 전 '공주의 남자'에서도 이민우가 거열형(능지처참)을 당하는 장면이 리얼하게 방송되어 충격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한층 더했습니다. 일단 죄수가 치마 입은 여자였고, 이민우 때와 달리 허리 부분에 안전장치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찍었는지 너무 생생하고 끔찍하더군요. 두려웠을 법도 한데, 혼신의 힘을 다한 장영남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그나저나 한을 품고 죽어간 무녀의 혼이 지켜주어야 하는 소녀의 운명이라니... 허연우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파란만장할지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군요.

여러모로 참 기대되는 작품이긴 한데, 첫 방송을 시청한 제 눈에는 이 드라마가 넘어서야 할 두 가지 관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갔을 때, 과연 주인공들의 나이차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현재 이훤 역의 여진구는 97년생, 양명군 역의 이민호는 93년생으로 4살 차이가 나므로 누가 봐도 양명군이 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88년생의 김수현과 87년생의 정일우가 이어받게 되면 형제라기 보다는 거의 친구처럼 보이겠군요. 그야 뭐 대충 넘어간다 치더라도,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82년생 한가인과의 조화입니다.

남자들은 20대 초반의 파릇한 청년들인데, 나이 서른을 넘긴 데다가 결혼 수년차의 유부녀 이미지까지 갖고 있는 한가인이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더구나 극 중에서는 허연우의 나이가 남자들보다 어립니다. 이훤보다 두 살 연하이니 당연히 양명군보다는 더 어리겠지요. 99년생의 김유정이 그 역을 맡고 있는 지금은 상당히 조화로운데, 나중에 한가인이 이어받으면 아무래도 두 청년의 큰누나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양명군의 경우는 아역 이민호와 성인역 정일우의 나이차가 고작 6년에 불과한데, 허연우는 무려 17년 차이가 납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부조화가 예상되는 바,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가 첫번째 관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1회에서 양명군의 존재가 이훤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어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적서의 차별이 엄격한 시기에 후궁의 아들로 태어난 양명은 처음부터 드라마틱한 요소를 더 많이 갖고 있었지요. 게다가 부친 성조대왕은 이복동생 의성군을 외척 세력의 견제로 처참하게 잃었던 기억 때문에, 마음 속으로는 양명군을 아끼면서도 그를 보호하기 위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몹시 냉대했습니다. 장가도 안 든 아들을 미리부터 궁 밖으로 내쫓아 따로 살게 하고, 문안 인사를 올리고 싶어도 허락 없이는 궁궐 출입을 못하도록 금했으니 참으로 혹독한 처사였군요. 하지만 서러운 처지에서도 양명군은 한 마디 원망 없이, 부왕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오라비 허염의 장원급제 방방례가 열리던 날, 허연우는 어머니와 함께 그 의식을 참관하러 입궐했다가, 우연히 은월각의 담을 넘어 탈출하려던 사고뭉치 왕세자 이훤과 마주치게 됩니다. 허연우가 이훤을 도둑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잠시 티격거렸지만, 두 사람은 곧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훤은 궁 밖으로 나가려던 이유가 바로 형님을 만나고 싶어서였다며 자기의 신분만 빼놓고는 모두 솔직한 말을 털어놓습니다.

"내 형님은... 다른 배를 빌려 태어났으나 내게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다. 문과 무, 모두에 출중하나 과거에는 나갈 수 없는 사람이다. 나라의 동량이 될 인재이나, 출사는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부친을 경외하나 부친의 자애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자이나, 많은 이들 앞에 나설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형님이 그리 살 수밖에 없는 것은... 나 때문이다."

이훤의 저 멋진 대사로 인해 가장 돋보인 것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양명군의 존재였습니다. 형을 그리워하는 아우의 마음도 물론 애틋하긴 했지만, 출중한 인품과 능력을 타고났음에도 서출이라는 이유로 모든 앞길이 꽉 막혀 있는 양명군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크게 울린 나머지, 주인공 이훤에게로 향하던 호감마저 그 쪽으로 붙어 버렸던 것입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궁에 갇혀 있는 이훤보다는 자유롭게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양명군에게, 자신의 매력을 드라마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신분을 감추고 부랑아처럼 저잣거리를 헤매다가도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모양을 보면 참지 못했고, 누군가 부친이신 임금을 모욕하는 소리를 들으면 또한 참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정의롭고 효심 지극하고 무예까지 강한 양명군은 정말 탐스럽고 멋진 청년이더군요. 그에 비해 왕세자 이훤은 별다른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초반이고 아역들이 활동하는 시기이므로,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의 1회에서는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원칙이거든요. 사람도 그렇지만 드라마도 첫인상이 무척이나 중요하기에, 우선 순위를 빼앗기면 좀처럼 따라잡기가 어렵습니다. '선덕여왕'의 경우도 초반부터 미실(고현정)의 강세가 두드러진 나머지 후반에 가서도 주인공의 존재감을 압도했지요. 후반에 덕만공주(이요원)가 고군분투 했지만 역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선덕여왕'은 끝내 악역의 드라마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게 꼭 나쁘다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훤과 양명군은 아직까지 의좋은 형제이지만, 어차피 허연우라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연적이 될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양명군이 악역으로 변신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초반부터 양명군이 이훤의 존재감을 압도하게 되면 '해를 품은 달'도 '선덕여왕'의 전철을 밟게 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주객전도가 된다는 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작품성 면에서는 해가 되거든요. 양명군에게 밀리지 않도록 주인공 이훤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 이 드라마가 넘어야 할 두번째 관문입니다. 벌써부터 내일이 기다려지는군요. '뿌리깊은 나무'가 종영한 후, 그 허전함을 달래줄 수 있는 드라마가 이토록 빨리 시작되어서 매우 흐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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