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메이퀸' 다각도에서 조명되는 모성(母性)의 의미 본문

드라마를 보다

'메이퀸' 다각도에서 조명되는 모성(母性)의 의미

빛무리~ 2012. 9. 26. 07:30
반응형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교체된 후, 손영목 작가의 '메이퀸'은 김순옥 작가의 '다섯 손가락'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확연한 승세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순옥 작가 특유의 자극적인 스토리로 무장한 '다섯 손가락'의 약진이 예상되던 초반과는 좀 다른 양상이죠. '메이퀸'은 촘촘한 구성과 개연성 있는 스토리뿐 아니라 각각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많이 등장시켜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반면, '다섯 손가락'은 의외로 단순하고 진부한 선악 대결 구도를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독한 대사들에 너무 치중한 탓인지 캐릭터의 개성조차 말살시키는 패착을 두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선역과 악역이 나뉘어 있지만, 인물들이 모두 어찌나 독하고 무섭고 이기적인지 다 비슷해 보여서 선역과 악역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예요. 독하고 빈틈없는 사람들 가운데 한 두 명이라도 순하고 허술한 사람이 끼어 있어야 숨통이 트이는 법인데 '다섯 손가락'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순한 캐릭터가 없어요.

 

솔직히 '다섯 손가락'을 시청하다 보면, 그 어떤 인물에도 호감을 느끼거나 감정을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의붓어머니 채영랑(채시라)과 의붓동생 유인하(지창욱)의 계략에 걸려 연거푸 고난을 치르는 주인공 유지호(주지훈)를 보면서도 동정심이 들지 않습니다. 싸가지없는 성격만큼이나 잘난 녀석이니까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싶은 거죠..;; 성격이 호감스럽지 않다 보니, 제 아비의 유산을 물려받아 어린 나이에 최고 갑부가 되어있는 환경조차 아니꼽게 느껴집니다. 어떻게든 의붓형에게 빼앗긴 자기 자리를 되찾고 싶어 발버둥치는 유인하가 오히려 안스러울 지경인데, 하지만 그 녀석도 너무 비열하고 치사해서 마음이 끌리진 않고..;;

 

 

악녀 채영랑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송남주(전미선)의 모습도, 원래는 완벽한 선역이어야 마땅할 것이나 너무 과하게 표현된 나머지 독한 싸이코처럼 보여서 별로 응원해주고 싶지가 않습니다. 과거 채영랑에게 배신당했다는 이유로 자기 인생을 걸고 복수를 꿈꾸는 김정욱(전노민)에게도 역시 공감하기는 어렵죠. 적당한 자극은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줌으로써 대박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온통 자극으로만 점철된 드라마는 대중을 질리게 할 뿐입니다. 

 

'메이퀸'에도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드라마의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거든요. 주인공을 비롯한 선역은 물론, 악역들까지도 그 행동의 인과관계를 충분히 표현함으로써 그 인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말입니다. 일례로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은 악역이었지만, 작가는 그녀의 순탄치 않았던 인생과 사랑을 보여주고, 나름의 굳건한 신념으로 나라를 위하려 했던 마음까지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의 마음을 미실에게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었죠. 이처럼 좋은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어느 쪽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선역도 되고 악역도 될 수 있는 다채로운 인물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퀸'은 (현재까지의 진행 과정을 볼 때) 꽤나 괜찮은 드라마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네요.

 

 

'메이퀸' 12회를 보고 나서 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이 드라마의 굵직한 모티브 중 하나가 바로 '모성'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복수극과 멜로를 결합한 내용이 주된 스토리가 되겠지만, 주요 인물들이 모두 '충족되지 않은 모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설정이 우연은 아닐 듯 싶었거든요. 어머니의 따뜻한 정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그것을 누리지 못한 아이들은 평생토록 어머니의 그림자를 찾으며 가슴에 찬바람 한 자락을 품은 채 살아가고, 어린 자식을 잃은 후 넘치는 모정을 주체할 길 없었던 어머니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들에게 그 정을 쏟으며 살아가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못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사람들... '메이퀸'의 주인공들입니다.

