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나는 가수다' 故 서지원을 향한 김경호의 눈물어린 우정 본문
10라운드 1차 경연은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자우림과 윤민수의 무대는 훌륭했고 저도 유쾌하게 즐기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부턴지 '나가수'가 노래보다는 지나치게 퍼포먼스 위주의 방송으로 변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더군요. 바비킴의 변신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는 느낌이 들었고, 거미는 이제 좀 색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특히 원곡을 발전시키기는 커녕, 원곡 자체가 지니고 있는 풍부한 감성마저 심하게 훼손시켜 버린 인순이의 무대는 최악이었습니다. 편곡도 저게 도대체 뭔가 싶을 정도로 너무 이상했지만, 가사 중에 '그녀'라는 호칭을 '그이'라고 바꿔서 부르는 것도 굉장히 민망하더군요. 김돈규의 '나만의 슬픔'은 절대 여자가 불러서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라는 것을 새삼스레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출연 전부터 말들이 많던 새 가수 적우... 그녀의 과거에 대한 소문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보았고, 소속사 측에서 극구 부인하는 기사도 보았고, 그에 반해 예전에 적우가 했던 인터뷰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며 그 소문의 내용이 맞다고 주장하는 말들도 보았었지요.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제 머릿속에도 약간 선입견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단 방송을 보고 나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적우의 첫 무대를 지켜봤는데... 글쎄 뭐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치더라도, 그 가수의 노래와 이미지와 스타일이 모두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멀더군요. 제가 애절함은 좋아하지만 끈적함은 싫어하는 편인데, 전체적으로 너무 어둡고 끈적한 느낌이 들어서요. 얼굴의 인상이나 인터뷰에서의 말투만 그런가 했더니 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하여튼 저는 별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김경호... 무대 자체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모습에 비해 좀 약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장기호 교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는 없었지만,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노래한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김경호가 선택한 노래는 故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 였습니다.
김경호는 무대 전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무명가수 시절에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원이와 함께 고정으로 출연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방송하고 나서 불과 2주만에 그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들었었지요... 이렇게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이 친구의 노래가 꼭 다시 한 번 부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의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잠깐이라도 故 서지원 군의 옛 모습을 떠올리시면서 저의 오늘 노래를 들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번 무대에서 김경호가 보여주려 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떠나간 친구 서지원이었습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환호와 인기 등을 원한 것이 아니라, 청중들로 하여금 서지원을 한 번 더 기억하고 그의 노래를 사랑할 수 있도록, 그런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서지원을 추억해 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내 눈물 모아서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지지 않으므로 널 그저 사랑하겠다고..." 노래의 가사는 마치 서지원을 그리는 김경호의 마음을 대신하는 듯 했습니다.
서지원의 모습을 최대한 되살리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김경호는 이번 무대에서 자신의 개성을 거의 발산하지 않더군요. 결과는 5위... 부진한 성적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순위가 아니었습니다. 뜻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무대... 김경호의 마음에는 스스로 매우 부족하다고 느껴진 무대였나봅니다.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더니 "아... 지원이한테 미안하네... 더 잘 표현하려고 했는데!" 라고 중얼거리더군요.
문득 故 서지원은 어떤 가수였을지, 아니 어떤 사람이었을지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김현식이나 김광석처럼 뚜렷한 색채의 뮤지션이었다거나, 많은 히트곡을 남기고 떠난 가수는 아니었지요. 듀스의 김성재처럼 충격적인 사건의 주인공도 아니었습니다. 해사한 미소년의 얼굴로 세상에 잠시 모습을 비추더니만, 바람 앞의 촛불처럼 허무하게 금세 떠나가 버린... 안타깝지만 대중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기에는 존재감이 다소 약한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아직도 그의 모습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동료, 선배 가수들이 있다는 사실은 서지원이라는 인물을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무한도전' 출연을 계기로 일약 국민요정(?)이 되어버린 뮤지션 정재형도, 언젠가 '놀러와'에 출연했을 때 故 서지원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습니다. 그가 떠난지도 벌써 15년이나 흘렀건만, 아직도 자기가 처음으로 그에게 써 주었던 노래 '내 눈물 모아'를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된다면서 말이죠. 정재형의 감수성이 특별히 여리고 예민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제 김경호도 정재형 못지 않게 애틋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서지원이라는 인물이 참... 괜찮은 사람이었나봐요. 만약 내가 죽으면 15년, 20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몇 명쯤이나 나를 기억하고 진심으로 그리워해 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답니다..^^
모처럼 마음 먹고 서지원에게 바치려 했던 헌정(?) 무대였는데, 중간에 가사 실수도 했고 여러모로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게 만들어져서 김경호는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지원이한테 미안하네..." 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저절로 짠하게 울려오던 가슴... 하지만 서지원은 하늘에서 김경호의 노래를 들으며 얼마나 기뻐하고 고마워했을까요?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가는 동안, 곁에 없는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던 이번 주의 '나가수'가 그래도 감동이었던 이유는 서지원을 향한 김경호의 눈물어린 우정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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