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16/02 (6)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은 풋풋한 대학 생활을 그리고 있지만, 그 어떤 막장극에서도 본 적 없을 만큼 소름끼치는 악역들로 가득하다. 특히 김상철(문지윤), 오영곤(지윤호), 남주연(차주영)은 꿈에서라도 만날까 두려운 인물들이다. 손민수(윤지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매우 짜증나는 인물이다. 고정 캐릭터뿐 아니라 홍설(김고은)의 자취방에서 도둑질을 하던 가짜 집주인 손자처럼, 단발성 캐릭터 중에도 끔찍한 악역들은 속속들이 꽂혀 있다. 내가 보기에 '치인트' 속 세상은 현실 세계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삭막하여 꼭 지뢰밭 같다. '치인트'의 악역들이 막장드라마의 악역들보다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막장드라마의 악역들은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기업..
지난 달 춘천에 이어 이번 달에는 충북 제천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역시 지자체 후원을 받아 진행되는 '만원의 행복' 여행이다. '청풍문화재단지 - 제천 상설시장 - 교동 민화마을 - 의림지' 순으로 방문했는데, 혹시 눈이나 비가 올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바람만 좀 쌀쌀할 뿐 날씨는 좋은 편이었다. 제천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약간은 단조롭지만 평화롭고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1. 청풍문화재단지 청풍문화재단지는 1985년 충주 다목적댐의 건설로 댐 상류의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 등의 마을이 수몰되면서, 그 곳에 있던 유물과 문화재를 원형대로 이전, 복원하여 조성된 관광지이다. 다른 민속촌에서처럼 전시용으로 만든 건물들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실제로 사용되던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버..
'복면가왕'에 외국인 출연자가 등장했다는 소식은 이미 지난 주부터 들려왔지만, 그 정체가 '쉬즈곤(she's gone)'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록그룹 '스틸하트(Steelheart)'의 메인보컬 밀젠코 마티예비치(Miljenko Matijevic)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물론 평소 스틸하트의 음악을 자주 들었던 사람들은 예측했겠지만, 나처럼 팝송에 문외한이고 '쉬즈곤'이라는 노래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짐작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그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복면가왕'에 외국인이 출연해서 쟁쟁한 국내 가수들을 꺾고 승승장구하는 현상 자체가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식의 지극히 단순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번개맨'의 정체를 알고 나니, 세계적인..
김수현 작가의 신작 '그래 그런거야'가 막장의 홍수 속에 따뜻한 가족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제법 야심차게 시작되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썩 좋지 못한 편이다. 첫방송은 4%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해당 기사에는 재미가 아닌 피로를 느꼈다는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반드시 김수현 특유의 따발총 대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개인주의적 사고와 생활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대가족이라는 집단의 모습은 더 이상 따뜻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라 이름붙여진 그 거대한 집단의 일률적 원칙을 내세워 구성원 개개인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노인들의 모습은 한없는 갑갑함으로 느껴질 뿐이다. 1년 365일 내내 명절 분위기를 이어가는 대가족 안에서 안주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주부 한혜경..
'라디오스타'에 게스트로 출연한 양세형과 MC 규현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그 후폭풍으로 인터넷이 한창 시끄럽다. 먼저 개그맨 양세형의 주장을 보면 "1년쯤 전에 슈퍼주니어 김희철의 부탁을 받고 규현의 친구 결혼식에 사회를 봐주었다. 식이 끝난 후 사례금을 받기는 해야겠는데, 좀 모양 빠지는 것 같아서 그냥 차를 몰고 나오는 길에 ATM에서 돈을 뽑아들고 나오는 규현과 마주쳤다. 그런데 규현은 봉투도 없이 5만원짜리 4장 가량을 "이거 가져가세요" 하며 불쑥 내밀었고, 옆에는 규현의 친구까지 있었는데 그 돈을 차마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형이 어떻게 이 돈을 받겠냐, 나중에 술이나 사라!" 하고 헤어졌는데, 그 후로 1년이 지나도록 규현은 술 한 잔 사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연락조차 없었다."는 ..
‘육룡이 나르샤’ 36회에서 드디어 선죽교가 정몽주(김의성)의 피로 물들었다. 어떻게 될 줄을 모두가 알면서도 손꼽아 기다려 온 ‘피의 선죽교’ 그 명장면이 드디어 방송된 것이다. 이방원(유아인)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구태의연한 시조 형식이 아닌, 새로운 해석을 곁들여 대사 형식으로 표현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김의성과 유아인의 명연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그 명장면을 감상하면서도 나의 가슴이 울리지는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몰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표현되는 ‘하여가’에 김영현 작가는 ‘백성’의 존재를 대입시켰다. 이방원의 원래 시조가 “우리끼리만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면 되지, 나라가 바뀌든 말든 무슨 상관이오?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