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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끝까지 잡은 손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 본문

영화, 연극을 보다

'부산행' 끝까지 잡은 손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

빛무리~ 2016.07.20 21:55

참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부산행'... 한국형 좀비 영화라고 해서 내 취향은 아니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외출이나 해보자 싶어서 개봉일에 맞춰서 갔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재미있게 볼만했다.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기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사투와 탈출의 과정 등이 제법 긴박감 넘치게 그려졌고, 새롭지는 않아도 절실한 주제의식이 한층 뚜렷이 드러났다. 


냉정한 워커홀릭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는 아내와 별거 중이며 유치원생인 딸 수안(김수안)과 홀어머니(이주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수안이가 자기 생일 선물로 부산에 있는 엄마를 꼭 만나게 해달라며 조르기 시작한다. 아빠가 바쁘면 자기 혼자서라도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으니 허락만 해달라는 딸의 애원에 미안해진 석우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수안이를 데리고 부산행 KTX에 오른다. 부산에 도착하면 곧바로 아내에게 수안이를 인계한 후, 오전 중에 서울로 되돌아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출발 직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여자(심은경)가 열차에 올라타며 처참한 비극은 이미 시작되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눈빛과 몸짓과 표정으로만 좀비의 실체를 소름돋게 표현해낸 심은경의 연기가 돋보였다. 특별 출연으로서 분량은 매우 적었지만, 첫번째 좀비 심은경의 활약은 초반부터 서늘한 공포를 흩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첫번째 좀비녀는 여승무원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고, 즉시 좀비가 된 여승무원은 또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엄청난 괴력을 자랑하는 좀비들의 공격 앞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좀비가 되어간다.  


간신히 좀비의 공격을 피해 도망친 소수의 사람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 길을 찾아 나선다. 사실 냉정한 석우(공유)는 중간에 몰래 딸과 둘이서만 안전한 곳으로 빠져 나가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급한 중에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어린 수안의 모습을 보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특히 만삭의 임산부 성경(정유미)과 그녀의 남편 상화(마동석)의 존재는 불안한 가운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조폭 두목처럼 무섭게 생겼지만 힘 세고 정의로운 상화는 매번 앞장서서 일당백의 전투력으로 좀비들을 물리쳤다. 


용감하고 따뜻한 성경(정유미)은 제 몸 하나 버티기 어려운 만삭의 몸으로도 어린 수안이를 엄마처럼 돌보며 챙긴다. 그녀가 있기에 석우도 안심하고 상화를 도와 좀비들과 싸울 수 있었다. 열차 안에는 고교 아구부원들도 있었는데, 미모의 응원단장 진희(안소희)와 그녀의 남친 영국(최우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좀비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힘차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상화와 석우를 도와 길을 뚫는 영국의 활약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이의 마음이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해 있던 사람들은, 좀비가 점령한 지역을 뚫고 도망쳐 온 사람들과 합류하기를 거부했다.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을 차갑게 몰아세우며 다른 칸으로 쫓아내는 다수의 모습은 좀비들 못지 않게 섬뜩했다. 하지만 내가 그 다수 중 일원이었다면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작년 여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공포에 휩싸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천식 환자인 나는 감염되면 그냥 죽는 거였는데, 과연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으라면 순순히 응했을까? 


용석(김의성)은 버스 회사의 상무로서 인간의 본능적 이기심을 표방하는 인물이다. 용석은 자신들이 대피해 있던 공간으로 석우 일행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이며 앞장서서 문을 막는다. 그렇게 대치하는 과정에서 큰 버팀목이던 상화(마동석)가 좀비에 물려 희생된다. 그러므로 용석은 얼핏 보면 용서하기 힘든 악역이다. 하지만 과연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용석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이후 혼자 살겠다고 타인을 좀비에게 밀어 던지는 행동까지는 용납할 수 없었지만... 


자기 방어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용석의 행동을 전체적으로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현실 속 사람들은 80~90% 가량이 용석과 같은 인물일지 모른다. 오히려 제 목숨 내놓고라도 생면부지의 타인을 돕겠다는 성경과 상화 등의 몇몇 인물이 비현실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감상한 후 마음 속에 남는 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 뿐이었다. 함께 의지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좀비에게 희생되면서 그들은 점점 외로워졌지만, 그래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살아남은 사람끼리 끝내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반드시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타인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게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끝내 살아남을 수 있고, 누구라도 살아남았다면 실낱같은 희망은 지속된다. 그 가느다란 희망을 보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운명이기에, 우리는 서로 잡은 손을 끝내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큰 바람이 불어 닥칠수록 서로를 더욱 꼭 붙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배역은 최귀화가 연기한 노숙자 캐릭터였다. 배우 최귀화는 '부산행' 노숙자로 변신하기 위해 실제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그 피폐한 모습은 진짜 노숙자처럼 실감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KTX에 무임승차한 노숙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석우 일행에게 구원을 받으며 합류하게 되는데, 부주의한 행동으로 깡통을 밟아 좀비들의 이목을 끄는 등 적잖은 민폐를 끼쳤다. 하지만 불편한 짐처럼 느껴졌던 그 사람이 최후의 순간에 보여준 희생 정신은 뜨겁도록 눈물겨웠다. "이 세상에 버려져도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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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 Favicon of http://jinsj78.tistory.com BlogIcon 진순정 2016.07.31 01:58 신고 안녕하세요...

    갠적으로 '부산행'에서 흥미롭게 생각되는 점이 3가지 정도가 있네요...

    하나는 소위 '블록버스터'라고 말하는 영화들이 대규모 인명 피해을

    발생하는 '재난 영화물'에 더 가까운 장르가 아닐까라는 점과

    '장르의 한국화'의 핵심 코어는 '신파'라는 사실(내 안에 신파 있다)...

    그리고' '이경영'과 함께 탐욕스러운 '한국형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

    (요즘 핫한 '우병우 민정수석'하고 비슷한 아우라가...)으로

    소비되고 있는 '김의성'....등이 갠적으로 흥미롭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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