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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송강호, 선악과 배신의 모호한 경계에서 희망을 염원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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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송강호, 선악과 배신의 모호한 경계에서 희망을 염원하다

빛무리~ 2016. 9. 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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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엔 이 영화 '밀정'이 썩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판단되지는 않는다. 주연배우 공유가 인터뷰 중에 "이 영화는 감독판이 꼭 나와야 하는 영화"라면서 "아까운 부분들이 너무 많이 잘려나갔다"고 주장했다던데, 과연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스토리 전개가 너무 뜬금없다 싶을 만큼 뚝뚝 끊기고 급작스레 진행되는 느낌이 강했다. 140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개별적 스토리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그 인물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몰입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 이 영화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송강호의 명품 연기 때문에, 결코 실망스럽다는 표현은 사용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했다. 송강호가 맡은 배역 '이정출'은 말 그대로 선악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의 행동을 놓고 볼 때, 배신자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판단하기조차 어려운 인물이다. 스토리가 중반을 넘어설 때부터는 '이정출'의 궁극적인 의도와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가 드러났지만, 그것이 드러난 후에도 이정출은 자신의 의도와 상반되는 끔찍한 행동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물론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과연 그러한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캐릭터가 이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라 그 성향 자체를 규정짓기가 어려우니, 배우로서 그 역할에 몰입하여 연기하기가 극도로 어려웠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송강호는 정말 놀라운 내면 연기로 '이정출'과 자기 자신을 일체화시켰고, 덕분에 관객들은 송강호를 통해서 '이정출'의 내면에 빠져들며 그의 고뇌와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다. 과연 그 시대의 조선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나 되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까? 일제에 수탈당하는 나약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 독립군이 되어 매순간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것, 아니면 일제에 순응하고 협력하며 친일파로 살아가는 것... 그 외에 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세 가지 중 그 무엇을 선택한들 행복할 수 있었을까? 친일파로 살아간들 양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면 수시로 죄책감이 머리를 쳐들며 괴롭혔을텐데, 몸이 편하다고 마음까지 편했을까? 임시정부의 독립군으로 활동하던 이정출은 계속 실패하는 거사에 좌절하며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결과, 배신을 결심하고 일본 경찰에 투항한다. 투항하면서 임시정부의 기밀을 폭로하고 핵심 동료들을 고발한 대가로 그 공적을 인정받아 조선인으로서 고위 간부에까지 임명된다. 하지만 부하들과 함께 과거 절친한 동무였던 김장옥(박희순)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김장옥의 처절한 죽음을 목도하게 되자 마음에 적잖은 고통을 느낀다.


 

그 무렵 경무국장 히가시(츠루미 신고)는 이정출에게 일본 경찰의 '밀정'이 될 것을 명령한다.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에 접근하여 그들과 친구가 되어서 핵심 정보를 캐내라는 것이었다. 이에 이정출은 의열단의 젊은 행동대장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하는데, 그의 과거 이력과 신분을 잘 알고 있는 김우진은 바짝 경계심을 돋우며 그의 접근 사실을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정채산은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여, 이정출의 존재를 역으로 이용해 보자고 제안한다. "그 미끼, 우리가 먼저 물어 줍시다. 그에게도 분명 마음의 짐이 있을터이니 그것을 건드려 보자는 말이오. 무엇보다도 마음의 움직임이 가장 무서운 것 아니겠소?"


김우진은 경계심을 풀고 가까워지는 척하며 이정출을 유인하여 은밀히 정채산과 만나게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정채산을 만난 후 이정출이 마음을 바꾸어 독립군에 협력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이 설득력 없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냥 술 몇 잔 나눠 마시고 밤낚시 한 번 같이 했을 뿐인데, 악랄한 친일파 고등경찰 이정출은 어느 새 의열단의 든든한 친구이자 밀정으로 확 변신해 있었다. 어잉? 뭐지?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래? 하는데, 폭약을 싣고 경성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이정출은 김우진을 도와 눈부신 활약을 마구 펼치고 있으니 이건 당황스런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의열단에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폭약을 무사히 경성으로 운반해야 하고, 일본 경찰은 어떻게든 그 폭약을 압수하여 의열단의 계획을 무산시키려 한다. 그런데 의열단 내부에는 또 다른 밀정이 있어, 일본 경찰이자 이정출의 부하인 하시모토(엄태구)와 내통하고 있었다. 김우진은 이정출과의 협력 작전으로 밀정을 잡아내고 처단하지만, 결국 하시모토에게 발각되어 총격전이 벌어지고... 이후의 전개는 그 시절을 다룬 영화들이 항상 그러하듯이 (그럴 수밖에 없으니) 매우 비극적이다. 히가시 국장에게 의심 받으면서도 일본 경찰 신분을 유지해야 했던 이정출은 어쩔 수 없이 의열단원 체포와 고문에 앞장선다. 끔찍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을 새드엔딩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다. (의열단원들이 목숨 걸고 운반하던 폭약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 리뷰에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쌓이면, 우리는 그 실패를 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라는 의열단장 정채산의 말처럼, 거듭된 실패와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는 불가능해 보이던 조선의 독립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암흑 속에서도 기어이 빛을 찾아내고,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잃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가 그 속에 있었다. 비록 이정출의 선택에는 비난과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그 또한 처절한 고뇌 속에 희망을 염원했던 한 인간의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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