 

천해주(한지혜)가 남편의 외도로 태어난 자식인 줄만 알고 구박했던 조달순(금보라)은 막상 남편이 죽고 난 후 그 딸이 든든히 곁을 지켜주자 비로소 마음을 열고 해주의 진짜 엄마가 되었지요. 그녀의 남편 천홍철(안내상)은 착한 사람이긴 했지만 당최 무능하여 처자식을 제대로 건사도 못하고 빚더미에 앉힌 채 무던히 고생시키다 떠났습니다. 그런 주제에(..;;) 밖에서 씨를 뿌려 아이까지 낳아 왔다면, 세상 그 어떤 마누라가 악에 받치지 않을까요? 어린 해주를 모질게 구박하는 조달순의 행동은 너무하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 해주를 살리려다가 남편이 대신 죽었으니 그 기막힌 설움도 극복하기 쉽지는 않았으련만, 이제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되었으니 천해주는 분명 조달순의 딸이죠. 단순 과격하지만 순수한 성품의 조달순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음을 열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은 제 마음에 적잖은 감동으로 와닿았습니다.

 

 

한편 이금희(양미경)는 유일한 친자식인 딸 유진이가 어릴 때 바다에 빠져 죽은 줄만 알고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유진이는 지금도 천해주라는 이름으로 엄연히 살아 있죠. 한살배기 어린아이를 죽이라는 장도현(이덕화)의 명령을 차마 따르지 못할 정도로, 그 당시만 해도 마음이 약했던 박기출(김규철)의 결심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천홍철과 조달순의 딸이 되어버린 유진이... 하지만 비극의 씨앗은 이미 잉태되었습니다. 장도현의 수족으로 오랜 세월을 사는 동안 박기출의 양심은 차츰 무너져갔고, 결국 비밀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 천홍철을 살해할 정도의 악마가 되어버렸거든요. 오직 하나의 구원은 아들 박창희(재희) 뿐이었지만, 아들에 대한 집착은 그를 점점 더 걷잡을 수 없는 악의 수렁에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이금희라는 여자는 가장 다정하고 포근한 어머니상처럼 보이면서도 뭔가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풍깁니다. 조달순처럼 단순하고 순수한 느낌이 아니에요. 남편 윤학수(선우재덕)가 죽은 직후 곧바로 장도현과 재혼한 것부터가 평범한 케이스는 아니죠. 아무리 장도현이 남편을 죽인 범인인 것을 몰랐다고 해도 말입니다. 장도현의 죽은 전처가 남긴 아이들 장일문(윤종화)과 장인화(손은서)를 오버스럽다 싶을 만큼 살뜰하게 챙기는 것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게다가 10회에서 성장한 의붓아들 장일문과의 대화에서는 아주 뜻밖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죠. 아내가 피를 토하며 죽어갈 때 장도현은 그 곁을 지키지 않고 이금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장도현과 이금희는 서로의 배우자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은밀한 불륜 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대놓고 악역인 장도현보다 기품있는 얼굴 뒤에 비밀을 숨긴 이금희의 캐릭터가 저는 훨씬 섬뜩하게 느껴지는군요. 그렇다 보니 딸 유진이의 유품을 태우며 애절하게 울부짖는 모습에서도 저는 일말의 공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위선의 가면을 쓴 악역이라 해도 그 순간의 애끓는 모정만은 진심이었을텐데 말이죠.

 

일각에서는 여주인공 천해주가 장도현의 친딸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장도현은 윤학수를 살해한 후 이금희와 전남편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릴 목적으로 가차없이 그 어린 딸마저 죽이려고 했었죠. 그렇다면 장도현은 유진이가 자기 딸인 줄을 몰랐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금희가 굳이 딸의 생부에게 그 사실을 숨겨야 했던 이유가 타당하게 설정되지 않는다면 억지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나쁜 남자 장도현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 불륜을 저질렀지만, 기본적으로는 선량하고 정의로운 남편 윤학수와의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던 여자의 이중성일까요?

 

 

모성 결핍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자세도 역시 각각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 드라마의 젊은 주인공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같이 '엄마 없는 아이들' 일까요? 12회에서는 남주인공 강산(김재원)이 어려서부터 천해주를 사랑해 온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엄마가 용접공이었던 건 맞아요?" 할아버지 강회장에게 묻는 이 대사 한 마디로 모든 게 분명해졌죠.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온 강산은 단지 죽은 엄마가 용접공이었다는 소리만 어디서 주워듣고 막연히 그리워하다가, 운명처럼 '땜쟁이' 소녀 천해주를 만나게 된 거였습니다. 능숙한 솜씨로 불을 다루며 용접을 하는, 여자로서는 정말 흔치않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강산의 마음속에는 떨칠 수 없는 사랑이 시작되었죠. 멀쩡한 이름 놔두고 '땜쟁이'라 부르는 것을 해주는 질색했지만, 강산으로서는 무엇보다 소중한 사랑의 호칭이었습니다.

