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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조선비를 변절로 이끌어간 두 개의 함정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노

'추노' 조선비를 변절로 이끌어간 두 개의 함정

빛무리~ 2010. 3.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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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조선비의 변절은 벌써부터 명백히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의 속내가 개인적 탐욕에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송태하와 의견충돌로 갈등을 빚으면서,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던 조선비의 야욕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송태하와 조선비는 둘 다 뿌리깊은 양반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지만, 그 방향은 여실히 달랐습니다. 송태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대의명분이었지요. 언년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빛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송태하의 삶에 있어 가장 큰 목적은, 죽은 소현세자에 대한 충성으로 그가 남긴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반란을 일으키기보다는 현재의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뜻을 전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조선비는 반란을 주장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확실한 계획도 없이, 우선 피 튀기는 반란부터 일으키자고 재촉합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얼마나 죽느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가 어떻게 권력을 잡을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지요.
송태하와 더불어 소현세자의 양 날개 중 하나였던 사람이 그토록 야심찬 속물이라니 참으로 기이하고도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요절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 해도, 어차피 소현세자의 앞날은 밝지 못했을 테니까요. 슬픔을 운명으로 타고난 왕자였던 게지요.


탐욕스런 사람에게 절개를 지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강아지에게 하늘을 날아 보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정에 체포되는 그 순간부터 조선비의 변절은 기정사실로 예고되어 있었고, 다만 얼마나 버틸 것인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 굴복할 것인가가 약간 의문스러울 뿐이었지요.

좌의정 이경식의 입장에서 보면, 탐욕스런 조선비의 존재는 그야말로 최대의 이용가치를 지닌 월척과도 같았습니다. 월척에 손상을 입히면 안되니까 심문도 하지 않은 채, 고이고이 모셔다가 술을 대접하는군요. 역시 탁월한 안목이었습니다.


잠시나마 청렴하고 지조 높은 선비 흉내를 내면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약간의 자존심은 있구나 싶었습니다. 이경식의 유혹은 아주 정확하고도 예리하게 그의 진심과 욕망을 자극했기에,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한방에 무릎꿇지는 않고 제법 잘 버티더군요.

그러나 다음 순간 조선비는, 더이상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없을 만큼, 가장 못난 꼴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이경식의 회유에 굴복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추레해 보이지는 않았으련만, 정작 그를 무릎꿇린 사람은 시청자에게 이름조차 소개되지 않은 기생 행수였습니다.


악역 이경식에게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어조와 높임말을 쓰면서 냉혹하고 매서운 속내를 살며시 감추는 능력이지요. 평생 관직에 나가지 못했으니 당장 죽는다면 묘비에 '學生'이라고 기록될, 보잘것없는 일개 선비를 앞에 두고, 이경식은 진심인 듯 따뜻한 어조로 그를 한없이 북돋우고 치켜세워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껏 존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한 뒤, 좌의정은 퇴실하고 그 자리에 남아있던 기생 행수는 마치 거지에게 동냥 주듯이, 낙향할 여비랍시고 30냥이 들어있는 가벼운 돈주머니를 조선비의 발치에 던져 버립니다.


조선비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입니다. 좌의정에게서 받는 모욕이라면 참을 수 있을지 모르나, 한낱 기생 따위가, 길가에 피어 아무나 짓밟을 수 있는 천한 노류장화 따위가, 감히 고귀한 양반의 피를 이어받은 자기를 무시하고 조롱하다니, 어찌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참을 수밖에 없는 입장임을, 조선비는 그 자리에 무력하게 앉은 채 절감하고 맙니다. 분명 자기는 양반이요 기생은 천민이지만, 그녀는 이 거대한 색주가의 주인이며 더구나 좌의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양반이라는 허울로 그녀에게 호통을 칠 수는 있으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한 것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항거하지 못한 채 비참한 기분으로 주저앉아 있는 조선비를 바라보던 기생 행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갑니다. "뜻이 원대하다고 존경받는 세상이 아닙니다. 힘도 함께 갖추셔야지요."

그녀의 대사는 참으로 날카로웠습니다. 저 말은 어쩌면, 만고불변의 진리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욕심없는 사람이라 해도 인간의 본성상 타인에게 존경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조금씩은 갖고 있게 마련인데, 권력욕과 명예욕에 불타는 조선비에게 있어서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는 맥없이 굴복하여 스스로 종이를 펼치고, 함께 거사를 도모하던 동료들의 이름을 써 내려갑니다.


좌의정도 없는 자리에서, 한 명의 기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묵묵히 변절자의 노트를 적어 내려가는 조선비의 모습은 더없이 초라하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좌의정이 그에게 찬란한 미래를 선물해 주겠습니까? 이제 그의 앞에 남은 것은 오직 굴욕의 삶일 뿐입니다. 절개를 꺾어서 그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부(富)도 명예도 권력도 이미 그와는 관계 없는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조선비가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첫째로 탐욕 때문이며, 둘째로 오만 때문이었습니다. 탐욕에 관해서는 글의 서두에서부터 줄곧 언급하였으나, 그에 못지 않은 조선비의 약점은 바로 오만이었지요.


만약 조선비의 자리에 송태하가 앉아 있었다면, 그는 기생 행수가 아무리 독한 말로 자극해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그의 자존심은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에 겉에서 뒤흔들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탐욕스런 조선비의 자존심은 마치 손잡이처럼 바깥쪽에서 쉽게 붙잡고 흔들어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버젓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자존심을, 저는 개인적으로 '오만'이라 부릅니다..^^)
탐욕과 오만이 결합하면 이렇게 엄청난 비극적 결과를 가져옵니다. 기생 행수에게서 조롱과 모욕을 당하여 오만에 상처를 입은 조선비는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나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두 개의 단어를 한껏 낮추고 비웃는 듯이 표현하였으나, 사실 탐욕과 오만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있겠습니까? 그 어떤 인간이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 있으며, 진정한 자존심과 어리석은 오만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매일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함정을 피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립시다. 탐욕과 오만의 함정은 지금도 우리 앞에 검은 입을 벌리고 있으니, 자칫하면 우리도 한 순간에 추락하여 조선비와 같은 신세가 될지 모르거든요...^^ 

               "악마는... 그 오만한 영혼은... 조롱당하는 것을 견디어내지 못하느니라."  - 토머스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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