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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언년이의 마지막 남자는 누구일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노

'추노' 언년이의 마지막 남자는 누구일까?

빛무리~ 2010. 3. 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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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와 언년이가 아직 다시 만나지 못했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대길이가 그토록 언년이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했으니까요. 가끔은 분노 같기도 하고, 얼핏 증오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 같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눈에 띄지도 않고 생사조차 불분명한 사람에게 그토록 자기 인생을 올인하며 집착하게 만든 것이 무엇일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재회하고 나서야 대길이의 인생을 중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겉으로는 분노와 증오를 드러냈지만, 차마 숨길 수 없던 그 눈빛의 애절함...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사랑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 정도로 절대적인 줄은 몰랐기에, 저는 약간 놀랍고 의아했습니다. 단순하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언년이 때문에 자기의 가족이 모두 살해되고 집안은 몰락하고 자기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는데... 그런데도 10년간 언년이를 찾아다닌 이유는 도무지 끊을 수 없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만난 두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남편, 송태하의 존재입니다. 만약 언년이의 오라비인 큰놈이가 살아 있었다면, 명백히 집안의 원수인 큰놈이의 존재가 두 사람 사이에 장애물이 되었겠지만, 그는 대길의 앞에서 속죄하는 의미로(?) 자살하고 말았으니 이제는 말라버린 강물입니다. 그러나 이미 정식으로 부부가 된 언년이와 송태하의 관계는 비록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 해도 상당히 견고해 보이는군요.


그들 부부의 주변을 처량하게 겉돌며 차마 끼어들지 못하는 대길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의 감정까지 느꼈던 이유는, 대길의 감정이 송태하의 그것보다 더욱 강렬하고 절절하게 와닿았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언년이에 대한 송태하의 사랑도 진실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는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할 대업이 있고, 지켜야 할 원손이 있고, 거두어야 할 동지들이 있고... 어찌 보면 언년이가 송태하의 아내가 됨으로써 차지한 위치는, 그의 여인이라기보다 수많은 동지들 중 한 사람으로 편입된 듯한 느낌조차 듭니다. 지금도 언년이는 남편 없이 홀로 짝귀의 산채에 남아, 많은 사람의 표적이 된 원손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송태하의 대업에 아주 큰 역할을 담당하는 조력자가 된 셈이지요.


별 이유도 없이 송태하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민폐언년'이 되었던 그녀이지만, 정식으로 부부가 된 후에는 오히려 송태하가 그녀의 도움을 적잖이 받고 있습니다.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원손은 이미 좌의정 이경식이나 청나라사신 용골대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부하를 잃은 지금은 송태하가 혼자 원손을 안고 다녀야 했을테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대길이가 나서서 짝귀의 산채를 소개해 준 것도 언년이를 위해서였습니다. 덕분에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 든든한 협조자와 함께 원손을 놓아두고, 송태하는 다시 홀가분한 몸으로 자기 할 일을 하러 떠날 수 있었지요.


이렇게 연인보다 동지처럼 느껴진다는 것 외에도, 만약 송태하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언년이의 정체가 원래 노비였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과연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그녀와 고난을 함께 하며 깊은 정이 들었고, 부부의 연까지 맺은 지금에야 의리상으로 아내를 버릴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지식한 성정 탓에 언년이의 과거가 그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나간 과거를 이유로 갈 곳 없는 아내를 내치기에는 송태하의 심성이 너무 올곧고 선량합니다. 차라리 자기의 세계관을 바꾸더라도 아내에 대한 사랑과 의리를 지키려 하는 태도가 그에게 어울리지요. 더구나 첫번째 아내와 자식을 처참하게 잃은 후, 다시는 내 사람을 잃지 않고 지켜주겠노라고 다짐했던 그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언년이와 송태하의 관계는 사랑 반 의리 반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부부관계도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건설적인 관계이며, 또한 매우 현실적입니다.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열렬한 사랑으로 결합된 부부보다는, 그들처럼 믿음과 의리로 결합된 부부가 훨씬 더 오랫동안, 평화롭게 부부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세상에 도무지 있을 것 같지 않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대길이라는 남자의 존재가 자꾸만 제 마음을 움켜쥐고 흔들어대네요. 지금 그는 사랑하는 언년이의 남편인 송태하와 동행을 하고 있습니다. 송태하는 반기지도 않는데 자청해서 그를 따라다니며, 한치의 요령도 없이 무조건 정면돌파만 하려고 드는 송태하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를 구해줍니다. 참 속도 없는 사내입니다.

이대길이라는 남자는 언년이를 위해서 그녀의 남편을 보호하고, 언년이를 위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합니다. 이제 그의 소망 안에 자기의 욕심이나 행복 따위는 없습니다. 누가 청하지도 않은 그 위험한 길을 스스로 걷는 이유는 오직 언년이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세상의 법률이나 규정 따위는 쉽게 무시하며 살아왔을 것 같은, 야생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대길이지만, 송태하에게서 언년이를 빼앗아 오려는 시도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혼인이라는 세상의 관습을 존중해서라기보다는, 언년이가 스스로 송태하를 택했으며 그를 떠나 자기에게 오려는 마음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길은 그녀의 마음을 억지로 자기에게 돌리려 하지도 않으며, 조금도 그녀의 뜻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허무하게 흘러가버린 지난 10년의 세월도, 송두리째 망가져버린 자기의 인생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렸다면 차라리 잊을 수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최장군과 왕손이를 데리고 마련해 둔 이천의 땅으로 가서 자기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살아도 좋을 것을, 이 바보같은 사내는 떨쳐 내지도 못합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물론 아직은 모르지만, 송태하를 따라나선 그 길이 왠지 대길에게는 죽음의 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신처럼 드는군요) 마지막까지 그녀의 행복을 위해 자기 삶을 불태우고 있는 사내가 바로 대길입니다.

사실 저는 운명을 믿는 편입니다. 반드시 남녀 사이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관계가, 그리고 우리 삶 자체가 어느 정도는 운명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자유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도 상당히 존재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의지만으로 살아지는 게 인생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대길이와 언년이는 누가 뭐래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현실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든 상관없이,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울메이트였던 것 같아요. 대길이의 사랑은 이미 세상의 기준을 넘어섰습니다. 남의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 하여 그에게 도덕적 규범의 잣대를 들이댈 수조차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하는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는 세상의 그 어떤 잣대로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언년이의 마지막 남자는 대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송태하와 헤어지고 대길이와 맺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예요. 반드시 현실에서 맺어지지 않아도, 대길이가 죽음으로 자기의 사랑을 완성시킨 후, 그녀는 계속 송태하의 아내로 살아가며 천수를 누린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녀의 마지막 남자는 대길이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구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왠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길이의 가슴에 담긴, 그 정도의 엄청난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가시적(可視的) 세상을 넘어서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 반드시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길이와 언년이가 어딘지 모를 그 세상에서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잠시 이 세상을 지나는 동안 겪었던 모든 고통들은 꿈처럼 느껴지겠지요. 현실의 끝이 반드시 끝은 아니며, 죽음조차 마지막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줄 만큼, 대길이라는 남자가 보여준 사랑은 그토록 위력적이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이미 완성되었어요.


* 관련글 : 언년이에게 보내는 대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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