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천주교 (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나에게 있어 '열혈사제'는 마음 편히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현재 6회까지 (중간 광고로 반토막씩 나누지 않는다면 3회까지) 시청하는 동안 나는 마치 우리 집 내부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처럼 불안했고, 그 안에서 언뜻 언뜻 비치는 왜곡된 모습들에 불편했으며, 어쩌면 우리 집 가장(아버지)처럼 느껴지던 이영준(정동환) 신부님이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더러운 누명까지 쓰게 되었을 때는 뻔히 픽션인 줄을 알면서도 슬픔과 분노에 손이 떨리고 가슴이 싸늘해질 정도였다. 나는 작품 속 이영준 신부님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주던 신부님을 잘 알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가톨릭 신앙 생활을 해 왔어도 그런 분을 만나 뵙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나는 운 좋게도 무려..
나는 지금껏 드라마나 영화에 '천주교'라든가 '성당'이라든가 '신부(사제)' 라든가 '수녀'라는 존재들이 소재로 쓰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중에게 더욱 친근한 종교로 다가가는 소통의 창구라고 볼 수도 있고, 그렇기에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많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매우 못마땅할 때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작품 속에서 뭔가 '왜곡'된 부분이 드러날 때마다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별 것도 아닌 분위기 메이킹을 위해 천주교나 성당 등의 소재를 너무 손쉽고 안일하게 사용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천주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주인공이 갑자기 성당에서 결혼을 한다든가, 뜬금없이 고해소에서 신부님에게 고민상담을 한다든가 이런 장면들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사회 권력자들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현직 검찰 내부의 성추행을 과감한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낸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이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동안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던 수많은 성추행과 성폭력들이, 피해 여성들의 용기에 힘입어 잇달아 세상에 폭로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투(me too) 운동으로 고발당한 가해자들은 모두 막강한 명성과 권력을 지닌 사회 저명인사들이다. 정치, 문화, 연예계는 물론 종교계까지도, 그 어느 곳에도 성역은 없었다. 권력의 이름으로, 절제 못한 욕망을 핑계로, 약자들을 짓밟고 죄책감조차 없이 살아온 범죄자들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서지현 검사에게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요즘 볼만한 드라마가 하도 없어서 그냥 무심히 틀어놓고 있었을 뿐, 초반에는 그닥 흥미롭게 느끼지 못했던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들소')가 최근 엄청나게 재미있어졌다. 갓 스무 살의 여주인공 서봄(고아성)의 캐릭터가 무섭도록 급격히 변화하는데,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그런데 재미있기는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는 것이 함정이다. 쫄깃한 긴장감 속에서 '풍들소' 14회를 숨죽이고 시청한 후, 내 마음속에 남은 것은 씁쓸한 감정과 묘한 두려움이었다. 서봄은 가난한 서민 가정의 둘째딸이며, 청소년 미혼모 출신의 중졸 여성이다. 19세가 되던 해 봄, 불장난같은 첫사랑으로 덜컥 임신을 한 후 고등학교에서는 자퇴를 해 버렸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가던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은 ..
다사다난했던 청마(靑馬)의 해가 가고 청양(靑羊)의 해가 밝았다. 푸른빛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향과 행운의 의미가 있으며, 양이라는 동물은 온순과 정직과 성실의 상징이다. 그런데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속죄양'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은 그 온순함과 순종성에서 비롯된 '희생'과 '속죄'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희생'이란 얼마든지 좋은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단어지만, 작년에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신년벽두부터 또 '희생'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기분이 썩 개운치는 않다. 죄악이 저질러졌다면 누군가 속죄를 하긴 해야 할텐데, 과연 그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스스로 '속죄'와 '희생'을 하게 되려나? 온순하고 연약하고 죄없는 사람들이 또 다시 '속죄양'처럼 억울한 희생을 ..
새로운 문화를 접할 때면 누구나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로 낯선 문화와 급격히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19세기 조선에는 서양을 비롯한 외국 문명들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고,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조선인들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남의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모방하는 일본인들과 달리, 조선인들은 독창적인 만큼 고집이 세고 남의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뜨거운 불과 차디찬 물이 만나는 것처럼, 전통적인 우리 고유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서양의 패러다임이 격렬하게 부딪쳤고, 사람들은 마치 한 몸으로 두 인생을 겪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들을 감내해야만 했다. 드라마 '조선총잡이'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
차승조(박시후)가 정신질환의 일종인 조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초반부터 드러나 있었죠. 심지어 차승조의 가장 친한 친구 허동욱(박광현)의 직업은 정신과 전문의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는 친구이자 주치의로서 언제나 차승조의 정신 상태 변화를 예민하게 주시해 왔습니다. 10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받았던 충격... 아버지로부터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해 승조를 이용하려 했던 어머니... 어린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여과 없이 털어놓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건 너를 이용하겠다는 뜻이다" 라고 가르쳤던 아버지... 그 후로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었지만,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하며 지내왔던 시간들... 그러다가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랑 서윤주(소이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녀..
..... "살 빼고 삭발한다고 연기 투혼은 아니죠." 송강호, 신세경 주연의 영화 '푸른 소금'이 9월달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쩐지 신세경이 요즘 여기저기 예능에 자주 나오더군요..ㅎㅎ 가능하다면 송강호의 모습도 스크린이 아닌 브라운관에서 한 번쯤이나마 보고 싶은데,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나 봅니다. TV 출연을 대신하기에는 너무 미약한 수준이지만, 오늘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그래도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기사의 제목이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송강호, 살 빼고 삭발한다고 연기 투혼은 아니죠" 제목을 저렇게 뽑아 놓으니 마치 누군가를 디스(diss)하기 위해서 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건 없어요. 그 영화에서 가장 적절한, 필요로 하는 인물이 되려고 애쓸 뿐입니다. 숀 펜이나 로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성애 커플의 언약식 장면을 성당에서 촬영하려다가 무산되었습니다. 처음 기사가 떴을 때는 마치 성당 측에서 자세한 내용을 알고도 촬영을 허락했다가, 나중에 눈빛이 이상하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촬영팀을 내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서 정말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아름다워'의 김영섭 CP는 "성당 측이 동성애자의 언약식인 줄 모르고 촬영을 허가했다가 내용을 알고 촬영을 불허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SBS 김용섭 책임 프로듀서는 이에 대해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단순 기도하는 장면이라고 했고 그냥 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촬영팀이 성당에서 쫓겨나는 등 문제가 생겼다"며 "그건 성당으로 대변되는 가톨릭 종교인들의 신앙적 가치에 반하는 행동이었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