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학교 2013' 해피엔딩을 이끌어낸 정인재의 한 가지 미덕 본문

드라마를 보다

'학교 2013' 해피엔딩을 이끌어낸 정인재의 한 가지 미덕

빛무리~ 2013. 1. 29. 06:30
반응형

 

 

이 시대 학교의 암울한 현실을 제법 실감나게 그려냈던 드라마 '학교 2013'이 해피엔딩의 막을 내렸습니다. 약간의 작위적인 느낌은 있었지만 그쯤은 탓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훈훈하고 아름다운 결말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지만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는 얼마나 큰 삶의 힘이 될 수 있는지, 굳게 닫았던 입을 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이 드라마는 새삼 절실히 깨닫도록 해 주었군요. 그 깨달음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지니, 생각하면 눈물나도록 고마운 작품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라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은 있고, 이기심으로 팽배한 세상 속에도 여전히 사랑과 우정은 존재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또한 가르쳐 주었습니다. 메마른 사막에서도 생명이 살아가는 것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미약해 보여도 그 한 줄기 빛과 한 방울의 물이 우리를 살 수 있게 하는데, 그것은 바로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과 우정입니다. 이 삭막하고 타락한 시대에 순수를 말하다니, 어린애 장난 같고 우스워 보이나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루 먼저 종영한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와 비교해 볼 때 '학교 2013'은 그 주제의식 면에서 완벽한 대칭점에 놓여 있습니다. '청담동 앨리스'는 노력과 희망을 값어치 없는 것으로 추락시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지만, '학교 2013'은 미련하게도 노력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시종일관 역설합니다. '청담동 앨리스'는 허황된 욕망을 '현실적인 사랑' 심지어는 '성숙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미화시켰지만, '학교 2013'에는 허황된 욕망 따위가 발 붙일 자리도 없습니다. 이 귀여운 아이들과 착한 선생님들은 누구보다 어려운 현실 속에 발을 딛고 있었지만, 희망을 향한 끈질긴 노력으로 한 조각의 행복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학교 2013'은 어느 날 갑자기 승리 고등학교에 찾아 온 '변화'의 이야기입니다. 한 번 어둠에 발을 들여놓은 아이들은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죠. 전설의 일짱이며 유급 전학생인 박흥수(김우빈)는 현재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학급 내에서 도난사건이 일어나자 무조건 경찰서에 잡혀가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보호관찰'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느냐면서 대신 분통을 터뜨리는 친구를 향해 박흥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막 살았으니까!"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과거'의 책임을 쉽게 벗어버릴 수는 없음을 단면적으로 나타내는 대사였죠. 

 

 

지금은 말 없고 얌전한 학생으로 보이는 고남순(이종석)에게도 잊지 못할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친구 박흥수의 다리를 다치게 해서 평생의 꿈을 접도록 만들어 버린 거였죠. 아무 이유도 없이 무모한 폭행을 일삼던 일진 시절의 실수였습니다. 그 사건의 충격으로 개과천선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의 무거운 짐은 벗어버릴 수 없었죠. 다행히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박흥수와 다시 만나 우정을 회복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통증 없는 흉터일지언정, 그대로 남아 있지요.

 

