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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청양의 해,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

빛무리~ 2015. 1. 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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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청마(靑馬)의 해가 가고 청양(靑羊)의 해가 밝았다. 푸른빛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향과 행운의 의미가 있으며, 양이라는 동물은 온순과 정직과 성실의 상징이다. 그런데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속죄양'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은 그 온순함과 순종성에서 비롯된 '희생'과 '속죄'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희생'이란 얼마든지 좋은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단어지만, 작년에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신년벽두부터 또 '희생'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기분이 썩 개운치는 않다. 죄악이 저질러졌다면 누군가 속죄를 하긴 해야 할텐데, 과연 그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스스로 '속죄'와 '희생'을 하게 되려나? 온순하고 연약하고 죄없는 사람들이 또 다시 '속죄양'처럼 억울한 희생을 치르게 되는 건 아닐까? 


1월 1일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지정한 의무대축일 중 한 날로서, 한국 천주교 신자에게는 주일(일요일)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미사에 참석해야 할 의무가 주어지는 날이다. 성당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으니 미사가 시작되기 몇 분 전이라 습관처럼 주보를 펼쳐들었는데 "봄에만 꽃이 피는 게 아니다" 라는 글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평신도의 글로 꾸며지는 '말씀의 이삭' 코너였는데, 그 글을 쓴 사람은 영화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주)'의 대표를 맡고 있는 원동연(세례명 제네시오)였다. 제목도 인상적이었지만 글의 서두부터 영화배우 류승룡의 이름이 언급되니, 나 역시 그 쪽 부문의 글을 쓰는 블로거로서 더욱 호기심이 치솟았다. 



원동연 대표는 배우 류승룡과 오래된 지기로서 그 기나긴 무명 시절의 고통을 지켜보았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이도 어느 덧 마흔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는 무명 배우로서 류승룡의 고뇌는 무척 컸다고 한다. 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도 못하면서 연기자의 길만 고집하는 자신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배우의 꿈을 포기할 마음조차 먹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 시절 은사님을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은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놈아, 모든 꽃이 봄에만 피는 줄 아니? 어떤 꽃은 여름에, 또 어떤 꽃은 가을에, 그리고 매화 같은 꽃은 그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지 않니?"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비로소 커다란 존재감의 배우로 자리매김한 류승룡을 원동연 대표는 '겨울에 핀 꽃'이라고 표현했다. 글쎄, 인생으로 따지자면 40대의 나이가 결코 겨울은 아닌데, 흐름이 빠르고 변화무쌍한 연예계 종사자로서 느끼는 40대의 무게는 마치 겨울과도 같은가보다. 이어서 원동연 대표는 "꽃이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 말씀을 자신의 신앙 생활에 대입시켜 성찰하고 있었다.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들 때면, 차라리 좀 쉬었다가(?) 스스로 마음과 행동이 완벽하다고 느껴질 때 다시 신앙 생활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것이다. 


겨울에 피는 꽃, 매화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오직 꾸준한 인내와 성실뿐인데, 완벽해질 때까지 쉬었다가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니 저절로 실소가 머금어졌다. 그 논리성의 결여가 황당할 만큼 어이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어가고 싶어질 만큼 무거웠던 내면의 고달픔이 전해져 와서 안타깝기도 했다. 나 역시 같은 신앙인으로서 고민과 회의를 느껴본 적 없는 것은 아니기에, 때때로 나약해지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원동연 대표는 배우 류승룡을 이끌었던 은사님의 말씀을 되새긴다고 했다. 꽃이 봄 여름에만 피는 것이 아니듯, 좀 늦었다 싶은 자신의 인생과 신앙의 꽃도 언젠가는 활짝 피어날 것을 믿고, 희망과 인내로써 기다리는 것이다.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면 2015년은 커다란 성취의 시기보다는 인내와 기다림의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는 성취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겠지만, 현재의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단숨에 뒤집기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참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가을에 피는 꽃도 있고 겨울에 피는 꽃도 있는 법이니,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지 않겠는가? 비판과 투쟁이 정의로 인식되는 요즘 세상에 양처럼 온순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기다리라 하면, 누굴 바보로 만들 셈이냐면서 화낼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수많은 환란과 역경 속에도 이 세상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양처럼 온순한 사람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진작에 싸우다가 멸망하고 말았을텐데... 청양의 해를 맞이하는 나의 첫날은 이러한 생각들로 조용히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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