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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하정우 원맨쇼, 지나친 영웅 만들기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터널' 하정우 원맨쇼, 지나친 영웅 만들기

빛무리~ 2016. 8. 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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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배두나 주연의 '터널'을 관람했다. 설정상으로는 실베스타 스텔론의 1996년작 '데이라잇(Daylight)'과 비슷했다. 그런데 '데이라잇'은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이 여러 명이었기에 다채로운 캐릭터를 감상할 수 있었던 반면, '터널'은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에서 오직 하정우만이 원맨쇼를 벌이는지라 비교적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인공 이정수(하정우)라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영웅적인 인물로 설정해 놓은 탓에 몰입도가 떨어졌다. 거의 성자 수준의 희생 정신과 더불어 터미네이터를 연상케 하는 강철 체력과 정신력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탓이다.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지 무려 30일을 넘긴 상황에서도 이정수는 꽤나 멀쩡한 육체와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몸의 상처에서는 피고름이 흐르고, 일주일을 넘기면서부터는 갖고 있던 물도 떨어져서 본인의 소변을 받아 마시며 버티는 중이었는데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살아있기도 힘든 상황이고, 간신히 숨이 붙어있다 해도 체력은 완전히 방전되어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정상인데, 불끈불끈 힘을 내어 터널 속을 뛰어다니기까지 하는 이정수의 활기 넘치는 모습은 황당하게 느껴졌다. 하긴 가뜩이나 등장 인물이 적은데, 주인공이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으면 영화가 만들어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혼자인 줄 알았던 터널 안에 함께 갇힌 생존자 미나(남지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정수는 그녀를 위해 아낌없는 희생을 한다. 붕괴 당시 큰 부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는 미나를 위해 이정수는 기꺼이 자신의 생명수와 같은 물을 절반이나 나눠 주고, 그녀가 기운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는 격려를 해준다. 심지어는 미나의 부탁을 받고 그녀의 강아지 탱이에게도 물을 나눠 주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자기 자신도 하루 한 번씩 병뚜껑에 살짝 따라 목만 축일 정도로 아끼던 물을 남의 개한테까지 나눠 주는 모습은 솔직히 감동보다는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주인공의 인간미를 너무 강조하려다가 오버한 느낌이었다. 


바깥쪽 상황은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사람의 생사보다도 특종을 우선시하며 극성스럽게 달려드는 기자들, 이정수의 휴대폰 배터리를 최대한 아껴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전화를 걸어 "단독! 생존자 전화 연결" 따위의 제목으로 생방송을 내보내는 인간들, 시일이 흘렀다고 이정수의 사망을 제멋대로 확신하며 제2터널 공사 재개를 강요하는 인간들, 심지어 그들은 공사 재개 동의서에 사인하라며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을 압박하기까지 한다. 세현의 입장에서 보면 그 동의서에 사인하는 행위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남편의 사망선고를 직접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소방 구조팀장 김대경(오달수)의 존재는 이 각박한 세상에 남아있는 일말의 온기를 의미한다. 모두가 그만두라고 할 때에도 끝까지 한 사람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구조 활동 초반 이정수를 구하려고 터널 안에 들어갔다가 2차 붕괴가 일어나는 바람에 그 자신이 일촉즉발 죽음의 위기에서 간신히 탈출했을 때, 처참히 부서진 차량 안에서 시멘트 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쓴 채 간신히 기어 나와서는, 숨을 헐떡거리며 그 즉시 전화기에 대고 "이정수씨, 미안합니다!" 라고 외치는 모습은 아무래도 좀 오버가 아닌가 싶었다. 


방금 자신에게 닥쳤던 죽음의 위기쯤이야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오직 매몰자를 구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만 앞서는 성자같은 소방대원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나 본데, 자연스럽기보다는 살짝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영웅 만들기의 욕심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정우와 오달수를 최대한 멋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친 욕심은 캐릭터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며 몰입을 방해한다. 판타지가 아니라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에서 관객이 비현실성을 느끼게 되면 큰 감동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다채로운 스토리와 복합적인 캐릭터, 커다란 감동과 송곳 같은 비판 의식을 기대하고 본다면 영화 '터널'은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큰 기대를 품지 않고 단지 하정우의 선 굵은 연기를 감상하는 데만 초점을 두고 본다면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계절적 배경이 겨울이라 살벌하게 불어닥치는 눈보라를 화면 가득 감상하게 되는데, 한여름 더위에 지친 마음에는 간접적으로나마 약간의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한 두 명의 특정 캐릭터 영웅 만들기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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