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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 출구 없는 슬픔과 절망의 역설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죽여주는 여자' 출구 없는 슬픔과 절망의 역설

빛무리~ 2016. 11. 2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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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적 해석으로 '죽여주는 여자'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첫째는 주인공 소영(윤여정)의 버림받은 인생이고, 둘째는 노년의 삶에 대부분 찾아오는 출구 없는 슬픔이다. 양공주 출신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은 처음부터 버려진 인생이었고, 끝까지 남에게 이용만 당하다 스러져간 인생이었다. 아무도 어린 소영을 보살펴주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이 갖고 있는 유일한 것을 팔아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혼혈아를 낳게 되었지만,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마당에 도저히 키울 수 없어서 입양을 보내게 되었다.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버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아온 소영... 그 와중에도 매일 낯선 남자들의 육체를 어루만지며 이어가야 했던 모진 목숨...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착한 여자 소영의 마음 속에 그 어떤 미움이나 원망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푼돈의 대가로 자신의 육체를 희롱하는 남자들을 역겨워하기는 커녕, 인간다운 애정과 연민으로 감싸안았다. 그 노인들의 외로움과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측은히 여겼기에, 끝내 '죽여주는 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내용 및 결말에 대한 누설이 있습니다.>


사실 최초의 의뢰인(?)이었던 송노인(세비로송, 박규채)만 제외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철저한 이기심으로 소영을 이용해먹고 떠나간 잔인한 남자들이었다. 꼼짝 달싹도 할 수 없었던 송노인의 입장에서야 "제발 나를 도와 줘. 나를 죽여 줘" 라고 간절히 부탁할 수밖에 없었지만, 종수(조상건)와 재우(전무송)는 충분히 스스로 실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위안받기 위해 소영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소영이 치러야 할 대가에 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소영은 아무런 미움도 원망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순하게 받아들인다. 감옥에서 숨을 거둔 소영의 시신을 마지막에 굳이 보여준 이유는 확실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다. 철저히 버려지고 피 한 방울까지 이용만 당하다 끝나버린...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캄캄한 어둠 속만 헤매다 그렇게 끝나버린 한 여자의 인생... 어쩌면 자신의 아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무작정 데려다 잠시 돌보았던 코피노 소년 민호가 그녀의 삶에는 유일한 희망이었을까? 


어쩌면 소영의 인생은 그리 평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니 가슴 서늘한 연민을 느끼면서도 "저것은 저 사람의 인생일 뿐" 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에게 죽음을 의뢰하는 남자 노인들의 모습에서 평범한 관객들은 더 가까운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젊어서 죽지 않고 늙음을 맞이한다면, 결국은 절대 다수가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애써 키운 자식들은 모두 제 인생 사느라 바쁠 뿐이고, 남은 것은 뜻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쇠잔한 육신과 극도의 외로움 뿐이다. 


소영처럼 철저히 버려지고 이용만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영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종착역에도 아무런 희망은 남아있지 않았다. 송노인은 남부럽지 않은 학식과 재산을 지녔으나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 침대에 눕혀지는 순간부터는 그 무엇 하나, 죽음조차도 자신의 힘으로는 선택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치매에 걸린 종수도, 꽤나 젠틀하고 멋진 노인처럼 보였던 재우(전무송)까지도, 희망없는 삶을 지속하기보다는 죽음을 원했으나, 혼자 죽음을 맞이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던 나약한 인생이었다. 


출구 없는 슬픔과 절망을 소스라치게 현실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 

나는 그토록 철저히 버려진 삶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잃지 않았던 소영을 보며, 그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따뜻하고 은혜로운 삶 속에서도 세상과 인간을 향한 증오와 원망으로 점철되어 있던 내 인생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아직은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육신을 보며, 무엇이든 하려고만 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더 열심히 살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것은 희망을 불러오는 절망의 역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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