 

연인과의 사랑을 통해 결핍된 모성을 충족시키려는 모습은 강산뿐만 아니라 박창희에게도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박기출의 무능함과 비열함에 질린 아내는 일찌감치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도망가 버렸거든요. 평생 아들에게만 광적으로 집착하는 박기출의 행태를 보면, 창희 어머니가 자식을 버린 이유도 대충 짐작이 됩니다. 어떻게든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자식을 데려가면 박기출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올 인간임을 알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단명했던 이유는 극성스런 엄마한테 시달려서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던데, 하여튼 극성스런 아빠한테 시달리며 자라난 박창희는 남달리 우울하고 자조적인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따스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천해주를 만나, 자기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감동하면서 사랑이 시작되었죠. 강산의 경우만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창희의 사랑 역시 모성의 결핍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여주인공 천해주는 어려서부터 친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의붓엄마 조달순의 온갖 구박 속에 자라왔지만, 본인의 굳건한 사랑과 노력으로 끝내 엄마의 사랑을 쟁취!!! 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승리의 역전 드라마라 할 것이며, 세상에 과연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천해주의 캐릭터는 완벽합니다. 선량하면서도 강인하고, 똑똑하고 능력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하지만 지나친 무결점 캐릭터로 인해 현실감과 동질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 하여튼 천해주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열렬하고 적극적인 노력으로 모성의 결핍을 스스로 채워나갔습니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대처 자세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언급할 인물은 장도현의 아들 장일문입니다. 주인공도 아니고 선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악역도 아닌, 정말 찌질하고 못나고 성질도 더러운, 무엇 하나 긍정적으로 봐줄 만한 구석이 없는 녀석이죠. 하지만 이 인물은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마지막으로 미뤄 두었던 것이고요. 10회에서 나왔던 장일문과 이금희의 대화를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이금희는 자기가 계모로 들어왔을 때 일문이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진실을 모르고 있을거라 믿었지만, 놀랍게도 장일문은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네요. "어렸을 때부터 꿈을 많이 꿨어요. 피 토하고 죽은 엄마... 그 옆에 울고 있는 여동생... 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꿈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엄마 죽어갈 때,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 계셨다면서요?" 장일문의 차가운 어조에서는 소리없는 비명과 절규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모성 결핍에 대처하는 장일문의 자세가 옳지는 않았으나, 그 버거운 진실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소년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을까 생각하니 측은지심이 밀려왔습니다. 바늘 끝도 안 들어갈 만큼 엄하고 혹독한 아버지... 다정한 미소 뒤에 비밀을 숨긴 위선적인 계모... 그 두 사람의 배신과 외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생모의 기억...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여동생... 그 와중에 누구와도 속을 터놓을 수 없고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던 소년이 점점 더 비뚤어져 갔던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리 집사라지만 친구의 아버지인 박기출을 하인 부리듯 하는 싸가지며, 여직원 천해주에게 성희롱적인 발언까지 할만큼 장일문의 인격은 심각하게 망가져 버렸지만, 저는 이제 그 인물을 무작정 미워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네요.

 

장일문의 캐릭터는 참 많이 부족하고 못난 인간이지만, 오히려 천해주처럼 완벽한 캐릭터보다는 훨씬 현실적입니다. 솔직히 주변을 돌아보면 천해주같은 인물보다야 장일문같은 인물이 100배는 많지 않을까요? 저마다 자기 안의 상처에 갇혀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살아가는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이 장일문의 캐릭터 속에 녹아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그 인물의 앞날이 별로 밝을 것 같지는 않으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장일문에게도 따스한 사랑이 나타나서 그 지옥같은 모성 결핍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상처받은 옹졸함까지 품을 수 있는 좋은 여자가 나타나서 밝은 곳으로 이끌어 주었으면, 이제부터라도 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