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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인더트랩' 유정(박해진)의 캐릭터가 매력적인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치즈인더트랩' 유정(박해진)의 캐릭터가 매력적인 이유

빛무리~ 2016. 2. 29.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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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은 풋풋한 대학 생활을 그리고 있지만, 그 어떤 막장극에서도 본 적 없을 만큼 소름끼치는 악역들로 가득하다. 특히 김상철(문지윤), 오영곤(지윤호), 남주연(차주영)은 꿈에서라도 만날까 두려운 인물들이다. 손민수(윤지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매우 짜증나는 인물이다. 고정 캐릭터뿐 아니라 홍설(김고은)의 자취방에서 도둑질을 하던 가짜 집주인 손자처럼, 단발성 캐릭터 중에도 끔찍한 악역들은 속속들이 꽂혀 있다. 내가 보기에 '치인트' 속 세상은 현실 세계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삭막하여 꼭 지뢰밭 같다. 



'치인트'의 악역들이 막장드라마의 악역들보다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막장드라마의 악역들은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기업을 빼앗거나, 어린 아기를 유괴하고 바꿔치기하는 등 엽기적인 악행을 저지른다. 물론 현실 속에도 그런 범죄자들이 존재하지만,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반면 '치인트'의 악역들은 당장 내일 아침에라도 길에서 마주칠 것 같은 제법 평범한 인물들이다. 스토킹, 협박, 착취, 도둑질, 폭행 사주 등 그들의 행위 역시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스케일이 작아서 웬만하면 걸리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귀찮아서, 또는 불쌍해서 가해자를 그냥 봐주곤 한다. 


하지만 악행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은 그들은 점점 대담하고 집요하게 악행을 반복한다. 결국은 피해자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어떻게든 대응하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마땅한 방법이 없다. '좋은 게 좋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아주 큰 일이 아니면 법적 문제로 끌고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고, 심지어 법의 도움을 받아보려 해도 복잡한 이유 때문에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치인트'의 여주인공 홍설은 언제나 이런 악역들의 표적이 되고 피해자가 된다. 힘 없고 가난한 홍설을 만만하게 여긴 하이에나들이, 그녀가 똑똑함과 성실함으로 애써 수확한 대가들을 공짜로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런 홍설에게 최적의 보디가드가 나타났다. 똑똑하고 성실하면서 힘도 세고 돈도 많은, 한편으로는 홍설과 비슷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주 딴판인 남자친구 유정(박해진)이다. 유정은 홍설이 못 가진 부와 권력을 지녔으나, 그에겐 홍설이 지닌 따뜻한 마음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의 못 갖춘 마디를 채워주며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최상의 커플이다. 서로 다른 만큼이나 비슷한 점도 많기 때문에,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것처럼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도 크다. 


원작 웹툰에서는 어떤 내용이 더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단지 드라마에서 다루어진 내용만 보자면 솔직히 유정에게 무슨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소시오패스라는 둥 섬뜩하다는 둥, 유정의 이상 성격에 관해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유정은 매우 신중하고 영리하며 다소 냉혹할 뿐이다.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 썩 나쁘지도 않고 크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결코 '자신이 먼저' 또는 '이유 없이'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상대가 먼저 공격해 왔을 때, 자신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행동할 뿐이다. 행동의 이유와 목적이 명백할 뿐 아니라,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당성까지 부여된다.



 

20대 청년이 자기 집에 든 도둑을 때려 잡았는데, 그 폭행 수준이 과했다는 이유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아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재판부에서야 법적 근거가 있으니까 그런 판결을 내렸겠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결과였다. 한밤중의 침입자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야겠다는 본능적 방어기제가 폭발했는데, 그 상황에서 어찌 강약 중강약을 따져가며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도 집주인 청년은 무죄라야 마땅했다. 그 도둑놈이 집주인에게 폭행당해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지만, 그러게 누가 도둑질을 하래? 


법이 얼마나 잘났는지 몰라도, 그런 판결은 사회악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쁜 놈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법이 보호해 주니까 더욱 기세등등해질 것이고, 착한 사람들은 제 몸 하나 지키려다가 옥살이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방어도 못 하고 그저 때리면 맞는 수밖에 없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도둑놈이 죽든 말든 집주인의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무죄 판결이 났다면, 나쁜 놈들은 한층 기가 죽어 겁을 내며 쉽게 범죄를 저지르지 못했을텐데... 내 생각엔, 법은 지금보다 훨씬 강하고 엄격해져야 한다. 



아무튼 법이 이렇게 물러터졌으니, 선량한 사람들이 일상 속 크고 작은 범죄에 대응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언제나 피해자가 되는 홍설의 입장에 몰입하면 할수록 가슴이 터져나갈 듯 답답할 뿐인데, 힘 센 남자친구 유정의 복수는 번번이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짜릿하다.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일일이 거론할 수 없으니, 14회에서 등장한 '김상철 물먹이기' 에피소드만 언급해 보기로 한다. 매우 정교한 각본으로 짜여진 이 복수극은 유정의 성격과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된다. 


