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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대길이의 편지 - 언년이에게 [추노 편지4]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노

'추노' 대길이의 편지 - 언년이에게 [추노 편지4]

빛무리~ 2010. 3. 1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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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년아, 어떠하냐? 네 눈에 비친 내 몰골이 어떠하냐? 네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그 옛날 풍채 고운 도령은 온데간데 없이, 반은 짐승이요 반은 사람인 괴물로 변해버린 내 몰골이 어떠하냐?
너는 내게 물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끔이라도 네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느냐고... 내 어찌 잊겠느냐? 네 오라비에게 칼을 맞고 불길 속에 쓰러지는 나를 뒤로 한 채 멀어져가던 네 모습은 지금까지 나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었다. 언년아, 너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였더냐?


네 오라비 큰놈이보다도 나는 너를 더 미워하였다. 잡아끄는 오라비의 힘을 뿌리칠 수 없었던, 연약한 너를 더 미워하였다. 언제나 감싸주고 싶던 너의 가녀린 어깨가, 언제나 꽁꽁 얼어 있던 너의 작고 차가운 손이 그지없이 미웠다. 나를 보며 아스라히 미소짓던 너의 꽃 같은 얼굴이 미웠다. 죽도록 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칼을 맞아도, 매를 맞아도, 불길 속에 던져져도, 그 어떤 고통도 너를 향한 미움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왜 그토록 애타게 너를 찾아 헤맸는지 아느냐? 나를 미치게 하는 이 증오를 떨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니라. 너와 네 오라비가 눈앞에서 죽는 꼴을 보면, 내 안의 미움도 사라질 거라 믿었다. 미움의 대상이 죽어버렸는데 그 미움만 홀로 살아남을 수야 없지 않겠느냐?
내가 살려면 네가 죽어야 했기에 나는 너를 죽이려고 찾아 헤맸을 뿐인데, 사람들은 내가 너를 미치도록 사랑하여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와 너의 일을 다른 사람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10년 전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네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너를 죽일 수 없는 나 자신을 그제서야 깨달은 거다. 언년아, 나를 미워하여라. 세상 그 누구보다 어리석은 이 사내를 미워하여라.

네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고 네가 나에게 물었던 것처럼, 나도 너에게 묻느니 내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더냐? 너에게 나는 무엇이었더냐? 네 오라비의 말처럼, 서슬 퍼런 부모님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창고에 갇혀 굶어죽어가는 너를 그냥 놓아둔 채 방에서 냉가슴만 앓던, 못나고 나약한 주인집 도령에 불과했더냐? 아니면 혹시라도... 가슴에 박힌 가시처럼, 아파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더냐?


10년만에 마주하여 너의 목에 칼을 겨누는 나를, 너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네 눈에 스쳐가는 고통의 그림자가 나를 미치게 했다. 그 눈빛은 바로 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너도 잊지 못하고 있었음을, 그 오랜 세월을 고통으로 살아왔음을 나는 보았던 거다.

그런데 내 아직 이 세상 고통을 모르던 그 철없던 시절에 상상하곤 했던 것처럼, 너는 눈부신 비단옷을 입고 머리를 올린 모습이구나. 그 모든 것을 내가 해주려 하였는데, 이미 귀신이 되어버린 나를 대신해 네가 선택한 사내는 어떤 사람이더냐? 송태하가 너를 진심으로 대하더냐? 다른 무엇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더냐? 너의 모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품어 안아 주더냐?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그렇게 하더냐?


언년이, 너의 이름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그는, 양반일 뿐이다. 양반이란 그렇게 우스운 것이다. 네가 양반을 아느냐? 양반 상놈 없는 세상을 만들어 너와 함께 평생 살겠다고 약속하던 내 모습을 기억하며, 양반 중에 그런 사람이 흔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냐? 그래서 뼛속까지 양반인 송태하의 품에 기꺼이 너 자신을 던졌던 것이냐?


임금의 손자를 앞세워 그가 도모하는 일이라야 모두 양반들의 세상을 위한 것이다. 코흘리개 어린애를 허수아비로 중심에 세워놓고 그들이 벌이는 일이란, 엎치락 뒤치락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추악한 권력 투쟁일 뿐이다. 언년이, 네가 그 일과 무슨 상관이더냐?
그런 시궁창에 너를 빠뜨려 놓고, 보호하기는 커녕 그 연약한 몸으로 혼자 원손을 안고 도망치게 해놓고, 그래서 추격의 모든 화살이 너를 향하게 만들어 놓고, 송태하는 말한다. 고난도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그러면서도 그는 너의 이름조차 인정하지 않고 언년이를 모른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위선이더냐?


언년아, 말해 보아라. 양반이 되기 위해 만들어낸 혜원이라는 이름이 정녕 너의 것이더냐? 그것이 너의 실체이더냐? 양반이든 천민이든, 너는 그저 언년이일 뿐이다. 만약 송태하가 김혜원이라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해도, 그 사랑은 거짓이요 껍데기일 뿐이다.
양반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곧은 성정을 지녔다 해도, 양반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자는 진실한 사랑을 할 수조차 없다.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위선적 껍질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언년아, 나를 미워하여라. 죽음과 눈이 마주친 순간에조차 너를 떠올리며 발버둥치는 이 사내를 미워하여라. 언제 죽어도 상관없을 이 더러운 세상을, 너 때문에 다시 살아가려 하는 이 어리석은 사내를 미워하여라.
내 겪어보니 사랑보다 더 지독한 것이 미움이라, 그 미움 속에 박혀버린 사랑은 어떻게 해도 지울 수가 없더구나. 내 죽어 땅에 묻혀 백골조차 흙 속에 녹아든다 해도, 이 가슴에 박힌 네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게다.

그렇게 죽도록 미워하여, 너도 나를 잊지 않도록 해라. 죽은 후에도 네 안에서 내 모습이 사라지지 않게 하여라. 설령 몸은 송태하의 품에 안겨 있다 해도, 그것이 너의 운명이니라. 우리의 사랑이 운명이 아니라면, 세상에 어찌 나와 같은 바보가 있겠으며, 이런 나를 고통의 눈으로 바라보는 네가 있겠느냐?


언년아, 지난 10년간 그래 온 것처럼,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너를 찾아 헤맬 것이다. 네가 어디에 있더라도, 너를 향해 달려가는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그것이 태초부터 나에게 주어진, 나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이 리뷰는 저의 개인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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