2학년 2반의 대표적 문제아였던 오정호(곽정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늘 당구장에서 함께 뒹굴던 무서운 형님들(?)로부터 돈까지 빌렸던 터라 그 올가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고남순의 도움으로 빚을 갚고 발을 뺄 수 있었군요. 보통의 경우는 돈을 갚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시달리게 마련인데, 그 형님들은 좀 순한 편이었나 봅니다..;;ㅎ 그러나 가장 최근까지 일진 노릇을 하며 동급생들을 괴롭히던 오정호인지라, 무슨 사건만 터지면 범인으로 지목되기 일쑤였죠. 아무리 마음을 잡으려 노력해봐도 거듭되는 오해와 시달림 속에서 가뜩이나 상처 많고 오기창창한 그가 버텨내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결국 해내고야 말았네요. 어느 정도 철이 든 상태에서 2학년 2반에 들어온 고남순과 박흥수는 물론, 끝까지 선생님들을 고민시키고 속썩이던 오정호까지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습니다. 비록 오정호는 학교에 남지 못하고 떠났지만, 그가 선택한 길이 반드시 잘못된 거라고 볼 수도 없었거든요. 허구헌날 자기를 때리고 구박하는 아버지건만, 그런 아버지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겠다는 오정호는 알고 보니 착하고 속 깊은 효자였습니다. "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쁘게는 안 살게요!" 입가에 수줍은 미소까지 띠며 이렇게 말할 때는 어찌나 고마운지 저절로 눈물이 맺힐 지경이더군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수의 선량한 학생을 위해서 오정호같은 녀석은 차라리 학교에 못 나오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던 저였는데 말입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변화는 찾아왔는데, 가장 크게 변화된 사람은 강남 제일의 언어영역 강사였던 강세찬(최다니엘)입니다. 초임교사 시절 받았던 충격과 상처로 인해 '수강생'이나 '고객'은 환영해도 '제자'는 절대 사양했던 그가 승리고에 부임한 후부터는 점차로 진짜 '스승'이 되어 가는군요. 이유는 그가 정말 되고 싶었던 선생님, 그가 맨 처음에 꿈꾸었던 그런 선생님을 여기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또 강세찬처럼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별다른 애정 없이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해 보였던 선생님들 중 몇몇 사람에게서도 조금씩 변화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를테면 '엄포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엄대웅 부장선생님(엄효섭)이나, 냉랭한 새엄마처럼 보였던 유난희(오영실) 윤리선생님이 그런 케이스라 할 수 있겠네요.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던가요? 살짝 변한 것 같다가도 잠시 후에 돌아보면 다시 예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한 걸음 나아갔나 싶으면 두 걸음 후퇴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승리고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된 것이죠. 이 모든 변화의 핵심에는 기간제 교사 정인재(장나라)가 있었습니다. 정쌤, 그녀가 있어서 폭풍 속에 비틀거리던 남순이와 흥수와 정호가 평안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고, 냉랭한 무감각 속에 살아가던 강세찬은 버렸던 꿈을 다시 키울 수 있었던 것이죠. 물론 변화된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고 - 이를테면 길은혜처럼 - 오히려 정인재 때문에 좀 불편해진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 예를 들면 교장(박해미)와 교감(이한위) 등 - 절반의 성공이라도 거둘 수 있었던 힘은 정인재 그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한 가지 미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내(忍耐)' 입니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이 있지요. 정인재는 아주 많은 미덕을 갖춘 사람이지만, 그 중에도 인내심이 없었다면 2학년 2반의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끝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물러났다면 이 모든 변화도 불가능했겠지요. 아무리 따뜻한 가슴을 지녔어도, 아무리 아이들을 사랑해도, 참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정의로운 사고(思考)와 두려움 없는 용기도, 참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정인재는 지극한 인내심의 소유자였네요.

 

 

말을 듣지 않고, 버릇없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아이들을 그녀는 모두 기꺼이 참아냈습니다. 동료 교사들의 차가운 외면과 밀어냄까지도 인내로 이겨냈습니다. "무슨 사람이 저렇게 포기를 몰라?!" 강세찬으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던 정인재의 놀라운 '끈기'도 바로 '인내'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덕목이었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현대인들은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인스턴트 음식과 일회용 포장지, 모든 것이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이 스피디한 세상 속에서, 꾸준히 오랜 시간을 참고 인내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일 뿐만 아니라 자칫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는 아예 대놓고 비웃었습니다. "참고 견뎌봐야 소용 없어, 노력은 무의미해, 한푼 두푼 벌어서 언제 올라가란 말야? 난 참을 수 없어, 지름길로 빨리 가려는 나를 욕하지 마, 이것도 사랑이야!" 하고 외치며 살아가는 '청담동 앨리스'들의 눈에는 정인재가 세상에 둘도 없는 미련곰탱이로 보이겠죠. 하지만 저는 그토록 미련한 정인재가 너무 예뻤습니다.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꼭 안아주고도 싶었습니다. 인내가 사라져버린 이 시대에, 그녀는 참으로 고귀한 가치를 일깨워 주었으니까요.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