언제나 하는 일 없이 후배들에게 빌붙으려 하는, 무책임하고 뻔뻔하고 무례하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선배 김상철은 시험을 앞두고 유정이 홍설에게 준 족보를 탐낸다. 홍설이 거절하자 사람 많은 곳에서 큰 소리로 욕하고 비난하더니, 포기한 척 하다가 몰래 홍설의 가방에서 족보를 훔친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홍설이 대들며 따지자 김상철은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시도한다. 마침 그 상황을 목격한 백인호(서강준)가 급히 달려오는 바람에 얻어맞지는 않았으나, 홍설은 상철의 기세에 소스라쳐 넘어지는 바람에 다치게 된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유정의 얼굴에 냉기가 흐른다. 김상철은 평소 대기업 입사를 희망했지만 실력이 되지 않았고, 최근 중소기업 선주물산에 2차 전형까지 합격한 상태였다. 태랑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유정은 자기 신분을 이용해 탈락한 김상철의 서류 접수를 통과시킨다. 그리고 면접 일정을 조정하여 선주물산의 최종 면접일과 겹치게 만든 후, 고민하는 상철에게 슬쩍 바람을 넣는다. "선택은 선배가 해야죠. 그런데 태랑에서 이번에 뽑는 신입은 정규직 조건이라 되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긴 하죠. 내 생각엔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은데요." 분수에 맞지 않게 대기업을 욕심내던 김상철은 덥석 미끼를 물고 만다. 


결국 김상철은 합격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던 선주물산을 포기하고 태랑으로 달려간다. 자연스럽게 두어도 면접 통과는 불가능했겠지만, 철두철미한 유정은 면접에 관련하여 그릇된 정보까지 전달함으로써 미리 확인사살을 마친 상태였다. 기본적인 답변조차 못 하고 버벅대다가 고배를 마신 상철은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중, 백인하(이성경)를 통해서 그 모든 일이 유정의 계략이었음을 알게 된다. 즉시 회사로 달려가 사람들 앞에서 유정의 신분을 폭로하며 진상을 부리는 상철... 뉘우침의 기색은 전혀 없다. 



유정의 행동이 잘한 거라든가 도덕적인 거라고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솔직히 뭐 그렇게 나쁜 것 같지도 않다. 도대체 왜 그런 놈한테 맞고도 가만 있어야 되는데? 이제껏 상철은 홍설을 수없이 모욕하고 협박하고 물건까지 훔치는 등 갖은 방법으로 괴롭혀 왔다. 현실적으로 그런 놈이 주변에 있으면 효과적으로 대응하거나 떼어낼 방법이 거의 없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정처럼 강하고 힘 있는 사람이 합법적인 수단으로 대신 복수해 주면 그것보다 통쾌하고 좋은 일이 어디 있는데? 


솔직히 힘이 없어서 그렇지, 유정처럼 힘만 있다면 그렇게 대응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을까? 없는 놈이 작은 회사에라도 취직 좀 해보겠다는데 그것마저 못하게 막았으니 좀 심했다고 볼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영영 밥줄을 끊은 것도 아니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면 되지 않겠는가? 선주물산처럼 그런 놈을 받아주겠다는 눈 먼 회사가 한두 곳은 더 있을테니 말이다. 분해서 펄펄 뛰는 상철에게 유정이 말한다. "태랑을 선택한 것도 선배고, 면접 준비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망친 것도 선배예요. 여기 와서 행패부릴 주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맞는 말이다. 유혹이 있어도 분수에 맞게 선주물산을 선택했으면 될 걸, 제놈이 욕심을 부린 탓이다. 



이 외에도 유정은 늘상 당하기만 하는 홍설을 위해 그녀 몰래 해준 일들이 많았다. 그 방식이 언제나 정당했다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내가 보기에는 별로 크게 나쁜 것도 아니었다. 만약 내가 홍설의 입장이었다면 분명 유정에게 감사하며 점점 더 그에게 반했을 것이다. 이 험한 세상 속에서 내 편 들어주면 최고지, 방법이 약간은 안 좋더라도 내 편 들어주면 고마운 거지, 뭘 그렇게 도덕적 원칙을 따져서 티끌 한 점 부끄럼도 없어야 한다고, 나를 위해 애써 준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내야 할까? 다행히도 이번에는 홍설이 유정의 마음을 이해하며 안아 주었지만, 그 동안 나는 홍설을 보며 속 터지게 답답한 적이 참 많았더랬다. 


부친 유회장의 잘못된 훈육 방식 때문에 약간 특이한 성격을 갖게 되었지만, 유정은 결코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아니다. 단지 타인과의 감정 교류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 편이며, 자기 방어 의식이 극단적으로 발달해 있는 것뿐이다. 제각각 방향이 조금씩 다를 뿐, 이 정도의 정신적 문제는 거의 모든 현대인이 갖고 있는 수준 아닐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김상철이나 오영곤 같은 인물이 유정보다 백 배는 더 심각한 정신병자다. 유정은 공격을 받았을 때 방어와 반격을 하지만, 그들은 죄 없는 타인을 먼저 공격하기 때문이다. 



단지 속시원한 복수를 해주기 때문에 유정의 캐릭터가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이제껏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도 다루어진 적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며,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한다. 그에 비해 백인호의 캐릭터는 아주 평범하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은 고아 소년,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을 다친 천재 피아니스트, 아픔을 숨긴 반항적 눈빛, 좋아하면서도 틱틱거리는 츤데레... 이제껏 많은 작품에서 흔히 보아 왔던 인물형이다. 이런 인물은 단선적으로 착하고 따뜻하다. 


그런데 현재 '치인트'의 이윤정 PD가 자의적으로 유정의 분량을 축소시키고, 백인호의 캐릭터를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키면서 갖은 잡음이 일어나고 있다. 원작 웹툰과 배우 박해진의 국내 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박해진의 중국 내 인기에 힘입어 수출 계약이 된 상태에서 중국 측의 항의까지 들어오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적 문제도 골치 아프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윤정 PD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치인트'가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 멜로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유정의 캐릭터가 이대로 묻혀가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라, 마지막 2회 동안의 반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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